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발이 Jun 30. 2020

관능적 맛의 상처. 야채튀김

엄마의 레시피


‘후두 두두두둑’, ‘차아아아아아’, ‘툭 툭 툭’, ‘바사삭’, ‘앗 뜨거’.
튀김이다. 고구마, 감자, 당근, 양파가 길쭉길쭉, 얄팍하게 쓸어져서 노릇하게 튀겨진 엄마의 별식. 야채튀김. 시골 할머니들이 찬이 없으면 잠시만 기다리라며 내오는 별식이 부침개이듯 엄마가 입이 궁진할 때 별식으로 내오던 녀석이 야채튀김이다.

튀긴 음식의 첫맛은 무조건 맛있게 느껴진다. 기름지니까. 튀김을 입안에 넣는 순간 순식간에 기름이 입안을 코팅해버려 웬만한 식재료의 맛은 고소하게 느껴진다. 대표적인 예가 대도식당 류의 등심 집이다. 무쇠 주물 철판에 등심을 구워주는 식이 대도식당류인데 이런 집들의 특징이 소고기 맛이 상당히 고소하다는 점이다.
이유는? 기름 코팅!
고기를 굽기 전 주물판을 달구고 그 위에 소 기름으로 코팅을 한다. 요게 고소한 맛의 포인트다. 소기름으로 넉넉히 주물판을 두르고 그 위에 소고기를 구우니 맛이 당연히 고소해진다. 엄밀히 말해 이건 고기 맛이 아니라 기름 맛이다. 그러니 기름에 넣어서 튀기는 튀김 맛이야 어떻겠는가? 당연히 고소하다. 그래서 튀김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특별한 별식일 거다. 소리까지 맛있는.

엄마의 야채튀김은 방학 때 더 특별했다. 장마도 끝나고, 가족 바캉스도 끝난 8월 중순. 할머니는 마실 나가고, 아버지는 직장에 나간 여유롭고 한갓진 늦여름의 오후. 밀린 방학숙제를 싸들고 식탁에 앉아서 한 숨 폭폭 쉬던 아들은 입에 발린 말 한마디를 던진다.

“뭐 맛있는 거 없어?”
“야채튀김 해줄까?” 이어지는 소리.
“탁탁 탁탁”
도마 위에서 고구마, 감자, 당근, 양파가 길쭉길쭉하게 채쳐진다. 야채튀김의 시작이다. 늦여름 별 다른 식재료도 없는데 군것질 거리를 찾는 아들에게 먹일 채소가 썰어지는 소리다. 주식은 고기, 부식도 고기를 원하는 식탐 가득한 아들 녀석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야채튀김이 시작되는 소리는 좋다.
“탁탁 탁탁”
채소가 길죽길죽히 준비가 되면 다음은 반죽이다. “착착 착착”. 긴 튀김 젓가락이 휙휙 원을 그리며 멋지게 돌아 감기며 물과 밀가루와 부침가루가 한 몸이 된다.
“착착 착착”, “틱..티딕..틱틱” 반죽 소리 옆에서 신선한 기름이 달아올랐음을 알린다. “틱..티딕..틱틱..티디딕” 기름 온도가 올라오면 길쭉길쭉한 야채들이 뽀얀 반죽 옷을 입는다. 두껍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내 맵시를 뽐낼 수 있는 정도의 맛깔스러운 옷이다. 시스루는 과하고, 외투는 투박하다. 파티용 원피스와 턱시도 같은. 심플해서 섹시한, 딱 그 정도의 반죽 옷이 좋다. 기름의 열기는 후끈하다. 충분히 달궈져 있다. 가보자.
“후둑 후둑 후두두둑”
섹시하게 반죽 옷을 입은 야채가 기름의 열기 속으로 뛰어든다. 계속 뛰어든다.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치이이이 차아아아아” 반죽 옷을 입은 길쭉길쭉한 야채 녀석들이 노르스름한 기름진 옷으로 갈아입는다. 풋내 나고, 딱딱하기만 하던 녀석들이 관능적인 고소함을  풍기며 폭신해진다. 야채튀김이다.

격정적 사랑에는 상처가 남는다. 관능미 물씬 풍기는 야채튀김을 급하게 베어 물면 녀석은 나의 입천장에 스윽 생채기를 남긴다. 이른바 겉바속촉의 결정체인 야채튀김이 새기는 맛의 상흔이다. 나는 엄마의 야채튀김을 먹으며 단 한 번도 이 상흔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그만큼 엄마의 야채튀김은 바삭했다. 특히나 식탐 왕성한 나는 고소한 유혹의 야채튀김을 덥석 베어 물지 않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설령 안다고 했어도 나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기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다. 격정적 사랑이 늘 그렇듯이.

격정적 사랑이 지나가면 관능적 사랑이 다가온다. 양조간장에 식초를 넉넉히 넣고, 고춧가루를 첨가한 초간장을 야채튀김에 찍어먹으라고 엄마가 내온다. 입천장은 까지고, 속이 적당히 기름져올 때 내온 초간장은 맛의 묘약이다. 새콤 매콤 짭쪼름한 초간장에 야채튀김을 살짝 적셔 한 입 베어 물면 그 맛은 참으로 관능적이다. 튀김의 기름기가 부드럽게 입술을 훔치고, 바사삭 거리는 속삭임이 끝나면 촉촉한 야채의 살결이 새콤한 초간장과 맛을 섞는다. 오물오물 거리는 내 입 속에 혀가 야채 육즙의 단맛, 튀김옷의 고소함, 양념간장의 새콤함을 놓치지 않고 보드랍게 느낀다. 관능적 맛의 여운이 길다. 그 긴 여운을 차가운 보리차 한 모금으로 씻어낸다. 또 다른 사랑을 위하여.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타짜다. 탕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