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의 하얀 고양이, 시로만 아는 이야기
나른한 오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 아마 내일도, 지루하고 평화로운 일상일 것이 분명했다. 한껏 채워 부른 배를 자랑하듯 하늘을 향해 뒤집고 창을 넘어 들어오는 강한 볕을 이불 삼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저 멀리서 부르는 아빠의 손짓에 힘껏 기지개를 켜며 어슬렁어슬렁 무거운 몸을 털고 다가갔다. 아빠는 나를 붙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나무, 풀, 꽃이 만발한 곳. 오랜만에 보는 나비에 시선을 빼앗겼다. '저 나비를 잡아볼까?', 하지만 이내 '에이 그만두자.' 그런데 뒤돌아 보니 아빠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빠?'
갑자기 사라진 아빠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10분 전까지 예약해두었던 평화로운 내일도 오지 않았다.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집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산만한 공기,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신없는 소리들. 온 피부와 털이 곤두선다. 상황을 진정시키려 노력해보지만 방향이 보이질 않는다. 상황을 모르니 해결할 방법도 알 수가 없다. 우두커니 컴컴하게 그 자리에 몸도 마음도 멈추어 버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날은 컴컴하게 저물고, 밤은 더 이상 전등으로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피할 곳을 찾아 최대한 구석으로 향했다. 꾸물대며 파고들던 이불 대신 불안을 덮고 날이 새기만 기다린다. 빛이 오면 꿈에서 깬 것처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이 시로가 버려진 이야기다.
시로를 3~4년 정도 키우던 집사는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기 집 아파트 화단에 아이를 버렸다. 몇 년을 집에서만 지내서 야생에서의 생존력이 없는 그중에서도 특히 느린 하얀 집 고양이는, 설명해줄 사람 하나 없이 갑자기 홀로 거리에 내동댕이 쳐졌다. 유독 겁이 많은 시로는 화단 구석에 숨어서 여러 날을 꼼짝 않고 굶으며 떨고 있었다. 그러던 시로 앞에 캔 하나가 떨어졌다. 시로는 그 조심스러운 성격도 벗어던지고 캔에 달려들었다. 그 캔은 포획을 위한 함정이었고 시로는 창살에 갇혀 보호소로 이동됐다.
나는 대답 없을 당신에게 묻고 싶다.
시로를 차가운 길바닥에 버린 후, 당신은 평온하십니까? 아이를 버린 대가로 원하는 무언가를 교환받았습니까?
길에서 포획된 고양이에겐 세 가지 갈림길이 있다. 물론 선택 권한은 없다.
시 보호소에 맡겨져 입양자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된다.
구조, 보호, 입양단체에 의해 임보 되다가 입양된다.
TNR 후에 포획된 곳에 다시 방생된다.
첫 번째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잘 아는 그 방식이다. 동물 보호소에서 머물다가 입양 신청자가 나타나서 입양이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입양이 되지 않는다면 케이지에 여유가 있으면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케이지에 여유가 없으면 안락사 처리된다. 입양이 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파양 되는 아이들도 많다. 입양해서 데려간 아이라서 다시 되돌려 보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고양이 보호자나 보호단체에서는 가급적 보호소로 보내지 않고 유기묘를 포획해서 잠시 따로 보호를 하면서 입양처를 찾는다. 하지만 시설이 아닌 일반 단체나 개인이 유기묘들 여러 마리를 보호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동물병원들 중 임시보호소를 운영해주는 곳에 맡기거나, 임시거처를 구해서 잠시 맡아서 새 집사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 임시거처가 임시보호 줄여서 임보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입양은 어렵지만 잠시라면 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자처해서 임보를 한다. 주로 보호단체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 카페 등을 통해 임보와 임보 된 아이들의 입양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포획된 아이가 길고양이라면 TNR 후에 길로 되돌려 보내진다. TNR 길고양이는 TNR이란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포획(Trap), 중성화(Neuter), 방사(Return)의 약자이다. 유기된 집고양이는 생존력이 없기 때문에 보호소로 포획되지만 길고양이는 보호소로 가지 않고 포획된 곳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성남시에서는 TNR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단순히 없애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TNR을 통해 개체수를 조절해주는 것이 더 개체수 조절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중성화가 되더라도 욕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형이나 사람의 다리를 붙들고 (?) 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중성화되면 욕구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흔히들 괴로워하는 발정 난 소리를 내거나 영역다툼을 하면서 괴성을 지르는 일이 사라지게 된다. 이 때문에 시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TNR을 진행한다.
TNR 된 아이를 다시 TNR하지 않기 위해서 한쪽 끝을 0.9cm를 잘라낸다.
잔인하지만 다시 포획하는 수고를 줄이기 위해 알기 쉽게 표식을 남겨 두는 거다.
시로가 달려든 덫은 TNR을 위해 설치된 트랩(TRAP)이었다. 이 조심성 많은 녀석이 길고양이를 유인하려고 놓은 덫을 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가 포획됐다.
병원으로 간 시로는 TNR 됐고 한쪽 귀의 0.9cm를 잃었다.
시로 구조자님은 "원래 길에 돌려보내질 아이였어서... 귀가 조금 잘렸어요. 안타까워요.",라고 말했고 아내는 "(저는) 그 정도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지금도 자주 이 이야기를 나눈다. 부끄러운 일이다. 아내는 그 당시 마치 상품처럼, 저는 조금 하자가 있어도 괜찮아요.라는 답변을 했다. 지금은 안다. 구조자님은 무서웠을 시로가, 아팠을 시로가 아파서 한 말이었다. 우리는 종종 시로가 잃은 0.9cm의 빈 공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TNR 된 시로는 길로 되돌려 운명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본 한 사람, 앞서 언급한 시로 구조자님의 눈에는 이 아이의 애교가 심상치 않았다. 병원 안 케이지,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시로는 간드러지게 울고 바닥에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시로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전해진 말에 의하면 사람만 가까이 오면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부볐다고 한다. 이 아이는 누가 봐도 사람의 아이였다. 이 아이는 임보 해줄 사람이 있으면 길이 아닌 집으로 보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거두기엔 이미 집에서는 너무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다쳐서 간호가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로 가득했다. 고민 끝에 시로의 사진을 찍어 '고다(국내 최대 고양이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카페에 올렸다. 그리고 그 결정이 시로를 살렸다.
시로의 귀가 잘린 다음 날, 아내는 시로의 사진을 봤다.
그 하루가 부족해서 시로의 귀가 짧아졌다.
아내는 또다시 갑작스러운 선언을 했다. 그러면서 메신저로 창살 안에 갇힌, 크림이, 라는 이름의 하얀 고양이의 사진을 보내왔다. 일하느라 마음이 급한 때에 메신저로 날아온 사진이어서 보는 둥 마는 둥 넘겼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는 이미 익숙해져서 더 이상 놀라지는 않았고 임보였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했다. 실제로 어떤 아이인지, 언제 오는지는 저녁이 되고 나서야 알 수가 있었다.
사진 속에는 작고 하얀 고양이가 누울 자리와 화장실도 구분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갇혀있었다. 흰털에 대비되는 꼬질꼬질해진 행색에 마음이 저렸다. 모모는 사람이 기르던 아이였기 때문에 충분히 관리받았고 집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깨끗했다. 하지만 크림이는 길에서 왔기 때문에 모모와 다르게 마음이 크게 쓰였다.
그리고 너무 작아 보여서 겁이 났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크네?"
내가 시로를 처음 만나고 내뱉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