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Jun 23. 2024

미국은 어떻게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이 되었을까?-1부

유럽의 전란이 키워 준 풍요의 땅

  미국이 세계 최강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냉전기에는 소련과 경쟁했고 1970-8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대국화에 위협을 받기도 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두로 인해 신냉전 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논의도 나오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하는 세계 최강국임은 지금도 부인할 수 없고 가까운 미래에도 이 같은 추세가 크게 바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미국은 이미 19세기 말에 접어들어 영국과 1‧2위를 다투는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국가들이 쇠퇴하면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은 절대적인 수준으로까지 대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공산권이 소멸하고 냉전 체제가 종식된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질서는 어찌되었든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20세기 이후 어떻게 영국 등 유럽국가를 제치고 자본주의 세계의 새로운 종주국이 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청교도 정신, 그리고 일찍부터 발달한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를 미국이 가진 저력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듯 하다.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동시에 진출할 수 있는 미국의 독보적인 지정학적 이점을 미국이 초강대국,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으로 대두할 수 있는 지리적 힘으로 여기는 논의도 있다. 미국이 가진 광활하면서도 비옥하고, 자원이 매우 풍부한 국토에서 미국의 저력을 찾는 관점도 있다. 어떤 시각이 무조건 맞다, 틀리다 하는 식으로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이 같은 논의에는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그런데 애초에는 북아메리카 동부에만 영토를 갖고 있었던 미국은, 어떻게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최강국,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유럽의 전란이 키워 준 풍요의 땅

  미국은 독립 시점부터 지리적으로 상당한 혜택을 받은 나라였다. 비록 독립 당시 미국의 영토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유럽 대국의 면적에 못지않거나 또는 그보다 더 넓을 정도였다. 게다가 신생 미국의 국토는 지리적으로 매우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다. 미국 동부에는 일단 사막이나 열대우림 같은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이 거의 없고, 대부분 사람이 살기에, 그리고 농사를 짓거나 상공업을 하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 이는 같은 신대륙이지만 안데스산맥의 고산지대나 아마존 열대우림, 파나마지협과 같이 인간이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극단적인 환경이 넓게 펼쳐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아메리카 식민지와는 차별화되는 점이었다. 

  토질도 비옥했고 자원도 풍부했다. 우선 애팔래치아산맥은 산업자본주의의 핵심 자원이었던 석탄과 철이 풍부하게 매장된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게다가 미국 동부에는 쌀이나 밀, 보리처럼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이 자생하지 않아 남미에서 옥수수, 감자 등의 작물이 유입되기 전까지는 농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유라시아 등지에 비해 지력소모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짓기에 매우 유리했다. 미국은 이처럼 기름진 미국 동부 땅에 면화, 담배, 옥수수 등의 작물을 대규모 농장을 일구어 재배하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같은 미국의 지리적 이점은 독립 이전, 식민지 시절부터 빛을 발해 왔었다. 1600년에서 1766년에 이르는 동안 식민지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영국 본국과 비교해도 두 배나 되었으며, 독립전쟁 당시 식민지인들의 1인당 소득은 세계 최고에 달할 정도로 부유했고, 영국 본토와 거리가 멀고 미개척지도 많았던 덕분에 일찌감치 주민자치가 이루어지면서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그것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바탕도 다져질 수 있었다.

  미국 동부의 ‘축복받은’ 지리적 환경이 곧바로 미국의 오늘을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시절은 물론, 독립을 달성한 뒤에도 한동안은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영역은 미국인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음은 물론 넘어갈 수 없는 위험천만한 땅이기도 했다. 애초에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은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식민지이고 했거니와, 넓은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었던(1800년 기준 530만여 명) 미국에는 미개척지가 많았고 그런 곳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적대적인 원주민에게 목숨을 잃거나 야생동물의 먹잇감이 될 위험성도 컸다. 

