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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벗 Mar 06. 2024

성장이 멈췄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feat. 성장의 플라이휠 모델 

BGM: 카우보이 비밥, Space Lion


메일함을 비우며 마주한 아쉬운 마음


오랜만에 메일함을 비웠습니다. 지메일에서 메일함의 95%가 찼다는 알람을 수개월간 울려대고 있었기 때문이죠. 구독해  둔 각종 뉴스레터와 메일을 구독해지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일함에 들어왔지만 놓친 좋은 레터들, 내가 모르고 있는 정보의 소스들, 아마도 평생 한번도 접하지 못할 것들, 그리고 수많은 레터가 메일함에 들어와 쓰레기가 되어 비워지며 쓰이지 못한 글과 책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본연의 창조 재능을 오롯이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콘텐츠의 방대한 우주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하직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원석이 아닐까요. 난 책이 될 수 있었고, 영화가 될 수 있었고,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었을 것을. 왜 때론 길을 잃고 우주를 표류하게 되는 것일까.


갈수록 복잡하고 세분화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특히 잃어가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정보에 대한 통제권’입니다. 각종 서비스의 피드를 통해 내 뇌에 주입되고 있는 정보에 대한 주권을 잃어하고 있는 겁니다.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은 지식을 의도적으로 모읍니다. 정보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주제와 저자를 골라 책을 선택하고, 영화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줄 것을 고르며,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사람도 선택하게 됩니다. 특히 좋아하는 간행물을 구독하기도, 오랜 기간 뉴스레터와 함께하기도 합니다.


지식을 모으는 사람은 성장한다


‘80%의 사람은 돈을 모으고, 20%의 사람은 사람을 모으며, 오직 2%의 인간만이 지식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얼마전에 접했습니다(영상). 지식은 마구잡이로 폭식한다고 해서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 대화를 큐레이션하기 위해서 사람을 골라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처럼, 돈을 모으는 사람이 통장을 만들고 흐름을 통제해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처럼, 지식을 모으는 사람에게는 ‘지식의 포트폴리오’가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인 정보의 스트림을 만들고, 쌓이고 기록하는 아카이빙 시스템을 관리하며,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해 피드백을 얻는 습관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읽고 쪽글을 모으다보면, 언젠가 책은 이미 쓰여있는 것이죠. ‘모든 글은 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블리에 발행한 글에서는 ‘학습 퍼널(러닝 퍼널)’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 배우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전략을 설정하고 자료를 수집해 학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죠. 매주 다른 주제로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던 에디터 시절에 떠올렸던 개념입니다.


사실 본업으로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창조를 하고자 한다면 학습 퍼널의 개념은 유용합니다. 내 이름으로 된 작품을 하나 남기고 싶다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방대하고 허무한 정보의 흐름 속에 어떤 것들을 골라 큐레이션하고, 나름의 무언가를 만들어 제안해야 하죠.


‘요즘 정말 읽을 것도 볼것도 많죠? 그런데 전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보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꽤 유용하고 즐겁지 않아요?’


프레임워크만 보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 일의 현장에선 누구나 기획자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때가 오는데요, 자신의 직무에 ‘-기획’을 붙이기만 하면 되죠. 모든 기획자에겐 학습 퍼널을 만들고 통제해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기획의 경험이며, 나를 길 잃고 헤매이게 하는 파도와 흐름의 압력에서 벗어나 내 힘으로 노를 젓기 시작하는 ‘힘’입니다. 물리적으로 따지자면 매일 나름대로 글을 읽고 기록하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적은 칼로리가 드는 것이 무언가를 응시하거나 타자를 치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제 경험에서 보더라도 ‘이 분야를 배워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연성하는 과정은 험난하고 어려웠습니다. 기본적인 문해력과 학습력, 어디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내 시간을 들여 사고의 흐름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의지와 에너지, 나름대로 만든 것을 공개적으로 나누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용기 등, 배우고 때때로 익혀 나눈다는 일은, 참 즐겁긴 하지만 나름대로 쉽지 않은 일이죠.


무엇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영감을 모아 책을 써내고, 누군가는 콘텐츠의 우주에서 표류하는 것일까요?


성장의 관성을 만들다, 플라이휠 모델


학습 퍼널을 돌리기 위해서 참고하면 좋을 프레임워크는 ‘성장의 플라이휠’입니다.



클래스101의 글쓰기 수업에서 활용했던 장표입니다. 주지하듯이 ‘플라이휠’은 ‘알아서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모델’을 말하죠. 고객이 늘어날수록 가격이 떨어지며 서비스가 개선됩니다. 서비스가 개선될수록 고객이 늘어납니다. 아마존의 플라이휠이라는 비즈니스 성장 모델입니다. 본래 플라이휠은 관성장치라고 합니다. 일정한 힘을 주입하면 알아서 계속 돌아가는 장치라고 하네요. ‘관성’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한 것이죠. ‘복리’도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학습에도 이와 같은 모델이 있지 않을까요?


넓게 보고 많이 생각해 종종 쓰라는 고전의 가르침은 크게 성장해 무언가를 창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죠. ‘성장의 플라이휠’ 모델이 유용한 이유는, ‘학습과 기록의 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 물리적으로 보면 자주 읽고 자주 쓰는 습관은 어렵지 않습니다. 훈련만 거친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강할뿐만 아니라 일정하게 유지되는 에너지의 흐름이 필요한데요, 바로 ‘호기심’과 ‘관심’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강제한 것이 아닌, 알아서 궁금해지고 찾게 만드는 내부의 힘이 필요하죠.


일정한 관심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전자를 ‘비전’으로, 후자를 ‘정체성’이라고 불러볼까요.


