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기억_최강 롯데!
정보 교류를 위해 찾은 오픈채팅방에 '갈매기'라는 닉네임으로 입장을 했다. 대번에 이런 질문이 날아왔다.
'야구 좋아하시나 봐요?'
'롯데팬이신가요?'
야구와 전혀 관련 없는 오픈채팅방이었지만 '갈매기=롯데자이언츠'라는 공식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부산에서 태어나 30년을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치고 롯데자이언츠 팬이 아니기는 쉽지 않다. 물론 나는 모태팬은 아니지만 대학교 때부터 야구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니 이제 제법 오래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한 팬인 셈이다.
처음 롯데자이언츠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축구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붉은악마에서 활동을 했고, 축구에 빠져있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직접 보러 독일로 날아갔을 정도 열렬했는데, 그때 친구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내가 축구장에 한번 따라가줄게, 나랑 야구장에 가자!'
당시 내게 야구는 지루하고 긴 스포츠라는 인식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함께 가주지 않는 축구장을 함께 가주겠다니 흔쾌히 수락했고 그렇게 방문한 사직야구장에서 나는 어떠한 계시를 받았다. 바로 롯데자이언츠에 열광하라는.(ㅎㅎ)
그렇게 내가 가장 처음 산 롯데자이언츠 유니폼은 등번호 49번 홍성흔. 조-대-홍-갈로 이어진 막강 중심타선이 롯데 특유의 화끈한 야구를 이끌었던 바로 그때. 주황색 봉다리를 머리에 쓰고 신문지를 흔들며 응원하던 바로 그 시절.
그 이후 매년 사직야구장 방문 횟수가 조금씩 늘어났고, 야구는 빠른 속도로 축구를 내 마음에서 완전히 밀어냈다. 대학생에서 취준생을 지나 직장인이 되면서 나는 기동력과 경제력을 둘 다 가지게 되었다. 풀옵션에서 한 단계 아래였던 경차와 연봉 3천도 못 받던 시절이긴 해도 내 손으로 밥 벌어먹고 살 때라 사직야구장 직관 경기가 있을 때면 3연전 중 못해도 1경기는 꼭 관람했고, 롯데자이언츠의 마지막 가을야구도 부산과 마산을 오가며 직관했다.(그때는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는데...!)
아무튼 이대호가 팀을 잠시 떠나고,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고, 충격의 이적을 거치면서 내 야구 사랑은 살짝 미지근해졌다. 특히 상경을 해서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코로나로 무관중 경기를 하던 시절에는 아예 야구를 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집 나간 애정이 돌아온 재작년. 다시 서울에서 수도권 경기를 챙겨 직관하기 시작했고, 매일 오후 6시 30분만 되면 야구를 봤으며, 유튜브 야구 채널을 두루 방문하며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온갖 짤과 썰과 목격담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X도 활발히 지켜보고 있다.
작년 튼동, 아니 김태형 감독님이 우리 팀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아무리 찾아도 그 기쁨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굉-장한 기쁨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SSG 멤버십까지 가입하며 직관한 개막전을 모두 내어주며 불안하게 시작한 올 시즌. 직관 성적마저 승보다 패가 두 배 넘게 많을 정도로 성적은 기대 이하이지만 롯데자이언츠 팬들이라면 느낄 것이다. 우리 팀이 바뀌고 있다고. 오락가락 매일 바뀌던 라인업이 점차 고정되고, 기대를 받던 젊은 선수들의 에너지가 폭발하고, 베테랑의 집념과 헌신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경기의 키를 쥐는 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물론 아직은 변화라는 터널의 초입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감독님이 공언한 대로 정말 3년 이내에 대권에 도전할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도, 하필이면 부산에서 태어나서 롯데팬이 된 것도 어느 것 하나 의도한 것은 없지만 나는 내가 롯데팬인 것이 썩 마음에 든다.(물론 마음이 썩을 것 같은 날도 많음) 그런고로 경기도 갈매기는 오늘도 방구석에서 롯데의 승리를 소리 높여 외친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언제나 변함없이 이곳, 이 자리에서!
※도저히... 한 장만 올릴 수 없는 팬심을 이해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