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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Feb 02. 2021

동물의 뼈를 고는 게 아니라 나를 곤다는 느낌으로다

두 번째 차림-곰탕

겨울이면 큰 맘먹고 뼈나 고기를 좀 사고 곰솥도 한 번 꺼내 씻는다. 당장 육수가 급하다면 잡뼈를 씻어 끓이지만, 자주 하는 것도 아니니 보통 꼬리를 산다. 잡뼈는 국물을 우린 후 모조리 버려야 하지만 꼬리는 따로 찜을 해 먹거나 스튜로도 만들 수 있으니 추가로 지불하는 값어치는 톡톡히 하는 셈이다. 양지나 사태를 넣거나 양 같은 내장을 좀 넣기도 한다. 부수적인 첨가에 따라 국물이 훨씬 맛있어지고 국에 꾸미로 올리든 수육으로 따로 올리면 식탁이 더 풍성해지게 마련이니까. 추운 날이면 한 번쯤은 생각나는, 곰탕은 일종의 연례행사다.

어릴 때는 곰탕을 좋아했었다. 생일상에 간혹 미역국 대신 곰탕이 올라오기도 했으니 제법 공인된 취향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변했고, 맛에 비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말들이 많아 애써 찾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요리에 관심이 생겨도 차마 이걸 끓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내 취향을 차치하더라도, 손이 많이 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뭘 해도 두 끼를 연달아 먹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다. 조리자로서 곰탕의 매력은 여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건데 그게 안된다면 그저 고되기만 한 작업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어느 날 곰솥은 사게 된 건 내가 딸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딸바보였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유명한 곰탕집 국물을 맛본 그녀가 너무 맛있게 먹는 통에 내 손으로 직접 끓인 걸 먹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끓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바로 마트에 들러 곰솥을 샀다. 알아 알아가며 질 좋은 뼈를 구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레시피를 탐독했다. 별 건 없었다. 맛있고 깔끔한 국물을 만드는 비법은 다름 아닌 생고생이었다. 뼈를 넣어 바로 끓여선 안 되고 첫 물은 버려야 누린내가 덜 났다. 새로 물을 넣기 전 솥을 한 번 닦고,  끓어오른 뒤엔 불을 낮춘 후 줄곧 지키고 서서 기름이며 부유물을 걷어내야 깔끔한 국물이 나왔다. 고기라도 넣으면 시간을 일일이 따져가며 제때 꺼내야 알맞게 익은  먹을 수 있었다. 별 건 없어도 적어도 반나절은 꼬박 매달려야 하는 엄청난 음식이었다. 시간이 확보된 주말에 하기에 적합했지만, 문제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국물이 첫 한 끼가 지나면 외면받는 것이었다. 1회용 소량을 만들자니 투여되는 노력은 똑같아 뭔가 가성비가 훨씬 떨어졌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날이 좀 으스스해 지거나, 티브이에서 비슷한 류의 음식이 나오면 찾으니까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뼈를 사면 줄줄이 계획을 따라 세운다. 육수를 따로 빼서 동치미를 섞어 냉면을 만들거나 아니면 새로 향신채를 넣어 동남아식 쌀국수를 해 먹을 부수적 메뉴들 말이다. 양파 수프의 기본 육수가 되기도 하고 찜이나 스튜에 쓰이는 국물로 활용하면 애써 끓인 걸 버릴 걱정도 덜고 파생된 요리도 훨씬 고급스러워진다.



올 겨울은 그냥 넘길까 했다. 복잡한 일들이 생겨 정신이 사납기도 했고 뭘 끓일 엄두가 안 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큰 맘을 먹고 꼬리를 좀 샀다. 이래저래 해 볼까 싶은 요리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가족들에게 뜨끈한 국물 한 끼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유달리 길고 추운 겨울 같아서 그렇게라도 뭔가 하면 내 기분도 좀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비록 이번에도 한 번 먹고 나머지는 다른데 이용될 처지였지만, 커다란 곰솥 옆을 지키는 그 시간과 노력이 새삼스러웠다.

꼬박 대여섯 시간을 옆에 서서 끓이고 건져가며 만든 요리를 섭취하는 식사라는 행위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미련한 짓일 수밖에 없는 게, 효율성을 따지자면 대기업에서 즉석식품도 잘 나오고 맛으로 따지면 차 타고 조금만 가도 더 나은 걸 얼마든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뼈를 사다 씻고 끓이는 건 역설적이게도 주말 주방을 지키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다. 가족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만드는 따뜻한 한 그릇, 그것의 가치는 그 모든 걸 감내할 만하기에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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