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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민 Dec 17. 2020

유익한 불화를 찬미 하노라

“농부는 농부를 시기하고, 가인(哥人)은 가인을 시기한다.” 플라톤의 『국가(政體)』 중 각자가 지닌 탁월성이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는 이 대목은 직관적이고도 음악적인 대구 구조 때문에 한 번 읽으면 잊어버리기가 어렵다. 이보다 3세기가량 이전에 기록된 서사시 <일과 날> 또한 인간에게 유익한 불화, 즉 경쟁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도공은 도공에게, 목수는 목수에게 화내고, 거지는 거지를, 가인은 가인을 시샘한다오.” 어제의 목수가 오늘은 도공 일을 하고, 또 내일은 래퍼도 될 수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는 확실히 고루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잠재적 경쟁자를 시샘할 수는 있어도 자신과 무관한 사람의 일에 마음이 동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동서고금에 두루 통할 상식에 가깝다.


제이노믹스 시행 후 약 3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기업∙준정부기관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정규직 전환이 일어났다. 비교적 근래의 이른바 인천 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에 대해 청년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소식을 한동안 어느 매체에서나 접할 수 있는데, 심각한 뒷북이 따로 없다. 인천공항의 경우 인원이 많아 유독 눈에 띌 뿐 전국에서 이미 충분히 많은 계약직∙파견직 노동자들이 정년을 보장받는 직접고용 계약서에 서명했다. 지옥에 빗댈 정도로 더럽고 치사한 사회에서 19년 이상을 살았다면,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듣고서 마땅히 의문부터 들어야 한다. 철밥통 공기업의 정규직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정말 이렇게 순순히 정규직을 시켜주는가?


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알려진 일자리는 엄밀히 말해 무기계약직 혹은 중규직이다. 이름부터 애매해 보이는 중규직은 말 그대로 정년은 보장되지만 임금체계 자체가 달라 절대로 종래의 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에 미칠 수 없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중간쯤 어딘가에 위치한 혼종이다. 초기에 정규직 전환 대신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 의미 전달 면에서도 더 정확하고, 분노하는 청년의 수도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는 현 정권의 무리수로 포장하기 위해, 진보는 또 진보대로 장애인∙탈북자∙레즈비언을 세간에서 통하는 이름대로 부르지 못하고 피휘 하는 습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두가 ‘정규직 전환’이라 칭하고 있다.


이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여전히 뭇 청년들의 분노는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무지와 오만은 청춘의 특권이니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정규직 일자리가 하도 감소하다 보니, 이제 정규직이라는 낱말은 보통 컴퓨터 앞에 앉아 PC 카카오톡을 하는 화이트칼라의 환유로 쓰인다. 그러나 정작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노동자 중에는 당연하게도 블루칼라가 더 많다. 블루칼라는 웃통 벗고 선박이나 기계에 망치질을 하는 소주 좋아하는 대머리 아저씨밖에 없다 오해하는 일부 청년들을 위해 보충한다. 금세기 한국의 블루칼라 중 다수에게는 자녀 사진을 올려둘 책상도 있고 점심시간에 낮잠 잘 소파도 있으며, 이는 지구 상의 일부 지역에서 100년 전에 이미 주어진 지극히 지당한 것이다. 우선 정규직이 무기계약직을 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설령 안다 해도 화이트칼라 꿀보직일 것이라 상상하는 것이 바로 분노한 청년의 무지이다.


오만은 훨씬 더 심각하다. 하는 일 이상으로 돈을 퍼주느라 우리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것이 정규직 전환 반대의 주요 논거인데, 이중으로 교만한 생각이다. 이들은 보통 캐셔나 미화원, 운전사가 매달 세후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받는 데 대해 깊은 의문을 품는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150. 180만 원씩 받느냐는 것이다. 미화원, 영선 반장에게 150만 원이 과하다 말하는 자에게는 서울의 인프라보다 쥐가 들끓는 18세기 파리의 골목이 어울린다. 육체노동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면, 당장 오늘부터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이제 한국도 비로소 중국을 제외한 모든 자칭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국가부채를 늘려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이 현 정권의 지출 확대 전략이다. 담보가 있어야 대출도 받을 수 있듯, 한국도 신용등급 올랐으니 ‘마통’을 뚫자는 의미이다. 최저세율 재조정은 말도 꺼낸 적 없는데 세금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계급을 평가절상하는 오만의 극치이다.


열심히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정규직 된 사람들을 보니 박탈감과 분노를 느낀다 말하는 이들이 부디 네이버 검색에 3분만 투자하기를 희망한다. 혹시라도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일자리가 뼈를 묻을 만큼 매력적인 것이 확실하다면 그제야 마음껏 질투해도 늦지 않다. 어두운 밤이 낳아 크로노스의 아드님께서 대지에 앉히신 불화는 인간에게 큰 이익이 된다오. 부자인 다른 사람이 서둘러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을 보면 저도 부자가 되려고 경쟁하기 때문이라오. 관료∙거상 꿈나무가 목수나 도공에게 화풀이하지 않고 시샘할 대상을 정확히 알아보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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