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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사 Dec 16. 2020

취미에 중독되다

회사에 복직하고 한동안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듯 생활했다. 무기력에 대한 대비를 한다고 했어도 막상 맞이하는 현실 앞에서 어김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인 압박속에서 할 수 없이 복직을 했지만 휴직에 대한 아쉬움까지 달랠 수는 없었다. 

휴직을 했을때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리라는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중도에 복직을 했다라는 패배감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6개월의 짧은 공백이 회사 생활에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같은 업무 같은 사람 모든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대로라고 해서 거기에 맞춰 나의 마음가짐마저 변하는 것이 없다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해답은 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대하는 내가 달라져 있지 않다면 나에게 주어진 변하지 않은 환경따윈 핑계일 뿐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삶의 환경들을 취사선택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무기력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무의식이 무기력을 부정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은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 되보고 싶었다. 그런척이라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미친 듯이 열정적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예전부터 취미란에 자신있게 쓸 수 있는 나만의 취미를 갖고 싶었다. 그렇다고 활동적인 여가활동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축구, 자전거 등 시간이 날 때 틈틈이 했던 그런 것들 말고 새로운 아이템에 나의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그런 취미를 갖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도시어부”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연예인들이 바다에 나가 선상 낚시를 하며 시청자들에게 낚시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이였다. 그걸 보면서 문득 낚시에 빠져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새로운 영역에 나의 열정을 쏟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열정을 갖는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나만의 결론이 나왔다. 나는 다음달 당장 집 근처의 낚시점으로 갔다. 넓직한 낚시점에서 갖가지 낚시 장비장비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무엇부터 사야할지 난감했다. 우선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안녕하세요, 저 문어 낚시를 갈려구 하는데 낚시대 좀 추천해주세요”

사장님은 몇가지 문어 전용 로드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선택을 해보라고 했다.

“저..제가 처음이라 무엇이 좋은 지 모르겠네요. 어떤 것이 좋은 거예여”

사장님은 잠시 나를 보시고는 웃으셨다

“좋은 것은 비싼 것이 좋은 것이죠, 그래도 처음 입문하시는 거니까 적당한 가격대에 손에 쥐어서 편한 것을 써보세요”

나는 사장님 골라주신 몇 개의 낚시대중에 정말로 부담되지 않는 가격선에서 그냥 손에 들었을 때 느낌이 좋은 것으로 골랐다.

“낚시 처음 이신 것 같은데, 릴은 있으세요”

사장님은 무심하게 나에게 물으셨다(아마 초보라고 하니까 봉 잡았다 싶으셨을 것이다)

“릴이 뭐죠”

“낚시대가 있으면 릴이 있어야죠, 베이트릴이 문어 낚시에 편할거예여”

사장님은 약간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낚시점에서 미친듯한(?) 구매가 시작되었다.

베이트릴에 이어 낚시줄, 채비, 봉돌, 에기 등등 준비물들이 한 가득이였다. 가격적인 부담은 덤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기대감이 나를 흥분시켰다.

몇일동안 미친듯한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 시청을 통해 문어 낚시에 대해 알아보았다. 알면알수록 준비해야 될 것과 연습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베이트릴에 원줄 감기를 시작으로 낚시 매듭법, 채비 결속법등 현장에서 알고 있어야 할 기술들과 문어 낚시 방법, 에기 다는 법, 문어가 좋아하는 에기 등 엄청난 정보량을 검색하고 공부했다. 그래도 준비하는 동안 무기력에서 벗어나 기대감이라는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으니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아니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문어 낚시배를 예약했다. 그런데 출항 시간이 새벽 4시반까지 였다. 군산까지 그 시간에 갈려면 대전에서 적어도 새벽 2시에 출발해야 했다. 저녁을 일찍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에 출발할려면 잠을 좀 자둬야했다. 잠깐 눈을 붙이자 어느새 알람이 울렸다. 잠이 안와 뒤척이다 한 두시간 잔 것 같은데 피곤하지 않았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준비해논 낚시 장비들을 차에 싣고 군산으로 향했다. 

9월의 새벽공기 속 고속도로에는 커다란 짐을 실은 화물차들이 많았다. 나는 초행길이고 야간 운전이라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나혼자 운전하는 경험은 처음이였다. 하긴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은 처음이였다.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고속도로를 나 혼자 달리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것은 여행이였다.

 군산에 도착해서 승선부에 이름을 쓰고 선착장으로 갔다. 수많은 배들이 바다위에 오와 열을 맞춰 떠 있는 풍경이 장관이였다. 배들의 숫자에 놀라고 그 이른 새벽에 나와있는 많은 사람들에 또 놀랐다. 새로운 세상에 놀러 온 것처럼 기분마저 들떠 있었다

인원체크를 하자 먼 바다를 향해 수 많은 배들이 항해해갔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두운 바다에 어딘가에 있을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배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는 경험을 했다. 밤바다 위에서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들으며 별들을 보고 있자니 그 어떤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완전한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진정한 취미생활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현실에 남아있는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을 잠시 잊고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말이다. 나는 이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넓은 바다 어느 지점에 오자 낚시배의 엔진 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상어 포인트에 도착한 것이다. 선장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고 나는 첫 낚시대를 드리웠다. 아직 동이 트기전 어두운 바다속에 낚시대를 담그자 낚시줄을 통해 전해오는 바다속의 울림이 좋았다.

