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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원 손기광 Jul 02. 2020

낮아지기

겸손에 대하여

눈 아래 작은 갈대들이 긴 대열로 대지를 아우른다. 

땅이 아득한 것보다 저렇게 갈대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보고 있는 눈이 오히려 황홀하다.


"낮아지거라..."


작게 모은 손은 목으로 뭉클 올라오는 그 무엇과 함께 바르르 떨고 있다.

15세

장남을 도회로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가슴에야...


어머니를 떠 올릴 때마다 마음 바닥에서 쑤욱 올라오는 

 '낮아지거라...'


철책!!

 사람의 자취만 거부한 채 자기 자리를 오롯이 지켜가는 갈대며, 고라니며, 먼 옛날 누군가의 손을 거친 뜰깻잎.. 그 너머에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패랭이꽃.

GP에서 바라보는 남녘에서 북녘으로 이어지는 이 푸른 갈대밭 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마음은 이미 고향집 마당에 이른다.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새벽녘부터 아들의 도시행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마음은 조금씩 더 바빠져 온다.

아들의 큰절 앞에 목 메이며 내놓은.. "낮아지거라.."


낮아짐은 높음을 전제한다. 낮은 곳에만 머문 사람은 더 낮아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필요치도 않다. 마음 저금통에 10원짜리 찌그러진 동전 하나 있는 사람에게 겸손은 오히려 사치다. 마음 저금통에 수억의 백지 수표를 가진 사람에게 겸손은 그래서 참 아름답다. 


'낮아지거라'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 

 열심히 살되 거만하지도 자랑하지도 말라. 무엇보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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