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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l 06. 2020

달지 않아 야무진 복이다. 만두

엄마의 레시피

 

그럭저럭 밖에서 놀기 좋은 1979년 2월... 말이었던 거 같다.
엄마는 작은 외삼촌 졸업식에 가고 혼자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예쁜 누나가 집에 찾아왔다.
“혼자 있니? 엄마는?”
“외삼촌 졸업식 가셨는데요”
“...그래..? 언제 오실까”
“몰라요. 왜요?” “좀 기다려도 되겠지?”
예쁜 누나긴 하여도 낯선 사람은 불안한 9살이었다. 흔들리는 나의 눈빛을 예쁜 누나는 정확히 짚어냈다. 오백 원 지폐 한 장을 나에게 건넨다.
“이걸로 뭐 사 먹어”
나는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누가 주는 돈을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 게다가 500 원 거금의 지폐다. 이건 받으면 안 된다. 유괴범이 자주 쓰는 수법이라고 했다.
“괜찮아. 누나가 주는 거니까 받아도 돼”
빌어 먹을 낯가림. 난 모든 걸 허락했는데 낯가림이 뒷덜미를 붙잡고 있다. 미소 지으며 손만 뻗어 받으면 되는데 그걸 못한다.
“어머. 아가씨가 여기 웬일이야?”
작은 외삼촌 졸업식에 갔던 엄마가 왔다. 동시에 나의 고민은 시루떡 김 날라 가듯이 사라졌다. 오백 원 지폐를 달짝 받는다. 엄마가 눈치를 주지만,.
“고맙습니다”

나는 이미 대문 밖을 달린다.

오백 원 지폐를 손에 쥔 소년은 천하무적이다. 절대 지폐를 들고 9살 꼬마가 달려간 곳은 시장 입구 만두가게. 천지 분간을 가리는 하얀 김 속에 맛이 가득하다. 도톰히 발효된 만두피 속에 육즙 가득한 고기소가 가득 웅크리고 있다. 만두피만 찐빵처럼 뜯어먹고 만두소만 따로 먹는 건 없을 때의 쪼잔한 시식 법이다. 오백 원 절대 지폐를 손에 쥔 소년은 과감하게 한 입에 배어 문다. 폭신한 만두피가 식감을 자극하고 곧이어 다진 돼지고기 육즙이 뜨겁게 혀를 적신다. 오물오물 씹으니 만두피의 단맛이 더해진다. 부추의 단맛도 힘을 보탠다. 어린 소년의 입에 부드럽게 기름진 단맛과 씹기 편한 빵 같은 식감의 옷을 입은 찐만두는 배부른 행복이다.  

입 안에 배부른 행복을 우물거리며 돌아오는데 예쁜 누나가 집을 나서 내 곁을 지나친다. 슬픈 표정이다. 나쁜 작은 외삼촌.    

찐만두 한 입 더 베어 문다. 여전히 따뜻하니 맛있다.

부추 만두소 레시피  
부추 300그램
다진 마늘 큰 수저 반개
돼지 목살 600그램
달걀 3개
부추를 잘게 썰어 돼지 목살 달걀 3개 계속 치댄다

만두만큼 일관성 있게 다양한 나라에 자리 잡은 음식도 없다. 한중일 삼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미의 엠빠냐다, 이태리의 라비올리, 필리핀 롬피아에서 서구의 고기 파이까지. 밀이나 쌀로 만든 피에 갈은 고기와 채소를 싸서 익혀 먹는 음식은 다 만두의 혈통이라 할 수 있다. 즉, 만두는 인류가 레시피를 공유하는 보편적인 맛이다. 대중적인 맛이긴 해도 만들기 녹록지 않은 내공과 재료가 필요한 음식이 또 만두다.


제천의 송학반장. 옛날 만두를 맛볼 수 있는 보석같은 집이다

밀가루와 고기라는 당시(1970년대)로는 고가의 재료비가 아무나 점포를 내서 만두집을 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수가 많지 않은 대신 옛날 만두집의 맛은 실패할 확률이 극히 적은 내공 있는 수제 집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만두피는 밀가루 반죽을 장시간 숙성시켜 찐빵 같은 식감을 주는 도톰하고 폭신한 발효 피가 대세였다. 만두소는 다진 부추와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하는 심플한 구성으로 승부를 했다. 이때 김치만두를 사 먹었던 기억은 나에게 없다. 엄마도 김치만두를 빚지 않았고, 동네 만두가게도 김치만두를 팔지 않았다. 부추와 고기만으로 속을 채운 만두가 전부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지만 육즙으로 꽉 찬 맛을 즐길 수 있는 만두. 호박이 들어가지 않아 직접적인 단맛을 최대한 줄인 게 당시의 만두 맛이었다. 단맛은 발효되어 폭신하게 부푼 만두피에서 나오는 맛으로 충분했다. 이 맛이 너무 심심하다면 솔루션이 있었다. 간장과 식초를 1대 1 비율로 섞고 고운 고춧가루와 후추 역시 1대 1 비율로 ‘듬뿍’ 넣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고소함에 양념장의 새콤 매콤이 더해지고, 만두피의 단맛이 따스이 터치를 한다. 좋다. 참 좋다.  



