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고양이 없던 사람들
나와 아내에겐 인생 강아지가 있었다. 지금은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됐지만...
아내의 강아지는 빠다, 나의 강아지는 뽀삐였다.
서로를 닮아 끌렸던 아내와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까지 닮았다고 감격해했고
머지않은 장래에 인생을 같이할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여겼지만,
부부가 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우리 곁에는 강아지 대신 두 마리의 희고 검은 고양이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결혼 1년 차, 신혼 시절. 우리는 우연히 작고 어리고 도도한, 실은 조금은 까칠한 고양이 한 마리를 맡아 한 달간 탁묘를 했다가 돌려보냈다. 그전까지 나는 고양이를 집에서 키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아내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을 무서워했다. 갈 곳 없는 고양이가 불쌍해서 잠시 탁묘를 했을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달간의 탁묘는 내게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나는 고양이가 찬장에 올라가 그릇을 깨는, 지금 보면 웃기지도 않는, 공포를 버렸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이 생긴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아이가 예뻤을 뿐이었다. 그저 그 아이의 매력에 끌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고양이 공포증에서 벗어난 아내는 종종 고양이 커뮤니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길로 되돌려 보내질 운명에 처한, 보호소의 하얀 고양이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그 길로 그 아이를 데려와 임보(임시보호, 주인을 찾을 동안 집에서 돌보면서 기다려주는 것)를 시작했다. 임보로 시작했지만 도저히 돌려보낼 수 없는 매력냥이었던 그 아이는 우리 집에 남아 우리의 첫 아이, 시로가 되었다.
크림이로 구조된 아이는 시로가 되어 우리 집에 왔고, 두 달 뒤 벼락이로 구조된 아이는 구레가 되어 시로의 동생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땐 죽어라 싸우던 둘은 지금은 애정 넘치는 형제가 되어 서로에게 기대어 잠을 잔다.
임보는 갈 곳이 없어서 방생될 위기에 있는 아이들을 맡아 줄 집사를 찾을 때까지 데리고 있으면서 기다려 주는 것을 말한다. 한 달에서 길면 석 달까지 보호하면서 입양 홍보를 하고 집사가 나타나길 기다린다.일단 육묘를 해 보니 우리가 맞벌이를 하면서 키울 수 있는 한계는 세 마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세 번째 자리는 임보를 하자. 그렇게 쉽게 서로 합의했다.
우리가 셋째를 입양하면 한 마리를 더 살릴 수 있지만,
두 마리를 키우고 한 마리를 끊임없이 임보하면 계속해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로와 구레로부터 시작된 묘연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이었던 여섯 마리의 고양이 임보로 이어졌다.
길에서만 평생을 살다가 따돌림당하고 구조된 길고양이, 호더(동물을 수집하고 관리하지 않는 증상)에게 쓰레기로 뒤덮인 방에 다른 고양이 20마리와 함께 가둬져 있다가 구출된 검은 고양이, 사랑받지 못하는 외모로 태어났지만 낳은 자식보다 아끼는 부모를 만난 카오스 고양이, 오랫동안 길러 주던 주인에게서 느닷없이 버려진 아기 고양이 등등 이런저런 사연을 지닌 수많은 고양이와 만난 이야기, 차차 들려주고 싶다.
임보를 거치면서 당연히 그들과 함께할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알러지 약을 먹으면서 아이를 키우기도 하고, 머나먼 외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외국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수많은 길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데려와서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산다. 또 누군가는 그 아이들을 시작으로 또 다른 새 생명을 구조해서 보듬기도 한다. 모두 사랑으로, 우리가 시로 구레에게 미안할 정도로, 이들은 가족으로 입양한 고양이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며 함께 살아간다.우리는 매년 그들을 초청해서 홈커밍 파티를 연다.
아내와 나는 종종 시로와 구레에게 말한다.
"시로야, 구레야 그 아이들은 모두 너희가 살린 거야."
함께 살아서 행복한 2인 2묘의 집, 그리고 이 집을 거쳐간 임보에 대한 글을 적으려고 한다.
이 글은 기록이기도 하고, 추억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정보일 수도 있다.
나에겐 우리 아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기억이 될 테고, 어느 날 시로와 구레를 대신해서 쓴 일기장처럼 문득 들춰 볼 수도 있을 테다. 그리고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유기묘와 고양이에 대한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글엔, 이 글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고양이,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펫샵이 아닌 어느 보호소, 작은 창살 안에서 당신이 생명을 지켜 줄 수 있는 묘연이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