 바다속 바닥에 붙어 있는 문어가 내 에기를 무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했다. 유튜브를 통해 문어 낚시 채널을 정독하다시피 구독해서 이론적으로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지만 몸으로 전해지는 입질을 어떨지 기대도 되었다.

“끈적”

무엇인가가 끈적거리며 바다속으로 나의 낚시대를 잡아당겼다. 나는 본능적으로 무엇인가가 물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경험해보는 입질 앞에서 나의 모든 신경이 집중되었다. 힘겹게 릴을 감자 묵직한 것이 딸려 온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문어였다.

저 깊은 바다속에서 낚시줄 하나로 원하는 대상어를 끌어 올리는 경험은 나의 아드레날린을 자극시키기엔 충분했다.

“우와 이거 재밌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희열감이였다. 아니 이건 성취감이였다. 무기력한 내가 그토록 느끼고 싶었던 성취감말이다. 낚시꾼들 사이에선 이런 느낌을 흔히 “뽕맞았다”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헤어나올 수 없는 낚시의 손맛이란 뜻이다. 그렇게 시작된 낚시는 오후 늦게가 돼서야 마무리 되었다. 아쉬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하루의 모든 것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려온 것부터 문어낚시의 첫 손맛까지 그 느낌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낚시를 갔다오고 내 모든 관심사는 이제 낚시에 집중되었다. 회사에서도 낚시 생각으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에서도 낚시 채널을 보며 낚시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몇 일 뒤 또 낚시배를 예약했다. 이번에는 저번에 준비하지 못한 장비들을 마련했고 몰라서 미흡했던 부분들을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했다. 

그렇게 준비를 해서 문어가 많이 나온다는 바닷가 항을 찾아 새벽마다 출발했고 그때마다 낚시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어떤 주에는 두 번씩 낚시를 간 주도 있었다. 밤을 새다시피하고 다음날 하루종일 배위에 있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였다. 낚시를 갔다오면 다음날 그 다음날 까지 피곤함에 정신없이 잠을 자야했다. 다행히 근무특성상 여유를 낼 수 있어서 낚시를 가는 다음날에는 근무를 쉬어서 집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렇게 회사일은 뒷전이고 집안일도 하지 않고 새벽마다 낚시를 하러 나가니 집사람도 나의 생활패턴을 문제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낚시를 그만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낚시를 하는 동안은 모든 잡생각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낚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좋았다. 새벽운전, 배위에서의 설레임, 낚시의 손맛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3개월을 온통 낚시와 함께 하며 보냈다. 이제는 계절이 바뀌고 날씨도 추워졌다. 하지만 낚시를 포기할 수 가 없었다. 낚시를 안간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 저편에서 그동안 잊었던 무기력의 감정들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낚시밖에 할 게 없었다. 나는 또 다시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를 통해 12월에 대광어가 잡힌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대상어를 바꿔 광어 낚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같은 루어 낚시이고 문어낚시와 비슷한 점이 많아 광어 낚시 공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또 낚시점에 들러 광어 관련 정보들과 웜.지깅 낚시대, 훅등을 구매했다. 그리고 쇼크리더 매듭법등 광어 낚시에 필요한 정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기력으로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던 나인데 이렇게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반가웠다. 광어 낚시 역시 문어와는 또 다른 손맛을 맛보게 했다. 

“우와 이것 역시 재밌는데”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미친 듯이 낚시에 집중했다. 커다란 광어가 올라오면 나는 그 성취감에 매료되어 계속해서 낚시대를 바다에 드리우게 되었다. 

그렇게 낚시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어느날, 계절이 바뀌어 이제는 집에 돌아갈 때 어두운 밤이 되었다. 새벽에 나와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가는 길. 내 안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렸다

“이건 중독이야. 다른 것을 잊기 위한 중독”

그렇다. 이건 무기력을 극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무기력을 미뤄두고 있는 것이였다. 나는 무기력을 마주하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잊어보려 핑계를 되고 있던 것이다.

취미생활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간간히 마주하는 힐링을 하는 시간이여야한다. 나는 지금 무기력을 잊고 있다고 착각에 빠진 나머지 다른 것에 중독되버린 것이다. 이것 마저 싫증나버리면 나는 또 다른 자극을 찾게 될 것이다. 

 자극에 익숙해지면 안된다. 자극에 익숙해지면 중독될 것이고 그건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낚시에 빠진 지난 5개월 동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험이였고 즐거운 시간이였다. 하지만 낚시에 중독되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들을 부정해서는 안되겠다. 가족,회사,그리고 취미생활, 모든 것들이 적당히 어우러져서 또 하나의 나의 생활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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