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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나귀똥 Sep 24. 2021

치앙마이2.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

2019. 6.22~6.25 치앙마이 (2)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날이 밝자 전날 밤의 공포는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2박을 더 할 자신은 없었어요.


일어나자마자 프런트로 가서 앞으로의 일정을 취소하고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이미 결제한 건이라 환불해줄 수 없다며,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었어요. 치앙마이의 물가를 생각하면 다소 아까운 금액이기는 했지만 계속 불안한 것보다는 나을것 같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고 외쳤습니다.


점심시간 전후로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하고서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어요. 별다른 계획 없는 여행이었지만 치앙마이에는 주말에만 열리는 재미있는 마켓이 많다고 들었거든요. 그 중에서도 Rustic Market이라는 아침 시장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오늘은 여기다!" 싶었습니다.


한적한 치앙마이의 아침


아침의 루틴

잠을 좀 덜 자더라도 아침은 꼭 먹어야 하는 저는 여행지에서도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편입니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 신청은 하지는 않았기에 인근에 있는 조용한 카페부터 찾아보았어요. 다행히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카페를 발견해 뜨거운 커피와 맛있는 케익을 먹었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10년 만에 다시 읽고 있던 <태엽감는 새>를 가지고 갔었는데 따뜻한 커피와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으니 어제의 공포는 말끔히 사라진 것 같았어요.


이제야 조금씩 설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성껏 내려주신 커피
작지만 소중한 행복

Rustic Market


나름 서둘러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마켓엔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현지인응 물론이고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았습니다. 시끌벅적한 방콕의 짜뚜짝 시장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동네 마켓'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게 없었어요.


어디서 난 건지 출처를 알기 힘든 이상한 골동품들, 핸드메이드를 자부하는 각종 의류잡화들, 보는 것만으로도 저를 설레게하는 빈티지 잔까지 있었습니다.


일찍이 시작된 그들의 아침
컨셉이 분명한 '동물잔' 섹션
보는것 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취향저격 '빈티지잔' 섹션


언젠가 북해도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nikko 사의 잔 세트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딱 봐도 오래된 그릇 같아 고이고이 모셔왔는데 나중에서야 그 잔 세트가 짝퉁(!) 이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분통했는지 몰라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빈티지잔 섹션은 "쳐다도 보지말자!"싶었는데 어째서인지 제 구글포토에는 빈티지잔의 사진이 다각도로 찍혀 있습니다. 꽤나 아쉬웠나 봐요.


아쉬운 것으로 치면 이미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고 왔다는 것이 최고였습니다. 멋진 삿갓 아저씨가 내려주는 커피를 맛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핸드드립 커피의 카페인에 매우 취약합니다 ㅜㅜ 과도한 카페인 섭취로 심장이 두근거리기라도 하면 ‘컨디션이 좋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될까 다음을 기약했는데, ‘다음'이 이렇게나 길어질 줄 몰랐네요.


다음을 기약한 삿갓아저씨의 커피
갑자기 이발 구경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주말장’답게 가판대 옆에서 머리를 잘라주거나 가족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금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음식 코너에는 손수 만든 다양한 음식들이 나와있었는데 이럴줄 모르고 케익으로 아침을 시작한 게 조금은 후회가 될지경이었어요. 그래서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작은 사이즈의 망고밥과 아이스 허브티를 사 너른 벤치에 앉아 먹었습니다. 잔뜩 장을 봐온 현지 아주머니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맛있는 걸 잘 골랐다고 칭찬해 주셔서 괜히 뿌듯했어요.


마켓을 천천히 구경 하다 보니 사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일단은 사고 봤을 테지만 이번엔 좀 달랐어요. 여행의 기분에 휩쓸려 구매했다가 결국은 쓰지도, 버리지도 못해 난처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다보니 신중해졌습니다.


그래서 세운 기준은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면 사지 말 것'.


그리하여 이날 저는 양면으로 쓸 수 있는 핸드메이드 린넨모자와 치앙마이 느낌이 물씬 나는 린넨블라우스를 샀어요.


신중하게 구매한 린넨모자


구 남친은 이 모자를 쓴 저를 보고 ‘그 모자 너무 우습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잘 쓰고 있어요!) 치앙마이스럽다고 생각했던 린넨블라우스는 어째서인지 입을 때 마다 가난해 보여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ㅎㅎㅎㅎ


다음에 또 Rustick Market에 들린다면 그냥 무조건 많이 먹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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