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착했던 것에 대해 써주세요. 그것이 망쳐버린 것들에 대해서요. 그로부터 배운 것도 좋고요. - <나를 껴안는 글쓰기> 슝슝
아직도 기억나는 학창 시절의 한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야간 자율학습(이하, 야자) 시간에서 시작한다. 9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깜깜한 밤공기와 새하얗고 쨍한 교실의 불빛은 대조를 이루며, 단체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일본어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지나가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숙제를 뺏으셨다.
"아니 지금 공부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네? 지금 숙제하는 건데요. 일본어 숙제요."
야자를 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그 친구에게로 쏠렸다.
당황해 얼굴이 빨개진 그 아이를 대신하여 정의감에 넘치는 다른 아이가 또박또박 말했다.
"오늘 일본어 숙제가 나와서 그거 하는 건데요."
선생님은 어이없어하셨다. 자습 시간에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퇴근을 하고, 층마다 한 분의 선생님이 자율학습 감독을 하셨다. 그날의 감독은 학생주임 선생님이셨다.
"아니, 이과생들한테 일본어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다고? 너 숙제 안 해도 되니까, 수학 문제나 풀어!"
그날의 숙제를 바로바로 해내는 그 친구는 순식간에 쓸데없는 짓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처음으로 부임하신 열정적인 일본어 선생님께서는 그날 이후로 숙제를 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으면서 히라가나도 모른 채 학교를 졸업했다.
'생산성'
이 정갈한 단어는 얼마나 성실하게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하던 앞으로 남는 것을 하라는 말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쓸모'가 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무덤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처럼) 생산성의 노예로 훌륭하게 자라났다.
지난달 나는 휴대폰에 깔린 게임을 지웠다.
1년을 넘게 공을 들이던 게임이다. 랭커가 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진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약간의 현질(아이템 현금 구매)도 했다. 출근길 지하철에 데일리 미션을 마쳐두고, 퇴근까지 시간이 없을 것을 고려하여 생산시설도 시간이 긴 생산품들로 가득 채워 돌려놓는다. 퇴근길에는 생산품을 수거하고, 교환 이벤트를 마무리하고 던전에서 자동 전투를 돌리면서 책을 읽는다. 충분히 레벨이 오르지 않을 경우에는 새로운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 공략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새로운 전투는 주로 주말을 이용해 진행한다. 그래야 평일 퇴근시간에 생각 없이 자동 전투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게임이 업데이트되면서 새로운 이벤트로 리듬게임이 추가되었다. 업데이트가 되고 며칠 동안은 데일리 미션을 위해 퇴근 후 한두 시간을 게임에 몰두했다. 리듬게임은 여러 개의 난의도로 나누어 있었다. 나는 타고난 박자치였기 때문에 중급 난의도에서 한 곡을 몇십 번씩 반복해서 플레이했다. 동시에 'S등급을 받는 사람들은 100번쯤 반복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게임에 진척이 없으니 재미가 없었다. 며칠 뒤, 출근길에 생산시설을 정비하려다 앱을 삭제했다. 특별히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충동적으로 삭제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후련했다. 나는 생산성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은 즐거움의 동의어가 아니던가.
애증 하던 게임의 빈자리는 아주 손쉽게 책으로 대체되었다. 읽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틈새 독서는 나의 편안한 휴식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생산성의 노예근성'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독서만 할 순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지하철독서'라는 태그를 달아가며 다 읽은 책을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포스팅이 없던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왔다. 독서가 '쓸모'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독서는 산출물이 없어도 충분히 쓸모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외국 여행을 가도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돌아다니고, 즐기라고 만든 게임도 열심히 노동을 한다더니, 나는 정말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생산성'과 '쓸모'에 대한 지긋지긋한 집착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인스타를 통한 아주 짧은 책 리뷰도 조금씩 귀찮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계속 이어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