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성 Sep 01. 2023

#1_운에 관하여

운보다 중요한 것

이번 에세이 주제는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입니다. 여태까지 해온 모든 일들이 전부 의미가 있었지만, 저에게는 작년 연합 체육대회 전에 있었던 축구 대표선발전이 가장 의미가 있었습니다. 작년 4월쯤에 동아리 시간 때 선생님께서 '연체' 축구 대표를 하고 싶은 사람을 물어보셨고 저는 자신 있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C 선생님 교실에서 테스트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제 기억으로 테스트 신청을 한 다음 주 토요일에 거두리에서 테스트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골키퍼를 할 생각으로 갔는데 골키퍼 지원자들이 많아 그냥 친구와 몸을 풀었고 게임을 뛰기 전에 포지션을 정할 때 공격수 자리가 남아서 공격수로 테스트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마음가짐은 '난 기술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정말 열심히 뛰자'라고 생각했고 최전방에서부터 쉴 새 없이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렇게 뛰면서 후반전에는 다이빙 헤딩골까지 넣었고 더욱 열심히 뛰니까 당시에 계셨던 M 선생님께서 제 이름과 동아리를 물어보셨습니다.

    그렇게 첫 테스트가 끝난 후 제 마음에는 ‘떨어져도 후회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날 D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두 번째 테스트에서도 열심히 뛰었고 그 결과 2골을 넣으며 거의 대표선발을 확정 지었습니다. 그리고 합격이 돼 연체축구대표 카톡방에 초대되었고 그 후에 K고, C고, S고와의 연습게임에서도 잘 뛰었고 연체에서는 20번을 달고 치른 A 고, C 고와의 게임에서 모두 풀타임을 뛰었습니다.

    사실 너무 과거 회상만 한 것 같은데 이 일이 저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이유는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비록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돼도 마음먹고 노력하면 웬만한 것은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노력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면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 에세이 마치겠습니다.




• 운을 말하려면, 조금 긴 이야기

'언제 쓴 거야' 하며 에세이를 읽어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것이다. 처음 '연체'에 뛴 것은 1학년이고 그것을 작년이라 적었으니 말이다. 딱 그 정도 수준인 것 같다. 이런 글을 발표했다니 부끄러우면서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에서 배울 점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할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말고 잘해야 한다고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 경험상에는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

    운이다. 운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다른 이유가 있듯 운의 존재에 대한 나만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말하려면 조금 긴 이야기도 필요하다. 혹시 운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뭐든 이유가 있다면 맞건 틀리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짧은 인생을 사는데 누구의 말이 정답이겠는가.




• '수포자' 학생의 태도

축구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축구는 나에게 꿈이자 취미이자 도피처였다. 축구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 어디서든 축구를 좀만 한다면 사람들과 두루 친해지기가 쉽다. 여태까지의 삶이 그랬다. 공을 차는 행위로부터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과 친해졌다. 축구를 통해 얻은 것이다.

    잃은 것은 시간이다. '공 좀 찬다'지만 축구선수는 아닌 학생이, 그것도 고등학생이 축구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부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축구에 빠져 사는 동안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성적은 초중고를 통틀어도 중간에서 조금 위였다.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 과학, 사회탐구, 예체능. 그저 그런 과목은 영어. 싫은 과목은 수학. 이 기준으로 문과를 선택했다. 과학이 정말 재미있었지만, 이과를 고르면 가뜩이나 싫은 수학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해서 과학을 포기하고 문과를 골랐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진작에 포기한 수학에 관해서도 할 말이 조금 있다. 당시 시험에서 국어는 100점을 맞았지만, 수학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난생처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다. 차라리 0점이면 '일부러 답을 피해 다 틀렸다'라고 뻥이라도 치지. 그때부터 수학에 대한 거부감이 자라났다. 그렇게 포기하게 된 수학으로 인해 아직도 기억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고등학교 언젠가였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눈은 칠판을 보고 손에는 펜을 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선생님께서 한 말씀을 하셨다.


"봐라. 솔직히 쟤가 알아듣지 못하는 거 아는데 어쨌든 손에서 펜을 놓지 않는다. 저 태도를 배워라."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반반) 정확히 선생님은 내 생각을 읽으셨다. 중학교 1학년 때 포기한 수학이라 정말 모르겠으면서도 딱 한 가지 했던 결심이 '샤프라도 꼭 잡고 있자'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태도만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은 달랐다.  