만약 미래에 ‘웰니스’라는 산업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며, 사람들이 꼭 명상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훈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양의 정보를 접하더라도 자연히 ‘웰니스’에 대한 정보가 더 부각되고 기억에 남겠죠. 혹시 관련 뉴스레터나 간행물, 책을 읽거나, 여기서 배운 것 중 일부는 기록에 남겨 누군가에게 공유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명상을 알리고 싶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겨날지도 모르죠.


물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연성하는 일은 많은 양의 에너지와 사전 학습을 요구합니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더 쉬울지 모릅니다. 사회 초년생 시기를 기억해보면, 어떤 일을 맡았는데 일을 해내기 위한 능력과 지식이 부족할 때 학습의 필요에 의해 관심의 에너지 흐름이 생겨납니다. 조직문화 워크숍을 개발해야 하는데, 전에 해본적이 없으니 빠르게 관련 내용을 학습해 정리하게 되는 것이죠.


습관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계발서를 잔뜩 읽고 ‘내일부턴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겠어!’라고 다짐한다면 갑자기 인생이 변화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런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지만,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커뮤니티에 공유해 효능감을 얻어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플라이휠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비전, 정체성, 콘텐츠, 커뮤니티의 네 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는 겁니다(아래 이미지 참조). 완성된 형태가 아니더라도, 잠정적인 0.1 버전의 형태로요.



‘크게 성장한 사람은, 학습 퍼널과 성장의 플라이휠을 돌리고 있었다!’


실제로 성장한 사람, 우리가 그의 작업물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카이빙’의 습관을 가진 경우가 많죠. 빌 게이츠나 오바마 대통령은 주기적으로 자신이 읽은 책 중 좋은 것을 모아 리스트를 공유하죠. 고 이어령 선생은 에버노트에 1만6천개가 넘는 노트를 아카이빙 해놓았다고 합니다. 5시간 자는 것으로 유명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광이었다고 하고요.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사람들은 가장 IQ가 높은 사람은 아닐수도 있습니다. 즉 가장 똑똑한 사람이 가장 멋진 창조물을 만들거나 성취로 이름을 알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아는 사람’만이 치킨과 쇼츠의 유혹을 뚫고 학습과 창조의 습관을 유지해 플라이휠을 계속 굴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중요한 것은 단기적인 성취가 아닙니다. 제1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것은,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입니다. 책 한두권 보고 멈춘다면 플라이휠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한편의 멋지고 긴 글이나 완벽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 한두개 만들고 멈춘다면, 성장의 흐름 역시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이죠.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경험으로 보면, 성장의 흐름이 끊겨있을 때는 ‘자존감’이 낮은 시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왠지 모르게 에고가 만들어내는 각종 불안, 걱정과 같은 심리적 저항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내가 만든 창조물이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지도 못한 것이죠. 그렇지만 나아가지 못한다면 성장도 없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용기를 내야 하죠. 작은 용기가 나중에는 큰 파도로 이어지는 흐름을 다시 만들어주더군요. 겨울이 지나고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는 물줄기처럼요.


내 안에서 창조의 불씨를 발견한다는 일


가끔 우린 누군가의 성취를 보면서 ‘질투’가 꼬물꼬물 고개를 드는 일을 경험합니다. ‘실패했을 때 위로해주는 친구보다, 성공했을 때 축하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은 이런 마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만들었다는 개념인 ‘르상티망’은 강자에게 약자가 갖게 되는 양가감정을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거나 대단해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거나 분노하게 되는 것이죠.


‘창작하지 못한 사람의 르상티망’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창작의 열패감’을 느끼기 쉬운 시대죠. 누군가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대단하지 않은 콘텐츠로 1인 기업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나만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 끊임없이 배우고 창작하는 일이 인생의 정도이거나 성취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장르는 다양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이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제 나름의 여정에서는 ‘지적 욕구’와 ‘창조 욕구’가 어느 정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을 뿐이죠. 읽고 배우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나도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 ‘언젠가는 좀 괜찮은 글을 써보고 싶어!’


혹시 자신의 내면에 ‘창조의 불씨’를 발견했다면, ‘나도 뭔가 괜찮은 창조물을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찾았다면, 잠시 멈추고 깊게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 합니다. 성장의 흐름이 멈추고 삶이 나를 대신 살아주고 있다면, 한번 뿐인 삶 죽기 전에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죠.


어떤 철학자가 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가만히 홀로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

다른 아티클의 주제가 될 것 같지만, 사실 저도 해봤습니다. 명상 수련으로 삶을 돌파하기 위해 수련 시간을 늘이는 일을요. 하지만 ‘무언가 멋진 걸 만들고 싶다!’는 마음의 불은 꺼지지 않더군요. 내가 만든 것이 이 거대한 콘텐츠 우주에 떠도는 폐기물이 될지라도, 혹시 누군가에게 닿아 이 열기를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우리에겐 ‘누군가가 남기고 간 작은 불씨 하나’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창조물이 대단치 않은 것이더라도, 온기를 얻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겠죠.

이 글에서 학습 퍼널이니 성장의 플라이휠이니 뭔가 복잡해보이는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성장의 불씨는 이미 내 마음 안에 있다!’

잘 들여다보면 춥고 험난한 성장의 겨울을 지나면서도 꺼지지 않는 성장의 욕구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무언가 괜찮은 걸 만들고 싶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불씨를 찾아 장작을 주면 됩니다. 불꽃은 알아서 커나가니까요. 작은 불씨라면 부싯돌, 다른 불씨들, 장작을 모아둔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씨는 꺼지지 않고, 그 곳에 항상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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