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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Feb 19. 2021

겨울의 끝자락에서 품어보는 작고 소중한 바람

세 번째 차림-타코(taco)

요리에 취미를 가지면서 자연스레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늘어났다. 제철 맞은 식재료를 모일 핑계 삼거나 환영이나 송별따라 식탁을 마련하기도 한다. 함께 먹을 걸 나눈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고 그 자리를 위해 없는 솜씨 나마 부릴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겸손한 실력 덕에 메뉴는 정해져 있다. 실수 없이 말 그대로 '대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보통은 파스타와 스테이크, 거기에 샐러드나 전채 정도. 그나마 자신 있게 낼 수 있는 것들이고 차려 놓고 보면 제법 그럴싸해서 자주 애용하는 조합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생일상이나 친구들 모임에서 이젠 제법 익숙하게 양식 한 상 정도는 너끈히 차려낸다.  

그런데 힘을 줄 필요 없이 그보다 좀 편한 자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단히 파스타나 대량으로 만들어 나누거나 김치라도 치대면 수육을 삶아낸다. 그도 아니라면 일상의 모임에서는 대개 타코를 한다. 품 들인 거에 비해 결과물이 훌륭하니 무엇보다 효율적이다. 기껏 신경 쓰는 것도 고기를 시즈닝 하고 구울 때뿐이지 긴 조리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요리의 완성도나 손님들의 만족도 높 이리저리 따져봐도 이만한 게 잘 없다.

굳이 번거로운 걸 따지자면 살사를 만드는 과정 정도다.  아무래도 일일이 칼로 다지는 게 식감이나 모양새가 나으니까. 물론 이것 역시 을 조금 양보한다면 얼마든 간편한 도구(a.k.a. 푸드 프로세서)로 금세 완성고, 마저 번거롭다면 한데 모아 갈 그만이다.

다만 이토록 간편한 식탁에 의외 자주 문제 되는 건 아보카도다. 산지와 거리가 있다 보니 원하는 대로 구하기에 까다로운 식재료라 그렇다. 언제고 껍질을 열어 바로 쓰기는 힘드니 미리 사놓고 좀 익혀야 알맞게 익은 과육으로 과카몰레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완성도 있는 손님 상을 치르려면 최소 사나흘 전에는 장을 보는 게 다. 렇게 미리 장을 보면서 굽는 고기에 미리 염지도 좀 하고, 진짜 흥이 나면 또르띠야를 직접 만들어 구워보기도 한다. 당연히 그럴수록 간편하지만 근사한 상차림에서 멀어지는 건 감수해야 한다.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됐다면, 장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다.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사실 타코 기반의 파티를 완성하는 건 햇살이다. 추운 겨울이나 우중충한 빗속에서 먹는 타코가 무조건  않지만, 아무도 맑고 밝은 햇살 아래에서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게 가장 좋다. 모히또나 상그리아라도 한  가득 만들어서 옆에 두면 더할 나위가 없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들어오고 햇살의 축복 아래에서 즐거운 사람들과 나누는 한 상의 즐거움, 간단할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은 행복한 식탁을 완성할 환상의 메뉴다.




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설도 지났다. 계절든 날짜를 세어보든 유독 길고 지루했던 겨울이 끝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백신이나 치료제의 소식으로 짐작해보면, 지난 일 년을 꼬박 괴롭힌 지독스러운 역병도 슬슬 끝이 보이는 듯하다.

바라건대 움츠렸던 기나긴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봄에는 싱그러운 햇살 아래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을 불러 모아 거하게 타코 한 상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솜씨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의 향기가 오롯이 채워 거니 아무 부담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만족감 행복 가득한 식탁에서 같이 웃고 즐기고 싶다. 시린 이 계절의 끝에서 태양 머금은 타코가 유난히 생각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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