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e Engineering Influence
‘영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류의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연예인놀이’쯤으로 비판하는 시각을 가진 분도 있을 것이다. 두 관점 모두 크게 공감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전문성(만)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나 특정 분야에 대해 자격증, 학위,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해당 분야에 통달했다고 하는 기존의 ‘전문성’에 대한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자산이라기보다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업데이드된 최근, 최고의 지식은 디지털로 너무나 빠르게 접근이 가능하고, 혁신은 오히려 레거시 지식이 없고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신참자에게 더 적합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패권을 단단히 잡고 있었던 정치, 정책, 종교, 학문, 법률, 의료 등의 ‘레거시’ 분야들은 어떤 혁신을 일으켜서 인간의 삶을 개선한다기보다는, 인간이 최악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맞는 울타리 같은 역할을 하는, ‘(필요악인) 서비스 비즈니스’라고 생각될 뿐이다. 일본처럼 한국도 ‘늙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그림자에서 맴돌다 변화의 기회를 잃을수도 같아서 우울하고 답답할 뿐이다.
모임에 나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이 트렌드는 내가 좀 잘 알고 있지!’ ‘이건 최근에 나온 책/담론/트렌드인데 잘 아는 사람 별로 없을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뭔가가 있을 때, 항상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이 있다. 주관적이지만 상위 30% 정도의 얼리어답터, 일잘러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사람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고,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공백이 있는 지점은, ‘지식과 경험의 포트폴리오’가 집중되는 현상을 들어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IT 종사자분을 만나면, IT 트렌드에 대해선 훤하고, 나보다 잘아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비즈니스 전반, 사회혁신, 백오피스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분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실제로 하고 있는 일도 아니고,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어서, 갑자기 가시방석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트레바리 모임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노코드 트렌드 얘기를 하면 한쪽에서 개발자나 CTO 분들은 나보다 더 잘 알아서 ‘저거 초보적인 얘기인데’라고 생각하고 있고, 아예 다른 업계에 있는 기술 관심없는 분들은 ‘저건 또 무슨 얘기야’라는 표정이다.
전문화가 진행될수록 줄어드는 것은 보편적인 지식이나 경험이라는 당연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직무가 고도로 전문화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희귀한 것은, 주의와 관심이다. 관심이 있으면 인간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쌓게 된다. 러닝커브의 곡선 각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러닝 자체가 막히는 것은 아니다. 고도의 전문화된 ‘사각지대’에 있다보면, 다양한 분야에 대해 주의와 관심을 키워볼 기회 자체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인사, 법무, 노무 등에는 매우 잘 아는데, 기술 트렌드는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마케팅, 영업은 아는데 사회혁신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
희소해질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비즈니스 지식과 경험 총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따라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는 것은 주의, 관심, 공감력, 감각, 그리고 직관이다. ‘관심을 통한 감각 및 직관 훈련’은 대충 큰 트렌드 몇개 알고 아는척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이 훈련에는 핵심 경험자산과 네트워킹이 포함되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유사하게 번역해서 쓸 수 있는 경험 자산이 있고,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줄 사람이 있다면, 이 때부터 차별화된 영향력이 발휘될 수 있게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마 많은 이들이 오은영 박사, 강형욱, 그리고 백종원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대중적인 인지도, 해당 카테코리 탑급 전문성,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레거시 학위나 자격증을 기반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현업 경험을 타고 영향력 사다리 제일 위에 선 사람도 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첫번째 공식이 여기서 나온다. 바로 ‘카테고리 전문성 + 수많은 실행과 사례 + 대중적 인지도’이고, 그 순서대로 쌓을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얘기한 것과 다르게 카테고리 전문성이라는 ‘게이트키핑’을 여전히 넘어야 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실행과 사례의 양이 다른 사람들을 압도해야 한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내가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사례가 알아서 들어오는 일이 일어난다.
비교적 새로운 분야인 ‘커리어 코칭’이나 ‘라이프 코칭’ 분야에서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거의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지금 시작단계이신 넘버원을 보면 이분이 수년동안 수많은 사례를 경험하며 훈련을 통해 해당 카테고리 전문성을 빨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T자형 인재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급한 이 모든 분들은 대략 X세대에서 초기 밀레니얼 세대 정도로 포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은영(57세), 백종원(56세), 강형욱(37세)]
내가 위에서 이야기한 ‘직무 전문화의 환경에서 관심 분포도는 자산이 된다’는 얘기는 그 다음 세대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성장공식의 가설이라고 삼을만 하다.
