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현재 한창 세상의 모든 공주를 섭렵하고 있는 나이대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모를 수가 없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캐치! 티니핑> 시리즈(2020~, 이하 티니핑)이다. <최강전사 미니특공대>(2014)를 비롯해 누구나 광고로라도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캐릭터 IP를 여럿 개발한 경험이 있는 SAMG 엔터테인먼트의 야심작인 만큼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부모 팬층이 두터운 여타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단 1화만 시청해도 매력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서사에 빠져들게 된다.
티니핑은 저마다 감정이나 관념(사랑, 용기, 희망 등)을 하나씩 관장하는 요정이다. 이름에서부터 자신의 전문 분야가 드러나며, 캐릭터 외형 또한 대부분의 경우 통념에 따라 전형성을 띤다. 예를 들어 늘 노래하고 춤추는 라라핑(즐거움)은 8분음표를 상징으로 삼고, 마법 도구로는 무선마이크를 휴대한다. 티니핑의 무서움은 이들이 사용하는 마법에 있다. 아자핑(용기)의 격려를 받으면 잠시 동안 두려움을 잊어 능력 밖의 일에 도전하고, 불량학생에게 바로핑(성실)이 깃들면 친구에게까지 6시 등교를 강요한다.
이처럼 사실상 항정신성 생물병기이기 때문에 티니핑은 본래 외계의 ‘이모션 왕국’에서 엄격하게 유지관리를 해왔다. 대외적으로는 사고로 알려졌으나 시즌2에서 국가 전복 공작임이 밝혀진 수용시설 폭발로 인해 티니핑이 지구로 대거 유입되자, 이들을 회수하기 위해 공주 로미가 파견된다. 거의 매 화마다 한 명씩 새롭게 등장하는 티니핑이 지구 상의 동식물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고, 로미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원인제공자를 포획(캐치)한다.
시즌 별로 수십 종의 새로운 티니핑이 쏟아져 나와 피규어나 봉제인형을 전부 모으려면 거액이 들기 때문에 정작 영유아 부모들은 흔히 ‘파산핑’으로 칭하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제2의 뽀로로라는 이명을 붙이고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 시리즈(2003~, 이하 뽀로로)에 버금가는 선풍적인 인기에 착안한 표현이겠지만, 두 작품 사이에서는 일말의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사실상 놀이터에 모인 친구들 컨디션에 따라 일과가 좌우되는 뽀롱뽀롱 마을과 달리 이모션 왕국에는 왕좌가 있고, 쿠데타도 있으며, 심지어는 요정 사회 내 학벌도 있다.
내러티브를 극도로 단순화하는 대신 어린이답게 행동하는 뽀로로와 친구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 뽀로로의 성공 요인이었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본편의 설정이 치밀하지 않다 보니 스핀오프 제작 시 위화감이 적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뽀로로의 성공사례는 이후 한동안 수많은 작품들에 있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캐릭터 디자인에만 전력을 쏟다 보니 내용 면에서는 극도로 빈약해지고 만 것이다. 아직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악당을 선제 타격하는 등 어린이의 눈으로도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는 허술한 내러티브는 티니핑 전까지의 SAMG 엔터 IP들에서도 자주 드러난 특징이다
반면 티니핑이나 <브레드 이발소>(2019~) 등 비교적 근래에 각종 OTT에 진출해 국내외에서 두루 호평받는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공통적으로 서사의 깊이가 남다르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이들의 전형화된 언행은 아동 취향에 맞추더라도, 사회 구조에 대한 묘사에는 현실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고 다양성에 대한 고민들이 묻어 나온다. 지난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포텐독>(2021) 또한 몇 장면만 단장취의하지 않고 전체를 본다면 인공지능 사회의 명암을 다룬 수작이다.
일각에서는 아이들이 어차피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어린 나이부터 세상을 알 필요는 없다는 이유로 현실 반영적인 애니메이션에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청소년 문해력이 날로 감퇴한다고 개탄하면서, 정작 장차 성장할 어린이에게는 부조리할 정도로 공허한 캐릭터 쇼만 시청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어린 나이부터 독서 습관 들이기가 50년 내에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면,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선호하는 애니메이션의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실수투성이 공주와 요정들의 시트콤인 줄로만 알았던 초반 에피소드를 통해 일단 가볍게 입문하면,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낸 선동세력이 공주 일행을 방해하는 시즌1 중후반부의 진영 구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나아가 시즌2까지 섭렵하면 결국 왕좌를 탐내는 방계 친척을 상대해야 하지만 무력보다는 교화의 길을 택하는 공주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공주의 미모나 복색만이 아닌 그의 행적과 사상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가족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티니핑 시청만으로도 상당한 공부가 된다.
대부분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나 사회질서에 대한 자연스러운 교육 목적을 품고 있다. 티니핑의 위대한 점은 이와 같은 바탕에 더해 천진난만하던 12살 공주 로미에게 햄릿보다 더 현명한 햄릿이 되기를 요구하는 데 있다. 반기를 들고 왕국 북부 지역 티니핑을 선점하겠다 선언한 방계와의 본격적인 대결이 예고된 시즌3까지 티니핑을 정주행한 아이와 뽀로로 및 그 아류작만 줄곧 시청한 아이 중 어느 쪽이 향후 문학•역사를 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일지는 자명하다. 금년 중 공개 예정인 시즌3 <알쏭달쏭 캐치! 티니핑>에서는 로미 공주와 시청자들이 또 얼마나 내적 성숙을 거둘 수 있을지, 오매불망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