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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3. 2020

프릳츠 어떻게 브랜드가 되었나?

프릳츠의 자기소명 _ 동기부여가 잘 된 기술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자

프릳츠, 넌 의미가 뭐야?
아무 뜻 없어, 어디에도 없는 고유 명사 같잖아! 그래서 지었어. ㅎ


브랜딩 일을 하면서 종종 네이밍에 대한 일감이나 자문을 받는다. 네이밍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3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브랜드가 판매하는 제품이나 브랜드의 특성을 반영한 네이밍, 두 번째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뜻과 분위기가 반영된 네이밍, 마지막으로 창업가의 별명이나 이름이 반영된 브랜드 네이밍이 있다.


브랜드 혹은 제품의 특성을 반영한 네이밍

파파도터(아빠와 딸이 만들어가는 귤 브랜드)

인사동 껍데기(껍데기가 주력상품인 브랜드)

김총각네(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수제 김부각 브랜드)

엽기떡볶이(엽기적으로 떡볶이를 맵게 만들어 파는 브랜드)


브랜드가 추구하는 뜻과 분위기가 반영된 네이밍

자이(특별한 지성[eXtra intelligent]의 약어로 고급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고품격 아파트 브랜드)

애플(영양가가 풍부하고 쉽게 손상되지 않는 과일, 사과를 닮아 완벽한 회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전자기기회사)

29CM('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설렘을 주는 거리'를 의미하는 온라인 쇼핑몰)


창업가의 별명이나 이름이 반영된 네이밍

구찌(구찌 가문이 만든 명품 브랜드)

샤넬(코코샤넬이 만든 명품 브랜드)

오롤리데이(디자인 문구 브랜드로 박신후 대표의 별명 롤리와 오해피데이의 합성어)

한아조(조한아 대표의 천연비누 브랜드)

TWB 타올가게봄(김기범 대표의 일본식 발음 '기보무'에서 보무를 '봄'으로 줄여 만든 타올가게봄)


모든 브랜드 네이밍을 이 세 가지 범주 안에 넣을 수는 없지만, 대다수는 예상할 수 있는 특정한 패턴을 지닌다. 더군다나 신규 브랜드 같은 경우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에 침투하고,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네이밍 작업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여러분도 주변에 적힌 브랜드 네임을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프릳츠 컴퍼니 물개가 그려진 메인 로고


그렇다면 한국 커피 씬에 자리 잡은 카페 '프릳츠'는 어떠한 맥락이나 단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네이밍으로 어떻게 소비자의 마음을 빼앗은 걸까? 물개 때문일까?! ㅎㅎ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인터넷을 모조리 뒤져 프릳츠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작지만 튼튼하게 굴러가는 브랜드 '프릳츠'에 대한 특별함을 세 가지로 나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프릳츠의 탄생과 문화 : 6인의 기술자들의 경영철학과 공동체적 조직 문화

프릳츠의 탄생은 신선한 원두를 찾아내어 로스팅하고 다양한 맛의 커피를 테스팅하길 좋아하는 커피업계 종사자와 학창 시절부터 제빵의 길을 걷던 제빵업계 종사자 여섯 명이 공동 창업한 회사이다. 김병기 공동대표는 그들이 가진 목표에 대해 무척 덤덤하게 말한다. 프릳츠의 목표는 기술자들의 공동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기술자는 직업인을 뜻하고, 삶에서 일의 가치가 큰 사람들을 일컫는다.


또한 프릳츠가 추구하는 공동체적인 삶은 안정감을 기반으로 한다.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동기부여가 잘 된 기술자들이 주체적으로 제품의 질(Quailty)을 유지하고, 소비자에게 친절히 소개한 다음, 그 제품이 시장의 선택을 받아 다시 공동체의 삶의 안정화로 환원되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간단하고 명확해 보이지만 '동기부여가 잘 된'이라는 문구에서 우리는 이 다짐을 오래도록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folin에 올라온 <프릳츠에서 일합니다>를 통해 6인의 공동창업자들이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릳츠를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매일 제품의 질적 향상과 유지를 위해 매일 아침 퀄리티 컨트롤 차트[커피 맛의 기준을 잡는 것]와 제빵 일지를 매일 같이 작성하고 개선방향을 기술자들과 나누고 제품의 질적 기준을 정한다. 또한 싱크 데이[서로의 기술을 나누는 배움의 시간]를 따로 두어 서로에게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문화도 존재한다. 싱크 데이 외에도 배움이 필요한 사람과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업무적 기술이 아닌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문화도 존재한다. 6명에서 시작한 프릳츠가 74명이 된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맛과 좋은 퀄리티를 유지해올 수 있는 비결이다.