• 아버지, 현실은 시궁창이네요

자려고 펼친 이불 위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는 삼촌이 말한다. '축구 그만 좀 해라. 현실은 시궁창이다. 기술 배워라. 니가 아무리 한다고 한들 동네축구다. 지네딘 지단 볼차는 거 봤냐. 절대 그렇게 못 한다'. 속으로 '지단처럼 못하는 거 누가 모르나요. 비교할 대상이 한참 잘못되었어요. 저도 알아요. 저 그냥 취미로 하는 건데요. 그리고 지단 은퇴한 지가 언젠데요. 요새는 메시나 호날두예요'라고 생각만 하고 말은 못 했다.


아버지는 유독 남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 그 방식은 내가 아닌 남에게 내 이야기하면 그걸 들은 사람이 아버지 대신 나에게 말하는 식이었다. 앞서 삼촌의 경우도 그랬고 아버지의 친구분은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 그만 다니고 수학 학원 보내달라고 이야기하라 하셨다. 물론 그때에도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가라고 해서 가는 건데요'라고 말은 못 했다.


축구를 직접 하는 것 외에도 축구용품에 관심이 많았다. 선수들은 어떤 축구화를 신는지 골키퍼들은 어떤 장갑을 끼는지. 물론 살 수는 없어서 용품 리뷰를 많이 들여다보았다. 현실은 1만 원짜리 시장 축구화가 떨어져 엄마가 큰맘 먹고 사주신 축구화를 아끼고 아껴 3년 정도 신고도 또 창갈이해서 신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또 떨어져 친구한테 중고로 2만 원인가를 주고 풋살화를 샀었다. 그게 문제였다. 드디어 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있는데 뭐 하러 또 돈 주고 사냐'라며 혀를 끌끌 찬다.

    그때는 정말 다 버리고 싶었다. 손잡고 축구장 데리고 갔던 사람이 누군데. 물론 버리지는 못했다. 버리지 않았다.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도피처이자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주는 창구였다. 그리고 이게 화근이 되었다.

    그저 수업만 듣고 보충 수업과 '야자'에 잘 참여만 하는 학생이었던 나는 앞서 말한 대로 성적도 딱 그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모의고사' 때는 보면 지원하려는 '지거국' 학과 최저등급은 맞출 정도였지만 막상 수능에서는 최저를 맞추지 못했다. 수시 1차에서 합격해 맨 마지막 순서로 본 면접은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늘 모의고사에서 맞춰오던 최저는 맞추지 못했다.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라는 말처럼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시궁창인 현실을 생각해서라도 기술을 배우던가 수학 학원에 다니던가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축구를 좀 줄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싶었다.

    물론 핑계는 있었다. 다른 어른의 말씀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현실을 반영해서 대안을 제안해 주시는 말씀을 들었다. 4년제 대학은 아니지만 스포츠를 전문으로 배우면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교였다. 사실 수능 응시 전에 진작 마음은 기울어 있었다. 시궁창 속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리 합격해 놓은 상태에서 준비한 수능이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 행운의 역사, 2년 : 학사학위(140학점+자격증 3개+평점 4.0) + 편입(영어) → 학사장교 → 대학원

축구가 좋아서 간 학교였는데, 축구랑은 거리가 멀었다. 스포츠를 배우기는 하는데 스포츠가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은 곳에서 스포츠를 배우기 위한 발판인 학교였다. 처음으로 '로드맵'을 비롯해 공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법을 배웠다.


그곳에서 알게 된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본인을 '약장수'라고 소개하시며 '좋은 약을 파는데 한 번쯤 속을만하지 않냐'라고 하시며 학생들에게 계획을 제시해 주셨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2년 동안 자격증 3개와 독학사 시험을 포함해 4.0 이상의 평점을 유지하며 140학점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영어 공부를 하여 편입한다. 다시 2년 안에 졸업 후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지 않기로 마음먹은) 대학원 진학을 제외하고는 다 해냈다. 이미 계획된 것처럼 단계별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학점은 매 학기 4.0의 평점을 유지했고, 학점 취득에 필요한 3개의 자격증과 독학사 시험을 전부 통과했다. 영어 시험도 지원한 3개의 학교 중 2곳, 그것도 1지망 학교에 덜컥 붙어버렸다. 얼떨떨했다. 덜컥 붙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합격에 자신이 없었는데 붙어버렸다.

    운이었다. 드디어 말하게 되는 운이 작용한 것이었다. 선생님을 비롯해 같이 편입을 준비하던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넌 솔직히 운이다.' 나도 부정할 수는 없다.

    첫 번째 자격증을 취득할 때도 실기시험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붙었다. 두 번째 자격증을 취득할 때도 간신히 턱걸이로 붙었다. 독학사 시험 중 한 과목은 '이게 너의 인생을 바꿀 거야'라는 선배의 말에 시험 이틀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붙었다.

    편입영어는 또 어떤가. 매번 모의고사 때면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기 십상이었지만 정작 수능과는 달리 본시험에서는 붙었다. 그것도 2지망의 학교는 떨어지고 1지망의 학교가 붙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떨어졌을 거로 생각하며 1년을 더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침대에 누워 대충 열어본 시험 결과에 깜짝 놀랐다.

