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한 Jan 26. 2021

단순한 게 최선이다.

첫 차림-알리오 올리오 (Aglio e Olio)

존 패브로가 야식으로 끼를 부린다. 팬 가득 썰어 넣은 마늘로 기름에 향을 입히고 면을 넣은 뒤 불 밖에서 유화를 한다. 물론 요염하게 입맛을 다시는 스칼렛 언니에게 정신이 팔렸다면 이 장면에 파스타가 나온 걸 전혀 몰랐을 수도 있다. 어쨌든 존이 식으로 해주는 간편한 파스타, 바로 알리오 올리오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 중에서


워낙 간편한 레시피다 보니 일상에서도 꽤 유용하다. 아무리 요리를 좋아해도 한 번씩 ‘요리욕'이 바닥을 치거나, 미처 장을 보지 못해 식재료가 바닥을 드러 때면 비장하게 꺼내 들기에 딱이다. 이름 그대로 기름과 마늘만 있으면 충분하니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이만한 게 없다. 맙게도 아내를 비롯해 아이들이 잘 먹는 대표 메뉴이기도 하다.

재료가 많이 들지 않기도 하지만, 제일 처음 해 봤고, 그 덕에 가장 많이 해 봐서 그럴 거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또한 본격적 요리의 시작 파스타였다. 칼국수를 더 공들이거나 잔치 국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왜 꼬부랑 이름의 먼 나라 면요리였을까. 모르긴 해도 소면보다는 더 근사해 보일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고 뻔한 소스를 사다 들이붓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력이 없는 거지 성의가 없고 싶지 않은 꼴같잖은 자존심에 만한 레시피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초심자가 하기에는 손이 많이 가거나 재료가 복잡한 것들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올린 ‘쉬운 파스타 레시피’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 파스타 면, 소금, 그리고 물. 혹시나 취향에 따라 페퍼론치노 정도라 재료가 얼마 없어서 좋았고 조리 과정 또한 간단하다는 게 끌렸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가진 요리 실력은 미약했지만, 간은 잘 봤다. ‘마늘 냄새가 겨우 벤 기름에 쩐 밀가루 덩어리’를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건 결국 염도였는데, 그 적정선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절하지 않고 첫 요리를 성공적으로 해낸 비결이다.

다만 공정이 간단하다고 해서, 대충 해서는 큰일이다. 점점 알수록 어려워지는 이유기도 하다. 몇 개 되지 않는 단계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짜고 느끼한 밀가루를 먹게 될 거니까. 정성껏 마늘 기름을 맛있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기름은 차가운 상태로 마늘과 만나야 향이 잘 베니 시작부터 펄펄 끓여서도, 마늘이 타서도 좋지 않다. 자칫 쓴 맛이 나서 애써 낸 기름을 다 버려야 할 수도 있으니. 자신이 없다면 불을 약하게 해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 별 거 아닌 게 은근 손이 간다.

화도 중요하다. '만테까레'라 불리는 이 과정은 면수를 끼얹어 흥건한 소스를 면에 붙이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간을 결정하기도 하고 밀가루 덩어리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공정이다 보니 역시나 신경 써서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 때 풍문처럼 이 간단한 파스타가 업장의 실력을 나타낸다느니 했던 거 같다. 물론 그건 사실과 다르다. 아마도 그 풍문의 근거는, 간편한 만큼 별스러운 맛을 내기 힘드니까 이른바 손맛에 좌우될 거라는 추측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확실한 건, 할 뿐 대충 할 건 아니라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맛있는 탄수화물 덩어리에 불과하니 자주 해 주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 명색이 주말 주방을 책임진다 해 놓고선 불량 식품을 먹이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비교적 간편하고 짧게 집중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니 매력적인 메뉴임에는 분명하다. 단순한 게 때론 빛나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리'라는 행위의 거룩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