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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Jan 15. 2023

지나간 시간에 대한 생각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문득 느낀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몇 개의 글을 써놨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저장만 해 놓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 한 달이 넘게 흐른 거 같다.

 '재능만으론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매일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려면 버릇처럼 책상에 앉는 연습부터 해라.

그리고 핸드폰 보지 말고 5개만 문제 푸는 것에서 시작해라.'

라는 말을 책상에 앉기 힘든 애들... 특히 숙제를 안 해오는 아이들에게 매번 말해준다.

작은 실천부터 해보라는 말은 사실 내게 절실히 필요한 말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머릿속과 마음이 정리도 되지만 정리하는 그 시간이 에너지 소비도 함께 이뤄지는 것 같다. 제한된 에너지를 쓰고 나면 좀 쉬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니 말이다.


오늘 마당에 쌓인 눈을 보며 초록 사진을 올린 이 글의 대표사진과는 참 안 어울리지만 내 귀차니즘에 이 풍경은 내 눈에만 담고 글은 그냥 쓰련다.


쓰고자 하는 한 학생은 이제 고3이 되는 어떤 학생이다. 장난꾸러기에서 몹시 심한 반항아에서 청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청년이 될까?

눈 밖에 광경을 보며 갑자기 이 광경을 얼마나 많이 봐 왔는데 이렇게 새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며 세월을 느끼는 것, 지금 시간이 지나감을 느낀다는 것 그게 무엇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문득 느끼는 것이지 계속 느낄 수가 없다.


큰아이와 아침을 느긋하게 먹는데 식탁 옆에서 나이 들어 세상모르고 자는 우리 집 개를 보며 귀여운 어린 강아지인 때가 있었는데 그게 실감이 가냐?라고 물으니 큰아이 말이 '전생에 생긴 일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속을 무척 썩이던 중2남학생이 이제는 고3이 된다.

암담하게 공부를 안 해서 엄마와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진로와 심리상담을 해주는 곳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시라 권하기까지 했다.

미안하게도 거금을 들여 검사를 했고 상담도 받았는데 그 이후로 아이가 공부를 더 안 한다는 것이다.

왜일까?


아이는 자기는 꾸준히 뭘 하는 성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렇게 꾸준히 하는 것은 힘든 게 맞다는 것이다. 그 말에서 공부를 안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서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고 3만 꾹 참고 잘 견뎌서 학과 보지 말고 좋은 대학 가서 머리 좋은 학생들을 모아 사업하면 잘할 성향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 말은 지금 공부하란 말인데 이건 접수하기 싫은 모양이다.


얘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공부하다가 나가면 늘 친구들이 주민체육시설로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얘를 반겨주나 보다.

솔직히 난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피시방이 아닌 곳에서 땀 흘리며 뛰는 아이들과 함께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볼링도 하며 운동으로 싫은 공부를 피해 노는 그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뛰어노는데 할애하니까 그 게 문제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여기서 예외겠는가? 열심히 뛰었더니 힘이 든다는 엄살을 한두 번 들은 정도가 아니다.

내가 갖은 에너지 양이 적다 보니 그 말에 쓸데없이 공감이 팍팍되지만... 그렇다고 쉬어라 할 수 없다.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되지 않나? 하지만 적당히 한다는 것은 한 둥 만둥 할 수도 있다.

자기 관리란 무엇일까?

하다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인가?

승부가 걸려있으면 지칠 때까지 해 봐야 하는 것이지... 하다가 말고 내 관리를 위해 다른 일을 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이 학생에게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까?


사실 언제나 그렇듯이 방학식 하던 날... 방학식이 끝나고 4시간이나 늦게 왔다.

그래도 다른 날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왔길래 '일찍 왔네...'라고 하니 '더 늦게 올까요?' 한다.

수업하던 학생이 있어서 좀 늦게 오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하긴 했는데 지금 갔다가 언제 올지 몰라 그냥 공부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공부하면서 연신 핸드폰이 번쩍번쩍한다.

흘깃흘깃 보기만 하더니 결국 엎어 놓으며 '얘네들 때문에 집중이 안되네..' 하는 기특한 말을 한다.


노는데 진심인 아이

공부를 안 하기 위해 노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때 게임에 빠져서 지겹게 속을 썩였다.

시험날이든 수행평가가 있든 온통 머릿속은 언제 게임이 가능한가만 머릿속에 계획이 있을 뿐 준비물이나 챙겨야 할 모든 것은 그 아이에게 잊힌 대상이었다.


걸핏하면 비상금을 잃어버려 집까지 걸어가고 엄마와 게임과 공부로 귀에 딱지가 지게 잔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가 그 잔소리에 키 크는 성분이 있는지 키만 쑥 커버려서 더 헐렁헐렁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심성은 착해서 매일매일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만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뚜껑으로 잔소리를 막으니 엄마를 희망으로 다시 리셋시키고 그날 공부할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길 바라는 엄마는 이제는 그도 안 먹혀서 늘 화가 나있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이 그래도 처음보다는 앉아있는 시간이 좀 길어졌다.

구시렁거리면서도 앉아서 문제 푸는 거며 이해하는 것... 늘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2학년 1학기 마칠 무렵에

'확률과 통계 과목과 미적분을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을 할까요? '하길래

'문과 쪽 생각하는 아이들은 확통을 선택하고 수학에 좀 자신 있는 이과계열 지망생들은 미적분을 선택하지.

그런데 너는 읽고 조건 따지는 문제를 싫어하니 확통을 힘들어할 것도 같고 미적분은 개념만 잘 이해하면 요령 있게 문제 푸는 네게는 잘 맞을 것 같기도 한데 선택하는 아이들이 수학을 자신 있어하니까 내신이니 성적이 잘 안 나올 것 같고 그렇다고 미적분을 선택해서 네가 개념 공부를 잘하겠나? 그러니 성적이라도 좀 나오게 확통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정도 알려주고 문제집 보여주고 알아서 선택하라 했다.

그랬더니 확통을 선택했다가 미적분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래서 수 1 개념과 수 2 개념을 다시 알려주며  어르고 달래서 겨우 겨우 미적분 1 단원을 끝마칠 때였다.

갖은 협박과 잔소리로 1단원이 끝나서 이제  2단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머니께서 톡을 주셨다.

'오늘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가 확통을 선택했다는데요?'

난 기암을 할 노릇이었다.

미적분을 열심히 내 진을 빼가며 가르쳤는데 확통이라니? 얘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어이없어하면서 '당장 내일 확인해서 확정된 결과 톡으로 보내줘' 했는데 알았다 답은 하면서 다음날 확정된 사실을 저녁이 되도록 안 알려준다.


결국 내가 물어봤다.

그랬더니 '미적분'

그게 끝이다.

죄송이고 뭐고 이야기가 없고... 그리고 다음 수업에 나타난 얼굴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해맑은 얼굴로 '오늘 애들하고 축구를 5판을 뛰었더니 힘이 다 빠졌어요 선생님 오늘은 조금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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