또한 프릳츠의 기술자들의 직업관은 제품의 기술적 영역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장의 기술보다 카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일할 수 있는가가 그들이 기술자를 뽑는 중요한 기준이다. 실제 바리스타가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은 업무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 그 외 시간에는 갓 나온 빵을 포장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매장을 청소하는 영역까지 기술자의 업무이다. 단순히 ‘바리스타’를 멋들어지게 커피를 내리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프릳츠와 결코 함께할 수 없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들이 기술자의 삶 자체에도 관심을 둔다는 사실이다. 프릳츠는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쉬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달 정도의 유급 병가 제도를 만들었고, 체력 단련비도 지급한다. 한 달에 한번 자취하며 혼자 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과일 바구니를 보내주는 ‘비타민 박스’ 제도도 생겼다. 이 외에도 가족 수당과 육아휴직도 가능하며, 직원들이 특별한 날에 쓸 수 있는 자동차 대여 시스템도 존재한다. 그리고 칭찬 데이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받은 칭찬의 수만큼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제도도 생겼다!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회사생활은 그저 법적인 기준에 충족하는 복지제도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문화가 익숙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구도 방식이다. 프릳츠가 선택한 기술자들의 자발적 성장직원과 회사의 적절한 공생 방식은 요새 흔히 말하는 대안적 삶과 가장 밀접한 것 같아 무척 놀라웠다. 전혀 관련 없는 일에 종사하는 나였지만, 기술을 익혀 꼭 프릳츠의 구성원으로 일 해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프릳츠 컴퍼니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프릳츠 컴퍼니 기술자들의 모습


두 번째. 프릳츠에 녹여진 디자인 원칙 : 한글과 한국이 정말 좋습니다.

프릳츠에서 만든 로고 디자인, 사용하는 색깔, 패키지 디자인, 굿즈, 인테리어 디자인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 이유는 브랜드 디렉터이자 공동대표인 김병기 대표의 확고한 ‘취향’ 때문이다. 김병기 대표는 한국적인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너무 좋다고 말한다. 저 옛날의 한국적인 것과 서양문화와 섞여 만들어진 한국적인 것 그 어떤 것도 한국적으로 해석된 것이라면 전부 좋다고 밝혔다. 프릳츠 로고를 만들 때도 한글로 디자인되길 원했고, 디자인적 느낌 또한 한국적인 것을 원했다.


한국적 요소들은 프릳츠를 구성하는 인테리어, 굿즈, 포스터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갓을 쓴 물개라든지 십장생에서 가져온 한국적 그래픽 등이 그 예이다. 또한 프릳츠를 운영할 건물을 선택할 때에도 좀 더 한국적인 의미가 있는 곳을 선정한다고 한다.


프릳츠 지점을 소개하는 그래픽 디자인


그리고 김병기 공동대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인상 깊었다. 손님이 오셔서 커피 한잔 빵 하나를 드실 수 있다면 프릳츠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수많은 카페를 물리치고 프릳츠에 오시기까지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프릳츠가 디자인 팀을 두어 운영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병기 디렉터의 취향과 디자인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걸 구현해내는 디자이너분들의 능력이 합쳐져 프릳츠를 어떤 브랜드보다 밀도감 있는 브랜드로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외국에서 건너와 세련된 외국 정서를 강조하는 커피 씬에서 한국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프릳츠는 친숙하면서도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프릳츠 커피만의 노력 : 커피 농가에 방문하여 좋은 원두를 수급하는 ‘그린빈 바이어'