    순전히 내 실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영어학원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는 엄마의 말에 대신 장학금을 받을 테니 계속 다니게 해 달라 말하고 유지한 4.0의 평점 정도였다. 그마저도 나보다 열심히 하는 동기생에 밀려 항상 2등이었다.

    그런 내가 2년 안에 이 모든 것을 해내다니! 나조차 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학점은행제 시험이나 독학사 시험이 쉽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솔직히 맞다. 다만 자격증 시험에서 붙어서 학사편입 요건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나 영어시험은 운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운은 꼭 행운이 아니다. 불운도 운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또 한 가지는 실력 없는 사람이 운만 좋다면 생각하면 스스로를 좀 먹게 되기 마련이다.

    1지망 학교의 시험 당일날 고사장에서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니다 그만둔 선배이자 누나를 마주쳤다. 같은 고사장의 같은 교실의 의미는 당연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누나 역시 나와 같은 전형으로 같은 과에 지원한 사실을 알게 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붙었고 누나는 떨어졌다. 그렇다면 거기서의 운이 정말 행운일까. 그 누나는 나의 합격 소식을 듣고 뭐라고 생각했을까. 걔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나는 운이 없구나 생각했을까.




• 불운의 역사, 그 한가운데를 지나며


'그만하면 안 돼?'


합격통지서를 가족에게 공개했던 날 돌아온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2년 안에 졸업과 학사장교라는 목표를 위해 동생의 지지를 업고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시작부터 뻐꺽거렸다. 영 내키지 않다는 부모님의 반응은 당연했다. 결과적으로는 다시 한번 어른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부모님도 말없이 지원을 해주셨다.

    우선은 돈이 필요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꾸어서 간신히 등록금을 납부했다. 그 외에는 학자금 대출과 국가장학금을 받았다. 한 번은 얼굴을 붉혀가며 친한 선배한테 기숙사비를 빌리기도 했다. 단기 알바로 매번 어찌어찌 급한 돈은 메꿨고 마지못해 입학을 허락한 부모님의 카드를 쓸 때면 매번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는 말이 다시 한번 맞았다는 것 말이다.

    학교 생활이야 '편입생 맞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한 때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탓에 그 너머, 아니면 내가 원래 있었던 곳을 잊어버렸다. 돈은 중요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돈 때문에 편협해지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다시 한번 운이 지나갔다. 학사장교에 지원하기 위해 본 한국사 시험에서 턱걸이로 1급을 취득했다. 아 역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문제는 그게 당시 내가 맛본 마지막 행운이었다.

    사실 학사장교 시험은 그냥 준비하면 된다. 솔직히 어렵지 않다. 동기들도 '그냥 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언젠가부터 '군대는 어떻게 할 거니?'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장교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건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2년 전부터도 지금을 위해 왔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그냥 준비하면 되는 것인데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행운이라 믿어왔던 것도 행운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빨리 일어나 아빠 사고 났어'


자초지종도 없이 엄마가 새벽에 깨우는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탔다. 엄마가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병원이 아닌 사고 장고로 말하는 것을 듣고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은 크게 안 다쳤구나 싶었다. 사고 현장에 가보니 아버지의 차는 앞 유리가 박살이 나 있었고 경찰과 주위의 사람들이 있었다. 저 멀리 가해 차량과 가해자가 서 있었다. 불운 시작이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연탄공장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지막 출근날에 낙상사고를 당하셔서 입원하신다. 또다시 불행 중 다행이라면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다. 얼마 뒤 이번에는 엄마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다리에 깁스를 하셨다. 결과적으로 그리고 이렇게 글로 적어 보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을 법한 일이지만,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은 '운의 부작용인가'라는 생각이었다.

    한 번 돌아보자. 그래 우리 형편에. 그냥 엄마가 그만하면 안 되겠냐 했을 때 그만두었으면. 그냥 삼촌을 말대로 빨리 정신 차리고 기술이나 배웠어야 했는데. 가뜩이나 부모님도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으셨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던 이유가 그렇게나 열심히 믿는 하나님께 이른 새벽부터 기도드리러 가다가 나보다 어린 무면허 운전자한테 당한 사고라니.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월세방 집에서 인생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나날이었다.


