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취미를 가지면서 자연스레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늘어났다. 제철 맞은 식재료를 모일 핑계 삼거나 환영이나 송별에 따라 식탁을 마련하기도 한다. 함께 먹을 걸 나눈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고 그 자리를 위해 없는 솜씨 나마 부릴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겸손한 실력 덕에 메뉴는 정해져 있다. 실수 없이 말 그대로 '대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보통은 파스타와 스테이크, 거기에 샐러드나 전채 정도. 그나마 자신 있게 낼 수 있는 것들이고 차려 놓고 보면 제법 그럴싸해서 자주 애용하는 조합이다. 그러다 보니가족의 생일상이나 친구들 모임에서 이젠 제법 익숙하게 양식 한 상 정도는 너끈히 차려낸다.
그런데 힘을 줄 필요 없이 그보다 좀 편한 자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단히 파스타나 대량으로 만들어 나누거나 김치라도 치대면 수육을 삶아낸다. 그도 아니라면일상의 모임에서는 대개 타코를 한다.품 들인 거에 비해 결과물이 훌륭하니 무엇보다 효율적이다. 기껏 신경 쓰는 것도고기를시즈닝 하고구울 때뿐이지긴 조리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요리의 완성도나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아 이리저리 따져봐도 이만한 게 잘 없다.
굳이 번거로운 걸 따지자면 살사를 만드는 과정 정도다. 아무래도 일일이 칼로 다지는 게 식감이나 모양새가 나으니까.물론 이것 역시 맛을 조금 양보한다면얼마든 간편한 도구(a.k.a. 푸드 프로세서)로 금세 완성되고,그마저도 번거롭다면 한데 모아 갈면 그만이다.
다만 이토록 간편한 식탁에 의외로 자주 문제가 되는 건 아보카도다. 산지와 거리가 있다 보니 원하는 대로 구하기에 까다로운 식재료라 그렇다. 언제고 껍질을 열어 바로 쓰기는 힘드니 미리 사놓고 좀 익혀야 알맞게 익은 과육으로 과카몰레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완성도 있는 손님 상을 치르려면 최소 사나흘 전에는 장을 보는 게 낫다. 그렇게 미리 장을 보면서 굽는 고기에 미리 염지도 좀 하고, 진짜 흥이 나면 또르띠야를 직접 만들어 구워보기도 한다. 당연히그럴수록 간편하지만 근사한 상차림에서 멀어지는 건 감수해야 한다.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됐다면,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바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것이다. 엉뚱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사실 타코 기반의 파티를 완성하는 건 햇살이다. 추운 겨울이나 우중충한 빗속에서 먹는 타코가 무조건 맛없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맑고 밝은 햇살 아래에서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게 가장 좋다. 모히또나 상그리아라도 한 병가득 만들어서 옆에 두면 더할 나위가 없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들어오고 햇살의 축복 아래에서 즐거운 사람들과 나누는 한 상의 즐거움, 간단할지언정 결코 가볍지 않은 행복한 식탁을 완성할 환상의 메뉴다.
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설도 지났다. 계절로 따지든 날짜를 세어보든 유독 길고 지루했던 겨울이 끝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백신이나 치료제의 소식으로 짐작해보면, 지난 일 년을 꼬박 괴롭힌 지독스러운 역병도 슬슬 끝이 보이는 듯하다.
바라건대 움츠렸던 기나긴 겨울을 지나 맞이하는 봄에는 싱그러운 햇살 아래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을 불러 모아 거하게 타코 한 상을 나누고 싶다. 부족한 솜씨는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의 향기가 오롯이 채워줄거니 아무 부담도 가지지 않은 채. 그저만족감과 행복만 가득한 식탁에서같이 웃고 즐기고 싶다. 시린 이 계절의 끝에서 태양 머금은 타코가 유난히 생각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