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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발이 Jun 24. 2020

심플한 것이 진짜다. 육개장

엄마의 레시피

”심플한 것이 베스트다” 어디서 누구한테 들었는지, 누가 말한 건지도 모르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엄마의 음식 중에서 가장 심플하고, 그래서 베스트인 음식은 육개장이다. 빨간색 육개장.


허영만 선생의 식객에서도 묘사된 바 있지만, 한국 음식 특히 국 종류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가장 왜곡된 음식이 육개장이다. 요즘은 북엇국에서 시래기 된장국까지 장례식장 국이 다양화되는 추세이기는 해도 여전히 장례식장 국의 대세는 육개장이다. 언제 어떻게 장례식장을 육개장이 점령했는지 모르겠지만(허영만 샘도 추론하지 못했다) 영혼 없이 끓여낸 장례식장 육개장이 사람들에게 육개장 맛의 표준이 되는 게  난 싫다. 그래도 장례식장 육개장은 양반이다. 파우치 육개장은 심각하다.

대부분의 일반 음식점의 육개장은 파우치에 들어있는 공장형 육개장이다. 끈적한 달달함과 정체불명의 고기 몇 점과 기름이 가득한 파우치 육개장은 맛에 대한 모욕 수준이다.
나의 음식 철학 중 하나는 ’만 원 이하의 음식 사 먹으면서 조미료 맛 투정하지 말자’다. 임대료 부담에 허덕이는 작은 밥집에서 7000원 백반 먹으며 미원 맛 난다고 투덜대는 건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싸다며 식당 가서 밥 먹으면서, 십만 원 넘는 고급 식당에서는 맛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못 내리면서, 우리네 이웃의 만 원 밥상 앞에서는 미쉐린 평가단이 되려는 사람들. 그건 맛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파우치 육개장은 아니다. 만 원 백반의 조미료가 용서가 되는 건 힘들어도 맛을 내기 위한 노력에 조미료가 첨가됐을 때다.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몇 푼 돈을 위해 공장에서 찍어낸 싸구려 자본의 맛은 아니다.  
심플함은 직관적이다. 직관적으로 맛의 선명함이 느껴 저야 심플한 맛이다. 하지만 파우치 육개장은 복잡하다. 첫맛은 기름지고, 두 번째 맛은 달큰하고, 세 번째 맛은 매운 듯 맵지 않고, 네 번째 맛은 끈적하고, 마지막 맛은 석연찮다. 검붉은 국에 둥둥 떠있는 기름은 시각적으로 불순하다. 거무튀튀하게 엉켜있는 건더기들은 단지 씹히기만 할 뿐이다. 직관적으로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엄마의 진짜 육개장은 심플하다. 직관적이다. 맛있게 맵다.

육개장 레시피 1

양지머리 한 근을 30분 찬물에 담가 피를 뺀다
중 냄비 1/3 정도 양의 물을 팔팔 끓인다
끓는 물에 양지 덩어리를 넣는다 (찬물에 끓이면 누린내 나고 질기다)
굵은 대파 일곱 뿌리를 통으로 넣는다
센 불에 한소끔(끓는 물에 고기를 넣으면 물이 식었다 다시 끓는 시점) 끓이다
중간 불에 고기를 젓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로 끓인다

더운 여름 민초들이 개를 잡아 함께 끓여 먹었다는 개장국에 어원을 둔 육개장은 하동관의 곰탕처럼 레시피의 중심을 잡아주는 오래된 노포가 없다. 대구식 소고기 국밥을 육개장과 동일시 여기는 사람이 있지만, 무가 들어가는 대구식 소고기 국밥은 육개장보다는 건더기 많은 빨간 소고기 뭇국에 가깝다. 안동 국밥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구식과 안동 국밥 모두 달걀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육개장과 결을 달리한다.


안동의 맛 옥야식당. 국밥 맛이 푸짐하다

       

안동 넘버원 육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옥야식당은 상호에 선지국밥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실제로 국밥의 구성도 소고기 우거짓국에 선지가 첨가된 형태이다. 물론 맛은 훌륭하다. 단, 고기를 따로 썰어놓고 있다가 국을 담을 때 넣어주기 때문에 바로 먹으면 살짝 뻣뻣한 고기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포장을 해서 먹으면 국 안에서 고기가 적당히 불어 식감은 더 좋다.  