참 이상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여태껏 나에게 찾아온 행운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누가 보더라도 행운이었던 것들을 불행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가족들에게 일어난 불행들마저도 '불행 중 다행'으로 더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나의 행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은가. 더 이상한 것은 정작 불행의 당사자인 부모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고를 낸 어린 가해자의 앞날과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재판에 탄원서까지 써 줄 정도였다. 우리 집안 형편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조금 비약일지는 모르겠다. 아니다. 도약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행운이나 불운 같은 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운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운을 대하는 태도다. 운이라는 것은 행운도 불운도 아니다. 그냥 운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편협한 내 마음속을 헤집고 나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운 자체는 행운도 불운도 아니고 받아들이는 '나에게 달려있다'라는 생각이다.




• 태도, 운보다 중요한 것

중력은 우리가 지구에 발을 붙일 수 있도록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한편으로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우주 정거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지구로 떨어진다면 그때는 중력이 그 사람을 지구로 끌어당겨 대기권에서 산화할 것이다. 아버지가 당한 낙상사고도 중력의 작용이다. 우주여행을 하려면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 많은 연료를 써야 하지만, 우주에 나가서는 행성 간 중력을 잘 활용하면 연료를 적게 쓰고도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운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작용이다. 마치 중력 같은 것이다.

    일단 운이 작용하려면 운의 영향권 안에 들어야 한다. 시험이라면 접수와 응시를 해야 하고 로또라면 일단 사야 한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일단 했다'라는 '실행력'을 말하는 것이다. 여태껏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단 했기 때문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일단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운의 작용이 아니다. 원하던 것에서 운이 작용한다면 행운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사실 두고 봐야 하는 문제다. 불운을 보며 행운마저 운의 부작용인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운이 실력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운을 다룰 수 있는 실력이다. 무심코 사서 맞은 로또는 행운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간혹 당첨금을 탕진하고 더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듯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 태도, 운을 대하는 태도다.


엄마는 늘 겸손하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에게는 이상한 말이었다. 있는 사람이나 겸손한 것이지 없는 사람이 겸손하면 그건 겸손이 아니라 가식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생각해 봐도 엄마도 알고 하신 말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냥 겸손하라니까 겸손하라고 말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어른들 말씀은 다시 한번 맞았다. 이렇게 말하고 다닌 것이 맞았다. 돈과 겸손은 다른 영역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한다고 하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한 번은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진짜 겸손은 아니었지만, 무엇에서든지 일관된 내 태도였다. 아마도 그간 운의 작용을 받을 수는 있었던 것도, 내가 한 모든 실천마저도 내 실력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종종 그런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우리 집과 내가 조금 모자란 부분을 신이 운으로 메꿔주시는 건가 싶은. 그럴 때면 나는 운이 좋다 싶다가도 나는 운이 없으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며 스스로를 좀먹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운에 관한 내 생각과 올바른 태도는 다음과 같다.

행운도 불운도 아닌 운이 실력이 되려면 일단 해야 하고, 거기서 작용한 운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력이고, 다시 그러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을 대하는 태도다. 행운에 대해서는 내가 잘 난 것이 아닌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태도, 찾아온 불운에 대해서는 운이 나쁘다가 아니라 내가 모자랐다고 말하며 불운을 지극정성으로 대접해 돌려보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태도는 다름 아닌 지금 나의 태도다. 과거에 작용한 운도 미래에 운을 바라는 것도 아닌 지금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 지금 내가 흔들린다면 과거의 행운마저 불운으로 해석하게 된다. 겸손하지 않다면 노력하지 않고 그러면 운의 작용을 받을 수 없다. 그날그날 나의 마음에 따라 운이 행운인지 불운인지가 정해진다. 이렇게 말하면 참 줏대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이다. 어쨌든 지금 나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과거의 운을 판가름하는 것은 지금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또 운을 바라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보다 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예 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노력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웬만한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그보다는 운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하지 말고. 찾아온 운을 잘 다루고 대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다음에 또 찾아올 수 있도록 하자.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그러려면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

    물론 언제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운이 필요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면서도 겸손한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사람인 이유로 중력과 같은 운의 영향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 정도로 보일 정도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아니면 뭐든 죽기로 열심히 하는 태도를 갖추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실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결국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상하지 않나.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되고 운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에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면. 하지만 사실이다.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 운은 이런 사람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운을 바라지 않더라도 운의 작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겸손하기까지 하면 운마저 본인의 능력 안에 두는 것이다. 돌고 도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 - 운이 작용한다 -  겸손하게 운을 다룬다 - 겸손하면 열심히 한다. 운에 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교수님께서 '운을 통제하려는 생각이 놀랍다'라고 하신 사람의 예를 들며 이상 에세이를 마친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입니다" -오타니 쇼헤이가 쓰레기를 줍는 이유


오타니가 청소년 때 작성한 만다라트. 



* 원문은 가독성, 특정 고유명사, 맞춤법을 위해 수정

** '우주의 언어'라 불리는 수학을 다시 공부할 것

***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것이 없다지만 군대에서 나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떻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0_남은 것, 남길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