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제일 먼저 드라이플라워가 떠오른다. 이 계절엔 말릴 수 있는 예쁜 소재들이 참 많아지고, 또 그 색감이 어쩜 이렇게 깊고 고운지! 붉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들, 갈대밭을 살랑이며 지나가는 바람… 여름의 무성한 녹음을 지나고 나면 가을의 차분하고 따뜻한 색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가을의 꽃들은 왠지 온기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특히 이맘때면 드라이플라워를 활용한 작업이 한층 재미있어진다. 봄에 말려둔 꽃들도 꺼내 보고, 새로 손에 들어온 갈대와 나뭇잎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드라이플라워의 색이 은은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사람들의 변해가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마음도 차분해지고, 잔잔한 쓸쓸함에 잠기기도 한다. 이 느낌, 참 좋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을이 왜 이렇게 짧아지는지! 아직 붉게 물든 가을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벌써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고, 꽃시장에도 초록빛 전나무와 반짝이는 오너먼트들이 나와 있다. 분주한 겨울 준비가 시작된 이 와중에 나만 가을을 조금 더 붙잡고 싶은 기분이다. 여느 때 같았으면 크리스마스 장식에도 벌써 손을 대고 있었겠지만, 올해는 아직 가을의 따뜻한 색을 놓치기 싫어서 가을 작품에 더 오래 머물고 있다. 느릿느릿 가는 내 공방이 점점 더 좋아지는 요즘이다.
가을은 여유롭다. 바쁜 여름을 지나 나무들이 천천히 잎을 내려놓고, 온 세상이 조용히 겨울을 준비하는 느낌. 그래서 가을은 조금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갈대밭을 지나가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면, 마치 “조금 쉬어가자”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가만히 그 모습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가을의 드라이플라워가 주는 온기는 그래서 더 특별한 것 같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계절의 따뜻한 기억 같은 느낌. 겨울이 오기 전, 이 온기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가을은 짧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또 돌아올 가을을 기다리며 새로운 꽃들과 함께 따뜻한 작품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