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1시, 문해교육교원 연수장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열기였다. 단순히 교실의 온도가 아닌,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런 열기. 5시까지 이어진 연수는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되었다. 강사들의 열의가 넘쳐 흐르는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내 입술 한쪽이 올라갔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이 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문해교육.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여러 사정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내 마음은 어느새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대학생이었던 나,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 누군가에게는 그저 봉사활동 한 줄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삶의 방향을 정해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강의실 창밖으로 목련이 하늘 거린다. 그때 문득, 어두운 교실에서 촛불 하나로 시작했던 야학 첫날이 생각났다. 열정으로 가득 찬 그 날,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캄캄해진 교실. 당황한 우리 앞에서 수강생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학생의 가방에서 꺼낸 작은 양초 하나. "늘 가지고 다녀요. 정전될 때를 대비해서." 그 한 마디에 담긴 배움에 대한 간절함이 교실 전체를 적셨다. 그 작은 불빛에 의지해 서로의 얼굴을 비추며 웃었던 순간. "선생님,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하던 그들의 눈빛은 오늘의 연수생들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들. 공장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와서 졸음을 이기며 공부하던 철수 아저씨,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다 손이 트고 갈라져도 연필을 놓지 않았던 영희 씨, 아이 셋을 키우며 야학에 다니던 순자 씨. 그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만큼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내가 그들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음에도, 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존중했다. 특별히 잊히지 않는 순간은 내 스물두 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수업을 평소처럼 진행하고 있는데, 수업 마지막에 갑자기 교실 불이 꺼졌다. 당황해 있는데 촛불과 함께 작은 케이크를 든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모두가 조금씩 돈을 모아 케이크와 손수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우리 인생의 빛이에요. 우리도 선생님께 작은 빛이 되고 싶어요."라고 서툴게 쓴 손글씨 카드. 그때 흘린 눈물이 아직도 내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은 미영이었다. 마흔셋, 초등학교만 조럽한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 몰래 야학에 다녔다. 처음에는 글자를 써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좌절하곤 했다. 매일 밤 수업이 끝난 후 빈 교실에 남아 그녀와 함께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었던 시간. 두 달 만에 미영이가 처음으로 멘델의 법칙을 이해했을 때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그 기쁨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이제 남편한테 편지를 쓸 수 있겠어요. 아이들에게 엄마가 쓴 편지를 보낼 수 있겠어요. 선생님,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던 그날, 나는 깨달았다. 문해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학기가 끝날 무렵, 검정고시 시험장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던 그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할 수 있다"고 다짐하던 모습. 결과가 나왔을 때 환호하며 껴안던 그 기쁨. 그 순간들이 오늘 연수실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연수가 한창이던 오후 3시, 강사가 문해교육의 사례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슬라이드에 나타난 한 여성의 사연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57년 만에 글을 배워 남편에게 첫 편지를 썼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영이... 나이도 비슷하고 상황도 비슷했다. 설마 그녀일까? 강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 사례의 지역이 어디인가요?" 강사가 대답했다. "구시청 앞 희망야학이요."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이 끝난 후 강사에게 다가갔다.
"혹시... 그 분의 이름이 김미영인가요?" 강사의 눈이 커졌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년 전 야학에서 만났던 그 미영이가 중등검정고시를 끝내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포기한 줄 알았는데다시 배움의 길을 이어갔던 것이다. 강사는 미영 씨가 현재 같은 지역에서 문해교육 학습자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학업을 중단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연수가 끝나갈 무렵, 강사가 던진 질문이 내 생각을 깨웠다. "여러분은 왜 문해교육 교원이 되고자 하십니까?"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를 말하는 동안 나는 고민했다. 우연히 시작된 이 연수가 과연 우연일까. 대학 시절 야학에서의 경험, 미영 씨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진 듯, 내 삶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처음 야학을 시작했을 때 했던 다짐이 생각났다. "촛불처럼 살겠다." 다른 이들에게 빛이 되어주되, 그 과정에서 자신은 녹아내리는 삶. 그것이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내 삶은 그 다짐을 지켜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야학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제 문해교육 현장에서.
강사에게 미영 씨의 연락처를 받아 문자를 보냈다. "미영 씨, 저 기억하시나요? 20년 전 야학에서 만났던 선생님입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선생님! 정말 선생님 맞으세요? 어떻게... 믿기지가 않아요. 꼭 만나고 싶어요." 다음 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이어진 인연. 가슴이 벅차올랐다.
연수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20년 전 야학 교실을 나서던 그 기분과 똑같았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내 삶이 의미 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그 확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 밖으로 흐르는 도시의 풍경이 마치 내 인생의 시간선처럼 느껴졌다. 20년이라는 세월. 야학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진학했던 영철이는 어떤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까? 당시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 아마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겠지. 세 아이의 엄마였던 순자 씨는 지금쯤 손주를 안고 있을까?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었을까? 그리고 미영이. 그녀와의 재회는 내게 큰 선물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살아온 20년. 야학 선생님에서 사회복지공무원으로, 그리고 이제 문해교육 교원으로. 언뜻 보면 다른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사회복지공무원은 시작부터 퇴직까지 삶의 벼랑에 있는 사람들과의 동행이다. 어쩌면 그것도 내 안에 있는 '가르침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증거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연수는 내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도 조금은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문해교육 교원으로서, 누군가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할 수 있기를. 글자 하나를 알려주는 것이 누군가의 삶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나는 야학에서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 내가 만날 학습자들도 그들처럼 각자의 사연과 간절함을 가지고 있겠지. 나이와 환경은 달라도, 배움에 대한 열망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내가 그들의 삶에 작은 촛불이 되어,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또한 함께 성장하고 배우게 되리라.
어쩌면 10년, 20년 후에는 내가 가르친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미영이처럼. 그렇게 배움과 가르침의 불씨가 이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다.
집 현관문을 열기 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 그 별들처럼, 야학에서 만났던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로 남을 수 있기를.
오늘 밤, 일기장에 적어본다. "나의 운명은 어디서든 촛불이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