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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n 29. 2020

엄마는 타짜다. 탕국

엄마의 레시피

가정식 백반의 최고 맛자랑이 펼쳐지는 제사상에 으뜸은 뭘까? 산해진미가 정성이라는 조미료로 요리되는 제사상 음식 중 핵심은 탕국이다. 내 생각에.


가정식 백반의 일진들이 모인 자리인 제사상에 국이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오죽했으면 이름도 겹쳐 써서 ’국국’인 ‘탕국’일까. 심지어 탕국은 제삿날 아니면 먹을 수도 없고 파는 곳도 없다. 그런데.

세상사에 한 주먹 날리셨던 건달 형님들 시라소니, 구마적, 신마적, 이정재, 김두한 등등이 그러했듯 제사상의 일진들도 캐릭터들이 확실하다. 동그랑땡, 산적, 생선전, 조기찜, 무나물, 문어숙회, 돔베고기 등등 그 이름만으로도 캐릭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음식이 대부분인 제사상에서 유독 탕국만큼은 캐릭터가 애매하다.
뭇국인가 싶으면 소고기가 씹히고 소고기 뭇국인가 싶으면 두부를 넣는 집도 있다. 부산에서는 상어고기를 넣는다고도 하고, 경남 해안 지방은 홍합, 새우에 오징어가 들어간단다. 대구, 경북은 문어를 넣고, 전라도 내륙은 토란을 넣고 전라도 해안은 낙지, 굴에 피문어를 넣고 심지어 오리고기를 넣는 지방도 있다고 한다. 무 대신 박을 넣는 곳도 있단다. 좋게 보면 변화무쌍이고 나쁘게 보면 정체불명이다. 탕국 캐릭터는.

이런 애매한 탕국 캐릭터에 엄마는 화려한 기술을 더해 제사상의 완벽한 핵심으로 만들어 놓았다. 



탕국 레시피 1
다시마를 네모 반듯하게 자른다 (수십 쪽 제법 많이)
찬물에 2시간 정도 핏물 뺀 소고기 양지머리 2근  
양지머리를 칼로 약간 다져서 부드럽게 만든다
무는 깍둑썰기로 썬다 (소고기 2근에 큰 무 하나)
다진 마늘 적당히 많이, 후추 적당히 조금 넣고  
참기름(밥 수저 하나) 적당히 넣고 소고기 붉은 기만 가실 정도만 볶는다
(볶아서 너무 익으면 고기가 질기다).


엄마는 업자다. 엄마의 탕국은 변화무쌍 혹은 정체불명에 한 술 더 떠 파격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에는 마늘을 넣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아마도 오신채를 금하는 불교 교리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짐작을 해보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엄마의 탕국에는 마늘이 넉.넉.히 들어간다.
엄마에겐 보이지도 않는 조상님을 위한 예보다 눈 앞 가족의 맛이 훨씬 중요하다.
아버지는 인의예지신을 비롯 조상님들을 향한 예에 자못 엄격한 척하셨다. 홍동백서, 좌포우해, 노론소론을 늘 제사상 앞에서 논하셨지만 단 한 번도 지방을 태우지 않았다. 다시 쓰기 귀찮으니까. 우리 집 지방은 늘 재활용이다.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본 적도 없다. 산 사람들 배고픔을 조상님들도 이해하실 거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부부는 닮는 게 확실하다.

아버지가 앞장서서 격을 파하니, 엄마도 업자답게 손기술을 쓰신다. 마늘 투척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 집 탕국에는 두부 대신에 다시마가 들어간다. 제법 넉.넉.히.  
다시마는 감칠맛의 바다 주인이다. MSG의 주성분으로 알려진 글루탐산나트륨도 다시마의 감칠맛을 연구하다 나온 화학물일 정도이다. 수많은 음식프로에서 육수를 내는 다양한 재료 공개에서도 다시마 몇 쪽은 화면에 꼭 비친다. ‘몇 쪽’만.
다시마는 많이 넣으면 감칠맛이 과해지고 특유의 점성 때문에 국물이 걸쭉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식당에서 육수를 낼 때도 그 많은 물에 ‘몇 쪽’만 넣고 끓이고, 일본은 다시마를 물에 넣고 끓이는 것도 과하다고 생각해 끓는 물에 다시마를 2~3초 정도만 담갔다가 뺀다. 단지 몇 쪽만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하는 다시마를 엄마는 ‘수십 쪽’을 넣는다. 탕국이 파격적인 캐릭터가 되는 순간이다. 요리에서 파격은 대부분 과한 맛으로 귀결된다. 이것저것 파격적으로 재료를 넣다 보니, 각 재료들이 온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를 억지로 봉합시키다 보니 과한 단맛, 과한 매운맛, 과한 짠맛이 나온다. 우리 집 탕국은 과다 투하된 다시마로 인해. 과한 감칠맛, 즉 달달 걸죽 느끼한 맛이 여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기술자다. 우리 집 탕국은 맛있다. 엄청. 엄마의 손기술 때문에.