  19세기 유럽의 지정학적 격변은 미국에 큰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그 시발점은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는 7년 전쟁으로 인해 광대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영국에 빼앗기거나 스페인에 할양하면서 모두 상실했다. 하지만 179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종신집정에 취임한 나폴레옹은 이듬해인 1800년 스페인과의 비밀조약을 통해 오늘날 미국 중부에 위치한 광대한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되돌려받았다. 북아메리카에도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의 발로였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당시 미국 대통령은 서쪽 국경 너머로 강대한, 그리고 새롭게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들어서자,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와의 우호관계를 다지기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뜻밖에도 미국 측에 루이지애나 구입을 권유했고, 제퍼슨 정부는 결국 이를 수락하면서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이 이루어졌다. 루이지애나 매입의 동기와 과정에 관한 기록이나 사료 등이 생각보다 적어서 이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유럽 본토에서의 군비 부담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던 데다 결정적으로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티의 독립(1804년 1월 1일)마저 기정사실화하면서 프랑스 본국과 루이지애나 사이의 보급선에 치명타가 가해지다 보니, 나폴레옹은 해군력이 우세한 영국에 루이지애나를 내줄 바에야 차라리 부르봉 왕조 시절부터 우방국이었던 미국에 판매하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 영토를 순식간에 곱절로 키워 주었다. 게다가 루이지애나 땅은 질적으로도 동부 못지않게 훌륭했다. 우선 루이지애나는 세계적인 농업지대인 대평원을 품은 땅이다. 대평원은 광대하고 토질이 비옥한 데다 한 데다, 미국 동부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지력소모 역시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그냥 비옥하고 넓은 땅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그 어떤 곡창지대와도 격을 달리할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대단한 땅이었다. 대평원은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필요한 거대한 농업 생산력을 안겨주었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거대한 영토에 비해 여전히 인구가 적었던 미국에서, 대평원의 농지는 수많은 미국인에게 안정된 삶과 부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산업화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겪었던 수많은 노동자들과 소작농들이 극심한 빈곤에 내몰려야 했던 문제가 미국에서는 눈에 띄게 완화될 수 있었고, 땅은 넓고 비옥한데 인구는 그에 비해 확연히 적으니 도시노동자, 농업노동자에 대한 처우도 좋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출산율의 증가로 이어져 장래 미국의 시장 규모를 키우고 노동력을 공급하는 자본주의 성장의 잠재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미국의 영토 변화(출처: 위키피디아)

  게다가 미시시피강, 미주리강, 오하이오강 등 이곳을 흐르는 대하천은 유량이 풍부해 대평원에 충분한 농업용수를 공급할뿐만 아니라, 미국 국토를 자연스럽게 분할하는 형태로 흐르면서 미국 각지를 이어주는 수운교통로 구실까지 해 준다. 그 덕에 이들 하천은 철도교통과 도로교통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주된 교통수단으로 쓰이며 기존 영토와 새롭게 편입된 옛 루이지애나 영토를 잇고, 나아가서는 훗날 미국이 병합할 서쪽 땅과의 지리적 연결고리로까지 작용할 수 있었다. 물자수송에 유리한 이들 하천이 대평원의 농업은 물론, 오대호와 이어지는 철강업과 석탄산업의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루이지애나 식민지의 중심지이자 미국과 유럽을 이어 주는 관문 구실을 하던 무역항 도시 뉴올리언스는 미국의 무역 발달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이는 미국이 자본주의 강국으로 대두할 잠재력을 더한층 키워 주게 된다.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안겨준 나폴레옹은 1815년 완전히 몰락했지만, 그는 그 뒤에도 결과적으로 미국의 영토를 계속해서 늘려 주었다. 나폴레옹 전쟁 중 프랑스에 나라를 빼앗긴 스페인 왕실이 이 때문에 권위와 영향력을 실추하면서 1810년대 이후에는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1820년대에 이르러 남북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 전역은 멕시코, 그란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으로 독립하는 데 성공했다. 국력이 크게 쇠퇴한 스페인으로부터 1819년 플로리다를 매입한 미국은, 당초 멕시코 영토였던 텍사스의 미국-멕시코 접경지대로 이주한 미국인들의 권리보장을 구실로 텍사스에 1836년 미국의 괴뢰국인 텍사스 공화국을 세우게끔 만들었고, 1845년에는 이를 병합해 버렸다. 이 때문에 일어난 미국-멕시코 전쟁(1846~48)에서 승리한 미국은 오늘날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 전체, 아리조나주 대부분, 그리고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와이오밍주 일부에 해당하는 거대한 멕시코 영토를 미국령으로 병합한 데 이어, 1853년에는 멕시코를 위협해 오늘날 아리조나주와 뉴멕시코주 남부를 이루는 영토를 멕시코로부터 매입했다(개즈던 매입, Gadsden Purchase). 미국은 전쟁 전 멕시코 영토의 절반도 넘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자국령으로 빼앗은 셈이었다.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영토에는 네바다사막, 소노란사막 등과 같은 황무지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땅은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를 품은 루이지애나 못지않은, 또는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자원과 교통이었다. 우선 텍사스와 뉴멕시코에는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된 지역이다. 특히 텍사스는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석유 매장량이 풍부하고, 품질도 매우 좋다. 오늘날에도 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세계적인 고품질 원유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그 덕분에 미국은 19세기 중반~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최고의 산유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고, 텍사스와 뉴멕시코에서 생산된 석유는 미국의 산업과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미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달한 석유산업 역시 미국 경제와 자본주의에 큰 보탬을 주었다.

