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오는숲 Jun 27. 2021

악몽_기장

비행소설03-1

“여보 일어나요!”


꿈이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했는데 스카이가 내 가슴이 올라와서 자고 있었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입학 한 이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어지면서 적적함을 느꼈던 아내가 데려온 페르시안 고양이다. 영롱한 푸른 눈이 내 맘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쁠 때도 있지만 아내가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벌써 기장을 단지 십수 년이 흘렀지만 초짜 기장 때 저질렀던 실수가 아직도 악몽으로 이어진다. 그것도 매번 조금은 다른 스토리로 그럴싸한 꿈을 꾸는 것이 참 신기하다. 


부기장 때는 실수를 해도 옆에서 기장이 커버해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부기장들을 데리고 비행을 해야 하는데 실수란 용납될 수 없다.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고 부기장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두 명이서 칵핏에 근무하는 게 아닌 게 된다. 부기장도 회사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조종사가 된 프로다. 믿어야 한다.


 “trust but verify”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사용해서 유명해진 속담이 딱 조종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부기장들이 실수를 하면 내가 셋업 한 확인 절차에서 즉각 걸러지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도 인간인지라 실수를 한다. 

서양에서 시작된 항공 역사는 줄곧 그 실수를 줄이기 위한 과정이었고 그동안 그들이 치른 대가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위대한 업적 앞에 고객을 숙이고 오늘도 감사하다.


항공기상청 앱을 열어 보니 인천과 방콕 기상 모두 어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양호했다. 예전에 김포공항에서 살 때는 국내선이면 창밖을 쓱 보는 것만으로 날씨를 체크할 수 있었는데 아이들 교육시킨답시고 무리하게 목동으로 이사 와서는 그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빠가 조종사로 일하니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 곳을 선택하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목동으로 온 것이 잘하는 일인가 싶었다. 다행히도 내 자식들은 올바르게 자라주었지만 주위의 몇몇 동기의 자식들은 그렇지 못했다. 


회사 앱으로 살펴본 오늘 내가 맡을 항공기는 얼마 전에도 비행했던 놈이다. 컨트롤 휠에 유격이 있어 랜딩 할 때 pitch 조작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메모를 해 두었다. 이러한 메모들이 모이면 항공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감을 북돋아  안전 운항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행 가방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제는 젭슨 매뉴얼이 아닌 아이패드가 덩그러니 가방을 채우고 있다. 아이패드로는 뭐하나 쉽게 찾아볼 수가 없고 불편하지만 대세가 그러니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예전과는 달리 빡빡하지고 여유가 없어져 일하기가 재미없어졌다. 


기장을 달았을 때 동기들한테 선물로 받은 몽블랑 펜을 셔츠에 꼽고 아내가 부기장 때 사준 오래된 일제 에코드라이브 시계를 찬다. 고장 나면 바꿔야지 했는데 도무지 고장 날 생각을 안 한다. 너무 오래돼서 비행할 때 없으면 허전하다. 돌이켜 보니 이 펜과 시계가 초심을 잃지 않게 해 주고 가족과 동료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듯하다.


시계를 보니 지금 출발하면 쇼업시간 보다 조금 여유 있게 회사에 도착할 듯하다. 기장이 너무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부기장들이 부담을 가질까 봐 일부러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가려고 한다. 과거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다고 집에서 한 참 일찍 출발했지만 그 혹시 모를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몸만 금방 피곤해질 뿐이었다.


집을 나선다. 아내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벌써 집을 나가고 없고 스카이는 고양이 세수를 하느라 바쁘다.

 

“카톡~”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조심히 잘 다녀와요! 올 때 쓸 때 없이 뭐 사 오지 말고요!”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속의 F1 레이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