탕국 레시피 2
볶은 다음에 끓는 물을 넣고 끓인다 (일차 포트 하나 분량)
육수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자작할 정도의 물 양만 넣고 일차 끓인다
육수가 우려 나오면 다시 끓는 물을 보충한다 ( 3 정도 반복)

탕국 재료 삼총사인 소고기, 무, 다시마가 마늘과 참기름에 달달 볶아지는 냄비 옆에서는 물이 팔팔 끓고 있다. 요게 엄마 탕국 레시피의 기술이다. 뜨거운 물을 4회에 걸쳐 보충하듯이 넣어 고기 노린내를 휘발시킴과 동시에 다시마로 인한 끈적한 감칠맛을 용해시킨다. 참 묘하게도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탕국은 맑아지고, 입맛 돋우는 기분 좋은 단맛과 감칠맛이 국물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칼로 살짝 다져서 넣은 양지머리 고기는 구수하고, 깍둑 썰기한 무는 푹 익어 포근한 단맛을 머금고 있다. 감칠맛을 내어놓은 다시마는 대신 육수를 머금은 부드러움을 얻었다. 탕국 재료 삼총사가 조화를 이루며 맑은 단맛의 국물 안에서 동거를 한다. 밥을 말아도 좋고, 짜지 않아 건더기 삼총사만 즐겨도 좋고, 정종 안주로는 그만이다.
땅의 단맛을 품고 있는 무가 가득, 바다의 감칠맛을 품은 다시마도 가득, 육수를 지배하는 소고기도 가득 들어있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초짜다. 이런 조합이 과한 거다.
EPL 2012-2013 시즌 박지성이 몸 담았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기억한다면 이해가 쉽다. 박지성을 비롯해서 퍼디나드, 그라네로, 타랍, 지브릴 시세, 로익 레미, 숀 라이트 필립스, 크리스토퍼 삼바, 훌리오 세자르 등등등 급 있는 선수들을 과하게 투입했지만 결과는 강등.
피치 위에 재료만 쏟아부었지, 단점을 제거하고 장점을 융합시킬 기술이 없었던 팀은 강등이 당연하다.  
무 많이, 다시마 많이, 고기 많이인 탕국이 겉보기에 딱 퀸즈 파크 레인저스다. 엄마의 기술이 없다면. 끓는 물 4회 분할 투입이 과함을 거세하고, 예를 파하고 투입한 마늘이 맛의 조화를 도모한다. 단 두 가지 기술로 제대로 된 맛이 팀을 이룬다. 맛은 기술이자 결단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엄마는 타짜다.

탕국 레시피 3
센 불로 끓으면 대파를 넣고, 중불로 끓이고 다시 약불로 끓인다
완전히 끓인  집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엄마 비법 혼다시 조미료 투하)

혼다시. 참치 과립분말형 일본 조미료. 일본판 다시다. 아이고 어머니.
다시마 수십 장으로도 뭐가 부족하다고 느끼셨는지 대파를 넣고, 치밀한 불 조절 후에 슬쩍 혼다시를 투하한다. 천연재료에 인류가 만든 최고 인공 감칠맛까지. 엄마의 마지막 밑장 빼기. 맛있다.

내일모레 아버지 제삿날, 타짜 엄마의 기술이 들어간 넘치는 감칠맛에 푹 빠지고 싶다.
엄마의 탕국 기술은 완벽하다. 언제나 먹고 싶다. 당하고도 개운하다.
받고 더블로 한 그릇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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