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1편에서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질문한다. 빨간 약을 먹고 현실같이 꾸며진 꿈에서 깨어나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 파란 약을 먹고 매트릭스 세계 안에서 계속해 살아갈 것인가. 네오는 결국 빨간 약을 먹고 깨어나 AI와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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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매트릭스'는 AI들이 인간들을 가둬놓기 위해 만들어 낸 '현실같은 꿈'이라고 소개된다. 즉, 인간들이 활동하는 가상세계인 것이다. 최근 사회에서 각광받고 있는 '메타버스 기술'도 특정 기술을 지칭한다기보다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일련의 기술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꿈'이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메타버스'가 연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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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는 결국 '또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 전문가마다 메타버스를 정의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현실을 디지털 세상으로 확장시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러한 정의 가운데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상이한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생성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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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네이버에서 제작한 AR아바타 기반의 '제페토', 메타버스 요소가 결합된 화상회의 플랫폼을 표방하는 '게더타운', 게임 만드는 게임으로 알려진 '로블록스', 3인칭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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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서비스들의 공통점은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아바타를 생성하고 이 아바타를 통해 이용자끼리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소셜라이징이라는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메타버스 서비스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맥락에서 보면 동물의 숲이나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들도 결국 메타버스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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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더 풀어가기 전에 메타버스가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아온 시점에 대해 논하고 싶다. 구글 트렌즈를 통해 확인한 결과, 메타버스라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2021년에 이르러서야 인터넷에서 많이 노출된 개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제약이 생기며 일상 속 결핍들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메타버스가 대두됐다. 일례로, 한국 대학들은 교육연구회, 취업박람회, 입학식, 졸업식 등을 메타버스로 진행했다. 또한, 게더타운을 통해 원격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회사들의 사례도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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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같은 메타버스 서비스라고 해도 게더타운과 리니지는 제공하는 효용의 결이 다소 상이하다. 전자의 경우, 기존과 같이 모여서 대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제한되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니즈에서 인기를 모은 서비스라면, 리니지는 현실에서 즐길 수 없는 재미를 제공해주는 게임 서비스이다. 즉, 전자는 현실에서의 삶을 도와주는 보완재로써의 역할이 크지만 후자는 현실에서 즐길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대체재로써의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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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메타버스 서비스 모두 결핍이라는 요소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동일하나, 대체재로써의 메타버스 서비스는 현실에서 수행할 수 있는 행동 이상의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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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잘 때 꾸는 것이다. 즉, 꿈을 꾸면서 동시에 현실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쪽의 일이 반대쪽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메타버스를 논할 때 우리가 매트릭스같이 최대한 현실같은 꿈을 만들어내 현실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은 것인지, 꿈같은 현실을 즐기고 싶은 것인지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서비스 기획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것 같다. 전자의 경우에는 현실의 요소들을 최대한 이질감 없이 메타버스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할테고, 후자의 경우에는 최대한 현실과 먼 상상의 요소들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해내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