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퇴사합니다!
전 회사에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 때 했던 작은 다짐 하나는 조금 유치했다. 이번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내야지. 적당히 친분을 나누되 사실은 개인주의로 살아야지.
이런 다짐을 한 건 아마도 이전 회사가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타지 생활을 하며 다닌 첫 회사이고, 서울에는 친한 사람이 없으니 내가 가진 커뮤니티라곤 직장 동료들이 유일했다.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떠들고, 퇴근 후에는 여기저기 맛집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떠드는 일상을 4년이 넘도록 해왔으니. 물론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 같은 팀이 아니다 보니 때때로 느끼는 서러움과 외로움이 있기도 했고, 그래서 일부러 정을 떼겠다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라 그런 유치한 다짐들은 금방 잊히기도 했다.
아무튼 서울에서 만난 첫 동료들과는 여전히 잘 지내고 매일 이야기를 하지만 다음 직장에 갈 때는 그런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나를 힘든 상황에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있는 시간에는 수다도 떨고, 밥도 먹겠지만 그 외에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따로 만나거나 연락을 하진 말아야지 라는.
그리고 세 번째 회사를 1년 6개월 다니는 동안 나는 나름 개인주의적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의 선을 넘나들며 너무 많은 관심과 마음을 쏟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퇴사를 앞두고 사람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다 보니 내가 생각을 한참 잘못했구나 싶었다.
퇴사가 정해진 것은 3월 말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은 내 의사를 가볍게 무시하며 일어났고, 기어코 퇴직 의사를 밝히게 했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한 나머지 '권고사직의 뉘앙스가 있는 발언'을 문제 삼을까도 생각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이때 내심 깨달았다. 생각보다 더, 나는 이 회사를 좋아했구나 하고.
실제 퇴사는 6월에 하게 되었는데 후임자가 너무 늦게 구해지기도 했고, 또 구해진 후임자가 입사를 번복하는 바람에 다른 후임자에게 일정을 맞추느라 늦어졌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비록 퇴사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했지만 후임자의 일정까지 감안하여 가능한 늦은 퇴사를 했다. 물론 이게 오롯이 회사를 배려해서만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나도 퇴사가 결정된 이후 무려 2달 반 가까이를 다니며 준비의 준비를 거듭한 셈.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퇴사일이 다가올 때마다 팀 동료, 타 팀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셨고 때때로는 근무가 끝난 저녁 시간에 따로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좋은 이야기들, 특히나 함께 일해서 너무 좋고 헤어져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회생활 경험치가 쌓이면 쌓일수록,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다. 예의상 발언을 입에 올리는 일은 숨 쉬듯 해도 그런 걸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는 굉장히 엄격하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축하를 건넨 사람들의 진심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개인주의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려 다짐했고, 그렇게 행동했다는 말, 그러나 동료들이 이런저런 말을 들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두루 들은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아무래도 정든 회사가 맞는 것 같다. 내 다짐의 결과는 실패였고, 진심은 진심으로 통하는 법이라는 걸 또 한 번 배웠다. 회사 내 인간관계로 속앓이를 했던 내게 '개인주의'는 그저 나를 지키는 방패막에 불과했고, 사실 내가 타고난 본성은 늘 그렇듯 제 할 일을 묵묵히 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