옥야식당 국밥. 숨겨진 고기가 넉넉하다


허영만 선생은 식객에서 경상도식인 무나 우거지 대신 고사리와 토란대가 들어간 것이 서울식 육개장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식객 8권 40화 1+1+1+1) 

만화 식객의 육개장 재료


하지만 나는 고사리와 토란대가 들어간 것은 고기가 부족했던 시절 건더기 양을 늘리기 위해서 식감과 색깔이 비슷한 두 가지를 넣던 것이 대중화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서울식 육개장 노포로 유명한 동경 육개장 사장도 ‘진짜 육개장에는 파만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김한석 저 [세상에서 젤로 맛있는 집] 중에서) 

동감이다.
40년간 엄마의 육개장을 먹어온 나는 대파 이외에 다른 채소가 들어간 육개장을 먹어본 적이 없고, 엄마의 것보다 맛있는 육개장을 먹어본 적도 없다. 육개장은 딱 4가지 재료로 충분하다. 소고기 양지, 대파, 달걀, 집 고추장. 4 인조면 완벽하다. 그래야 심플하고 직관적인 맛이 나온다.

육개장 레시피 2

고기를 꺼내 식힌 후 손으로 쭉쭉 찢는다
찢은 고기를 다시 육수에 넣고 
육수물에 집 고추장 큰 수저 5~6개 정도 푼 후 육수에 붓는다
팔팔 끓인 후 먹기 직전에 달걀 일곱 개를 곱게 풀어서 넣는다

시중 체인점 육개장의 (나에게) 단점은 대부분 사골육수를 쓴다는 점이다. 물론 파우치 육개장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맛이 과하게 진하다. 좋은 양지머리를 냄새 안 나게 잘 끓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골육수는 과하다. 느끼해진다. 흔히들 국이나 찌개를 고추장으로 끓이면 맛이 텁텁해진다고 한다. 그건 시판 고추장 기준이다. 제대로 담근 집 고추장으로 끊이면 전혀 텁텁하지 않고, 기분 좋은 매콤함이 구수한 양지머리 육수와 어우러져 혀를 맛나게 자극한다. 달걀지단은 아니다. 노란 달걀물을 직접 곱게 풀어 넣어야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붉은 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푹 익은 대파의 단맛은 엄마 육개장의 방점이다. 양지머리, 대파, 달걀, 집 고추장의 심플한 구성이기에 한 수저 입안에 들어가면 직관적으로 맛이 느껴진다. 구수한 국물 속에 담겨있는 달콤한 매운맛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깔끔하다. 정말 맛있다. 또 먹고 싶다. 흰쌀밥에 노란색 달걀과 갈색 소고기를 듬뿍 품은 빨간색 국물의 앙상블은 화려하다.  4인조 구성만으로도 육개장은 완벽할 수 있다.
혹자는 무조건 고사리를 넣어야 하고, 또는 토란대를 넣어야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사리나 토란대를 넣은 육개장을 아무리 먹어도, 고사리와 토란대가 국물에 특별한 맛을 더한 것을 느낀 적이 없다. 오로지 풍성한 건더기를 위한 목적이라면 그건 손으로 쪽쪽 찢어 넣은 양지머리 고기로 충분하다. 단 맛을 위해 무를 넣는 것은 소고기 뭇국이다. 대파만으로 끓이는 국이 육개장의 정체성이다. 심플하다고 맛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심플한 게 베스트니까.

프랜차이즈 음식에는 유행이 있고, 새로운 식재료 수입처의 발굴과 더불어 유행은 변화한다. 대규모 전복 양식이 성공한 즈음에는 모든 음식에 전복을 얹어 내는 것이 유행이었다. 전복 삼계탕, 전복 갈비찜, 전복짬뽕 등등등. 중국에서 산낙지가 대규모 수입이 되면서 전복의 자리를 낙지가 대신한다. 낙지 삼계탕, 낙지 갈비찜, 낙지 짬뽕 등등등. 요즘은 베트남에서 꼬막이 대거 유입되면서 각종 음식에 꼬막을 더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러한 조합이 새롭기는 하지만 맛이 좋아진 경우는 없다. 정말 없다.
짬뽕에 데친 낙지 한 마리와 홍합을 무더기로 얹어 놓고 황제짬뽕이란다. 겉보기에 푸짐하고 새롭다. 그뿐이다. 낙지와 홍합 처치하느라 국물은 식고 면은 불어 터진다. 얹어진 낙지와 홍합 때문에 짬뽕 맛의 본질은 사라진다. 이게 뭔가 싶다. 

육개장은 우리 집의 보양식이었다. 특히 내가 반찬 투정을 줄기차게 할 때면 엄마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던 맛이 육개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봄에는 입맛을 돋우는 대파의 달콤함이 돋보인다. 여름에는 땀을 뚝뚝 흘리며 먹는 얼큰함과 푸짐한 양지머리 건더기로 복달임을 대신하고, 가을에는 갓 지은 햅쌀밥의 짝꿍으로 이만한 녀석이 없다. 겨울에 몸을 데워주는 빨간 국물에 노오란 달걀이 풀어진 육개장은 따스하고 보드랍다. 양지머리, 대파, 달걀, 집 고추장 4인조는 육개장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사시사철 나를 위한 맛있는 연주를 한다. 육개장 밴드는 내 기억 속에 40년간 멤버 변동 없이 한결같은 연주를 들려준다. 물론 변함없이 제작자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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