  게다가 태평양에 연한 캘리포니아까지 손에 넣으면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동시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다시피 한 지정학적·경제지리적 이점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로써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물론, 무역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시아·태평양과의 지리적 연결고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서 미국은 1846년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북서부의 오리건 영토(오늘날 오리건주, 워싱턴주, 아이다호주 전역 및 몬태나주 일부)를 획득했고,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데 이어 1898년에는 독립국이었던 하와이 왕국마저 자국 영토로 병합하며 오늘날의 영토를 완성했다.

  19세기 미국이 완성한 대서양 방면은 물론 태평양 방면으로도 넓은 해안선을 가진 거대한 영토는, 러시아나 중국, 인도의 통일왕조와 같은 다른 대제국도, 그리고 당대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도 갖지 못했던 독보적인 지정학적‧경제지리적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미국은 두 대양으로 동시에 진출할 수 있는 거대한 대륙국가, 즉 해양국가이면서 대륙국가의 이점까지 동시에 가진 나라로 떠올랐다. 두 대양과 동시에 접한 데다 해안선도 길었고 부동항 문제라는 골칫거리도 없었던 미국은, 해상무역, 그리고 식민지 확보라는 산업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경제발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원이 풍부한 거대한 영토는 미국 경제에 풍부한 원자재를 공급함은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 필수적인 규모의 시장도 제공할 수 있었다. 남쪽의 멕시코는 이미 미국의 적이 아니었고 북쪽의 캐나다를 식민지로 거느린 영국과는 19세기 중반 이후 우호관계를 확립했으며, 이외의 나라는 대양을 건너지 않으면 미국 본토에 침공할 수도 없으니, 미국 경제는 더한층 안정적으로 발전할 지정학적 잠재력까지 얻었다.

  하지만 미국의 영토 확장 그 자체가 미국 자본주의의 급성장, 급팽창으로 이어짐을 담보한다고 단정짓기 어려운 측면도 적지 않았다. 태평양에 연한 서부 해안지대와 미국의 중‧동부 사이에는 한 세기 전까지 미국의 서쪽 끝이라 여겨졌던 애팔래치아산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험준한 로키산맥, 그리고 네바다주와 아리조나 등지의 넓고 척박한 사막과 같은 거대한 천연 장애물이 펼쳐져 있었다. 서부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보안관과 무법자, 현상금 사냥꾼과 떼강도들이 수시로 총격을 벌이는 극단적인 무법천지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서부개척에 나선 사람들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고달프고 열악했으며 때로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협에 봉착하기도 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신다’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미국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강자, 종주국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국토가 주는 독보적인 이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어야만 했다.       


참고문헌

아자 가트 저, 오은숙·이재만 역, 2017, 『문명과 전쟁』, 교유서가.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저, 김태훈 역, 2020,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세종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 김진준 역, 2012, 『총, 균, 쇠』, 문학사상사.

황유정 저, 2020, 《미국과 캐나다: 자연‧산업과 도시들》, 이담.

Gleijeses, P. 2017. Napoleon, Jefferson, and the Lousiana Purchase.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39(2).

Winchester, S. 2013. The Men Who United the States. New York: Harper.



매거진의 이전글 신용의 차이가 바꾼 세계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