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는 끝났다. 이제 슬램덩크를 해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오늘에야 관람했다. 너무 힘이 들어간 표현이 아닌가 싶지만, 스포츠 경기라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드라마의 내용이 아니라, 그 규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설명해보고자 한다.
영화는 참 재미있게 봤다. 애니메이션 기법이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슬램덩크라는 작품의 감동 자체도 여전했다. 나는 만화책으로만 한번 쭉 봤던 기억이 있고 애니메이션은 안봤던 것 같은데, 기억하고 있는 명대사나 캐릭터의 핵심을 한 작품 안에서 다뤄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대사와 드라마를 우겨넣느라 약간 5분마다 뭐가 터질 것 같은, 박수를 쳐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조금 위험한 습관일수도 있는데, 워낙 메타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서, 관람 후에 돌아오는 길에는 요즘에 비즈니스 서적에서 회자되는 ‘유한게임’과 ‘무한게임’의 차이점, 그리고 야마구치 슈가 제시한 ‘예술로서의 비즈니스’ 개념이 떠올랐다. 스포츠와 일부 공연예술은 실질적인 사회 효용이 거의 없고 관람자에게 제안하는 가치 거의 전부가 ‘퍼포먼스’인데, 앞으로는 비즈니스도 더욱 더 ‘수행적(performative)’인 특징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간단히 생각을 기록하고 정리해볼까 한다.
1. 유한게임은, 제한된 자원과 제한된 시간,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게임이다. 스포츠는 대표적인 유한게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다른 유한게임과는 달리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특징이 있다. 스포츠 경기 중에서도 하나의 특수한 장르는 ‘대립경기’이다. 두개의 팀이 경기해서 하나는 승리, 하나는 패배하도록 되어 있는 제로섬의 구조다. 동의하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대립경기’는 기본적으로 ‘전쟁놀이’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인간은 삶이라는 게임을 유한게임으로, 게다가 대립적, 경쟁적, 제로섬인 것으로 이해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양한 활동에 전쟁의 메타포가 그대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인식 구조 내에는 ‘전쟁놀이’가 깊숙하게 박혀있고, 이것은 ‘대립경기’, 특히 국기를 달고 민족끼리 싸우는 월드컵과 같은 경기에 깊게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투지’ ‘전략’ ‘선봉’ ‘공을 세우다’ ‘기습’ ‘불굴의 의지’ ‘투혼’과 같은 메타포나 개념은 모두 전쟁이라는 유서깊은 인간 활동에서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활동으로 넘어온 것이다. 영어에는 토론이나 논쟁에 쓰이는 언어적인 수사표현 중에서도 전쟁을 방불게하는 것들이 많다. 어떤 주장을 공격(attack)한다던지, 상대의 주장을 격파한다던지(defeat the opponent)하는 식이다.
2. 인간이 평시에도 ‘전쟁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며, 대립적, 경쟁적, 제로섬인 프레임워크, 스크립트, 레파토리, 언어 등을 계속해서 활용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전쟁’이라는 활동을 재생산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인과적 효과가 모호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잘못된 메타포를 통해 인간이 삶에 대해 더 전투적, 투쟁적, 대립적, 경쟁적, 제로섬의 태도를 자연스레 가지게 된다는 주장은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일을 하다보면 일을 ‘전투적’으로 하고 동료들을 모두 경쟁상대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은 아마 사용하는 신념, 프레임워크, 언어 체계가 경쟁적이고 제로섬인 것을 사용해서 그럴 것이다.
4. ‘규칙이 바로 메시지다.’ 슬램덩크 드라마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는 각종 드라마를 연출한다. 사실 유사한 형태로 무한반복되는 레파토리들인데, 그 중 하나가 언더독의 역전승일 것이다. 언더독은 어떻게 역전할 수 있는가? 드라마의 다양한 이야기 구성요소, 즉 극의 내용에 집중할수도 있지만, 조금 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언어독이 역전할 수 있는 것은 해당 레파토리를 구성하는 게임의 규칙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빠른 페이스로 움직이도록 제한시간이 있다던지, 게임의 시간을 남기고 극적인 역전이 펼쳐진다던지 하는 것도, 게임의 룰이 확률적으로 허용하는 드라마일 뿐이다. 경기를 100번 돌리면 역전극이 몇개는 나오리라.
5. 슬램덩크 드라마를 보면 자연스럽게 받게되는 메시지들이 있다. 물론 게임의 규칙 뿐만 아니라 극의 내용과 선명한 캐릭터, 기억에 남는 명대사들이 함께 발생시키는 메시지이긴 하지만, 유사한 메시지는 좋은 스포츠 경기나 스포츠 드라마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예를 들어 마이클 조던).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넘어 불굴의 의지와 팀워크로 역경을 뚫고 승리한다는 이야기, 자연스럽게 너도 할수 있고 나도 할 수 있고 우리 모두 열심히 한본 해보자 라는 메시지는, 역설적이게도 유한게임과 대립경기, 그리고 농구의 특수한 규칙들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6. ‘규칙이 바로 메시지’라는 논점에 공감한다면, 게임구조의 유형을 따지는 일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만약 실제 인간의 삶은 무한게임인데, 유한게임, 특히 대립경기나 전쟁놀이의 규칙에서 메시지를 받고 있다면, 실제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삶이란 것은 매우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일관적인 팀원들과 함께, 빠른 페이스로, 제로섬의 승패를 결정하는 식의 경기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경기 수차례를 치르고 점수나 상을 받는 형태로도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임은 훨씬 더 복잡하다.
7. 영화를 보고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참 재미있게 봤는데, 실제로 내가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가 많지 않았던 것. 영화를 뭐 그리 진지하게 보냐고 생각할수도 있을텐데, 어쨋든 기억에 남기고 삶에 적용하고 회자하고 마음에 들면 포스터도 사고 뭐 그러는게 대중문화 아니겠나. 실제로 삶을 살아내며 내 피와 살로 얻은 진리들이 더 가치있게 느껴졌다.
8. 인간이 가진 암묵적인 세계관과 영성에 따라서 인간은 같은 삶도 전혀 다른 게임의 룰을 인식한다. 어떤 인간은 유한게임, 그 중에서도 대립경기나 전쟁놀이를 평생 하다가 죽는 것이고, 다른 인간은 무한게임을 하다 가는 것이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9. 이 지점에서 좀 비약이지만, 비즈니스와 일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무한게임을 해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침체가 다시 가시면 창업은 갈수록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자금뿐만 아니라 기존 경영 분야의 레거시 지식들이 다양한 형태로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도록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고. 사회혁신도 무한게임을 걸어볼만한 분야일 것이다. 특정 분야에 대한 결핍이 있다면,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농구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이유를 찾았던 것처럼 혁신가, 창업가, 예술가도 자신의 삶을 ‘슬램덩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0. 이제는 슬램덩크를 보지 말고, 슬램덩크를 할 때다. 물론 강백호처럼 앞뒤 안가리고 온몸을 내던질 필요는 없다. 극은 그런 메시지를 보내준 것 같지만, 삶은 롱게임이라, 오히려 몸을 사리며 체력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가 게임을 끝까지 완주한다. 농구처럼,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하고 싶었던 게임, 왠지 모르게 내 시간을 써서 이건 좀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내 팀, 내 연인, 내 감독, 내 멋진 경쟁자들을 발견하고, 4쿼터가 아닌 계속 진행되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11. 슬램덩크는 끝났다. 슬램덩크를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