먼저 ‘ㅈ 자 인재 성장공식’을 들 수 있다. 단일 전문성이 아닌 서로 연관되어 있는 두세개 전문성을 쌓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디자인과 브랜딩을 둘다 한다던지, 콘텐츠와 마케팅을 다 안다던지, 개발과 기획을 다 한다던지 하는 분은 사실 요즘에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직무이동이 생각보다 쉽고, 두세개 전문성을 가졌을 때 영향력과 가치 제안이 더 올라갈 수 있다. 프로덕트매니지먼트나 IT 분야에서 특히 이런 ㅈ자 공식이 유효할 것이고, 사실 연관분야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관심 포트폴리오’를 레버리지할 수 있는 최적의 비즈니스 환경은 정말 찾기 나름일 것이다. 미디어 출신인데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 빛을 발하는 회사가 있을 것이고, 영업하다가 개발학원을 다닌 사람이 너무 핏이 잘맞는 곳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영향력 성장공식은 바로 ‘ㅊ자 인재’다. ㅈ에 비해 위에 획이 하나 더 올라갔는데, 이것은 ‘정체성과 비전’이 들어가는 자리다. ‘관심 포트폴리오’라는 것은 사실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평균 정도로 일하기 위해서 일하는 시간을 때려박으면 시장에서 인정받는 나쁘지 않은 직업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아직도 열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X년차 마케터, X년차 개발자, X년차 디자이너는 특정 분야 트렌드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각종 모임에서 또 하나 느끼는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을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알만한 회사에 부러워할만한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있다. 컨설턴트로 일하는 분인데, 이야기하다보면 ‘저는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식이다. ‘주관’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놀랄만한 일이다. 아니 그렇게 똑똑하고 물려받은 자본(경험자본, 문화자본, 등등)이 많은데, 정체성을 연성하지 못했다고?
이 지점에서 바로 ㅊ자 인재의 특수성과 가치가 나오고, ㅊ자 인재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점이 발생한다.
생각보다 많은 일잘러, 교육 잘받은 분들, 정말 똑똑한 분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왜 해야하는지, 왜 주체적으로 살아야하는지 정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ㅊ의 윗꼭지인 ‘정체성과 비전’을 결여한 사람은 자연히 어디서 나서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리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할 가능성도, 모임을 열심히 나갈 가능성도, 네트워킹에 시간을 쓸 가능성도, 기회가 왔을 때 크게 리스크테이킹을 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초연결사회에서 연결의 가치를 모르거나 메시지 발신자의 권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사실 자신이 가진 전문성을 활용해 수많은 사례와 네트워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장공식 해킹의 기회를 잃게 된다.
내 나름대로 세대구분을 하긴 했지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영향력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영향력 = 카테고리 전문성(s) + 임계점 이상의 사례 경험(전문성 차별화) + 임계점 이상의 네트워킹(일반지식)
특정 분야에서 한국 탑급의 영향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전문성은 오히려 얻기 ‘쉽다.’ 다양한 자본에 대한 접근성이 있어야 하지만 좋은 교육, 학위, 자격증, 수년간의 카테고리 집중과 몰입은 아마 수만 수십만명이 가진 자격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임계점 이상의 사례 경험을 쌓는 것도 아니고, 임계점 이상의 네트워킹을 통해 일반지식을 얻어 보편적인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왜일까.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성장에 요구되는 절대적인 조건(학력, 지역, 경제적 조건)이란 이젠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되고, 자신만의 성장공식을 찾은 인재가 다양한 로컬과 환경에서 나오고 있지 않은가. 아주 특수한 사각지대에 위치한 사람이 아니라면, 성장하지 않는 자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성장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정말 힘빠지는 결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향력을 역설계하면 놀라운 결론이 나온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것을 욕망해야 한다. 영향력을 가지고 어디다 쓸 것인지, 나는 왜 그 사람이 되어 그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내 영향력으로 왜 세상이 더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인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향력에 대한 욕망은 변화에 대한 욕망과 결을 함께한다. 현상유지를 원하는 자가 영향력을 가져서는 안된다.
영향력을 욕망하는 자는, 선한 변화를 향한 정체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비전을 연성해야 하는 것이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자신과 비슷한 성장단계인 사람들만 만나서 술먹으면서 관종러, 욕망러들을 욕하면 된다. 리스크테이킹하는 사람들 뒤에서 팔짱끼고 전문성으로 뚝빼기를 깨면 된다. 35세 이후에 나오는 모든 기술과 문화를 거부하고, ‘학습된 무기력’과 훈련된 수많은 불안감들을 안고 살아가면 된다. 보통의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몸이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최대성장지점을 찍고 조금씩 떨어지며 과거를 추억하다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