김병기 대표는 졸업 후 언론사에서 일할만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열혈 청년이었다. 그가 커피에 입문하게 된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창 커피에 대한 공정무역(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농부에게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행위)이 대두되던 시기 자신도 커피 씬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국제 커피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을 만큼 커피 자체가 주는 여러 가지 맛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치 실현과 좋은 원두 수급을 위해 그는 직접 커피 농가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듯 커피 농가는 비행기를 타고 20시간이나 가야 하는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같은 중미와 인도 등을 말한다. 프릳츠는 매년 농가를 방문해 직접 원두를 선별해 최고의 원두를 구입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렇게 선별되어 한 해의 최고 원두를 맛볼 수 있는 커피를 스페셜티라고 지칭한다.

 

프릳츠에서 판매하는 원두

미국에는 매년 최고의 원두로 만든 커피를 제공하는 3대 스페셜티 커피숍이 있다. 스타벅스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타벅스는 매해 커피 농가들을 방문해 최고의 원두를 구매하는 방식이 아닌 원두가 나오기 전 미리 커피 농가와 계약해 일정 시기에 원두를 제공받아 적절히 다른 원두와 배합(브랜딩)하여 일정한 맛을 내어 판매하는 방식이다. 물론 스타벅스에서도 약간은 스페셜티 원두를 판매하겠지만 주된 사업부문은 아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숍은 인텔리젠시아, 블루보틀, 스텀프 타운이다. 스페셜티의 특징은 라이트 로스팅과 핸드드립이 특징이다. 원두를 볶으면 볶을수록 탄맛과 쓴맛이 강해져 원두 특유의 산미와 특징을 구별하기 힘들기에 다크 로스팅보다는 연한 로스팅이 좋고, 압착해서 빠르게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머신보다는 핸드드립로 천천히 내린 커피가 원두의 본연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사실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숍은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실제 블루보틀 같은 경우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지사를 둘 만큼의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 프릳츠가 이렇게 직접 무역을 고수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한국 커피 씬에서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김병기 공동대표는 실질적으로 직접 무역(김병기 대표는 상하관계를 은연중에 내포하는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보다는 농가와 수평적 관계의 의미를 담은 직접 무역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은 프릳츠의 어떤 부분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원두를 구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러한 사업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프릳츠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에서 얼마나 열심히 헤엄치고 있을까?


이야기의 마무리

프릳츠를 깊게 들여다보면서 임태수 작가의 브랜드적인 삶 책 뒷면에 정갈하게 적힌 문구가 계속 떠올랐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또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면 그것에 심취할 만한 가치가 있고 잘 해낼 자격이 있다. 누구든 무언가에 대해 소명 의식을 지니고 꾸준하게 지속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것을 브랜드라고 부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며 성장하는 프릳츠를 보며, 내가 생각한 브랜딩의 정의가 한층 깊고 단단해졌다. 브랜딩이란 브랜드를 만드는 주체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촘촘히 얽혀 가시성과 가독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브랜드가 만드는 크고 작은 행위에서 그들을 읽을 만한 단서들을 분명히 찾을  있다. 프릳츠라는 브랜드를 읽어가면서 그런 조각들을 발견할 때마다 즐거웠고 마음을 울리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더 읽어볼 이야기


CABOOKS_조인혁 디자이너와 프릳츠 로고 이야기

https://blog.naver.com/cabooks/221086546887

이십구센티_프릳츠 김병기 공동대표 인터뷰

https://brunch.co.kr/@29magazine/155

폴인_프릳츠에서 일합니다

https://www.folin.co/book/470

16p.16p.16p_프릳츠는 어떻게 프릳츠가 되었나

https://www.youtube.com/watch?v=E4RAh5xxWe4

쌩스터티비_프릳츠 커피

https://www.youtube.com/watch?v=Me7mys9iHVs

삥타이거_공덕 프릳츠 커피 탐방!

https://www.youtube.com/watch?v=OPqXTdRhTZk

Bcast_intelligentsia(part2) guest_김병기

http://www.podbbang.com/ch/13074?e=2220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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