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나 주문이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조금 여유를 부려본다. 평소처럼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참 좋다. 그리곤 공방으로 느긋하게 출근한다. 출근이란 말이 왠지 어색할 정도로 설렘이 느껴지는 건, 공방이 나만의 작은 아지트 같아서일까.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하는 건 청소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이 시간이 꽤 즐겁다. 작업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흩어진 꽃잎들과 먼지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하나하나 정리하고 깨끗이 닦아낼 때마다 마음도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고요한 공방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홀로 청소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내 손길로 정리하는 일이 왠지 모르게 평화롭다.
청소를 끝내고 나면, 공방 한켠에 고이 말려둔 꽃들을 살펴본다. 색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아이들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살짝 빛이 바랜 꽃들도 있다.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드라이 플라워 특유의 매력이 더해져서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꽃들을 만질 때마다 "참 잘 말랐구나, 너도 고생했어" 하고 혼자 속삭이기도 한다.
가끔은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꺼내서 하나씩 살펴본다. 오래된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색이 바래기도 하고, 형태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새롭게 손질해주고, 때로는 과감하게 리터치하기도 한다. 꼭 오래된 친구에게 새 옷을 입혀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예쁘게 변신한 작품을 다시 선반에 올려놓으면, 공방이 한결 밝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공방에 여유가 생길 때마다 자꾸 꽃시장이 생각난다. 한 번 다녀오면 한동안 가득히 차 있는 꽃들을 볼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시장에서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설렘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작은 들꽃들을 보거나, 생화로 반짝이는 꽃다발 사이에서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꽃을 사 와서 공방에 돌아와서는, 그날의 새로운 꽃들을 말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 드라이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하며 하나하나 정성껏 손질하는 그 시간이 꽤 흥미롭다.
수업도 주문도 없는 한가한 날이지만, 이렇게 공방에서 꽃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여유롭게 청소를 하고, 손으로 만져가며 작품을 리터치하고, 새로운 꽃들을 드라이하면서 오늘도 공방에 작은 생명을 불어넣는다. 누구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하루하루가 쌓여 공방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시간이, 공방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