엄마의 만두는 만나기 쉬운 녀석이 아니었다. 설이 돼야만 만날 수 있었던 전형적인 명절 음식이었다. 산적이나 동그랑땡이야 제삿날에도 만날 수 있지만 만두는 오로지 설 명절에만 차례상에 올리기 때문에 집 만두는 귀한 녀석이었다. 80년대에 즉석만두인 삼포만두가 출시되면서 집 만두의 위상이 격하되기 전까지는.
나에게 삼포만두로 대표되는 즉석만두는 여러모로 만두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 째는 대중화다. 봉지 뜯고 물 좀 넣어서 렌즈에 3분만 돌리면 먹을 수 있는 만두를 가게에서 쉽게 사고 냉장고에 쉽게 보관할 수 있으니 굳이 설 때까지 목 빼고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두 번 째는 얇은 만두피의 보편화다. 삼포만두가 얇은 만두피로 출시된 이후 만두 전문점이 아닌 일반 분식집에서도 만두 메뉴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물론 얇은 피의 만두다. 발효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고, 찌기도 쉬운 만두가 완성품 형태로 대량 유통되기 시작한 결과다.
세 번 째는 단맛의 강화다. 만두 명가로 일컬어지는 만두 전문점들 대부분이 ‘평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깊은 맛이 있다고들 하는 평양 혹은 이북식 만두의 특징은 슴슴함이다. 우선 속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를 익혀서 쓴다. 돼지고기를 물에 쪄서 수육을 만든 후 갈기도 하고, 외할머니 방식처럼 간 돼지고기를 볶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게 평양식 만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호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엄마의 부추만두도 외할머니의 손만두도 애호박을 넣지 않는다. 이유는 달아지니까. 슴슴한 맛이 사라지니까.
 
김치 만두소 레시피
김장김치를 약간 숙성시킨 후 잘 다진다 (2통 반)
다진 김치의 물기를 약간 적당히 짠다
시중 판매 두부 3모를 물기를 완전히 짠다
돼지고기 목살 잘 간 것 1500그램
참기름 큰 수저 하나
깨소금 큰 수저 하나
다진 파 큰 수저 세 개
다진 마늘 큰 수저 세 개
다진 생강 큰 수저 하나
후추 작은 수저 하나
다진 김장김치 물기 뺀 두부 돼지 목살 와 골고루 섞는다
(삶은 당면은 선택적으로 넣고 싶으면 넣는다)

요즘 만두소는 애호박은 기본이고 불린 무말랭이를 다져서 넣기도 하고, 새우살을 넣기도 하는 등 다양한 레시피가 통용되고 있다. 엄마의 만두도 부추 만두소를 기본으로 이런저런(소고기를 만두소로 썼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기억 못 하신다) 과정을 거쳐 지금은 김치만두로 정착했다. 외할머니의 이북식 만두의 슴슴함과는 거리가 먼 매콤한 맛의 김치만두지만, 단맛은 절제되어있다. 마늘과 파의 단맛이 전부다.
만두소에 무엇을 넣던 그건 각자의 기호이기에 무어라 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단맛을 과하게 유도하는 애호박만큼은, 적어도 이북식 만두를 표방하는 곳에서는 멀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기의 육즙을 호박의 단맛이 덮어버려 맛이 과해지고, 물기가 많아져 속이 흐물 된다.


엄마의 만두소 만들기 핵심은 좋은 재료의 물기 짜기에 있다. 다진 김치의 경우 국물이 흐르지 않고 촉촉할 정도만큼 물기를 짜내야 한다. 두부는 물기를 완전히 짜내야 한다. 베 보자기에 넣고 손으로 두부 물기 제거를 하는 작업은 남자도 땀을 뚝뚝 흘릴 정도로 힘들다. 그만큼 물기를 완벽히 제압해야 한다. 그래야 김치 맛을 흡수하면서도 질척되지 않는 만두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엄마 만두는 한 입 베어 물면 야무지게 꽉 찬 만두속이 느껴진다. 맛의 밸런스도 완벽하다. 김치의 매운맛, 돼지고기 목살의 구수함, 그리고 김치 국물과 육즙이 적당히
스며든 두부 맛이 과하지 않은 양념과 어우러진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균형 잡히고 풍성한 맛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단맛은?
당연히 없다. 더불어 두부의 맛, 즉 밋밋함은 완벽히 제어됐다. 두부 물기를 힘들게 짜낸 정성 덕이다.

만두에 물김치. 아주 야무진 맛의 조화다


40여 년 전에야 예쁜 누나가 쥐어준 500원으로 기쁘게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만두였고, 명절에 엄마가 정성스레 빚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만두였다. 하지만 일 년 사이에 우리 동네에만 만두가게 2곳이 개폐업을 반복했고, 지금도 마트에는 종류별 냉동만두가 수십여 종이 깔려있다.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로 만두를 설날에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쉽게 복을 접할 수 있어 참 좋은 현상이지만, 쉽게 만나는 복이 대부분 물기가 많아 질척되고, 달고, 너무 기름질 뿐이니 그게 아쉽다. 많이. 흔하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닐 텐데 요즘 쉽게 만나는 만두는 쉬운 맛이다. 설 때 엄마가 싸준 만두가 몇 알이나 남았는지 궁금하다. 다 먹었으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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