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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피시 Jun 07. 2020

3. 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앵두와 이모

앵두 같은 삶이여, 다시 빛나라

    

추억을 심다.        

올봄 3만 원인가 주고 앵두나무를 한 그루 샀다.     


“당장 올해부터 앵두 맛을 볼 것이요.”    


노스트라다무스풍의 나무 가게 주인장은 미간을 모으며 대단한 예언처럼 중얼거렸다. 무릇 위대한 예언의 첫 조건은 ‘두루뭉술‘이란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뒤꼍에 나무를 옮겨 심자마자 새하얀 앵두꽃이 줄기를 뒤덮었고, 한 며칠 벌들이 붕붕거리더니 꽃 진 자리마다 열매가 꼬물꼬물 솟을 기미를 보였다. 일사천리였다.       


‘농사 벨 거 아니구먼.’     


나는 앵두의 새콤달콤한 맛을 알고 있으므로 나무 그림자만 봐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흘렸다. 시골집 앵두가 여물면 여지없이 “앵두 익음”을 통보해주는 엄마에게 올해는 “여기도 익음”을 교신하는 정겨움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앵두꽃이 지고 열매가 달릴 무렵 밤 기온이 심상치 않게 뚝뚝 떨어졌다. 계절이 봄에서 다시 겨울로 후진하는가, 덜컥 겁이 날 정도였다. 근심 어린 며칠을 보내자 과연 앵두는 냉해를 입어 꽃은 지고 열매는 맺지 않은,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어버렸다. 명료한 예언은 이렇듯 허무하기 마련이다.  

앵두 맛은 내년이나 기약해야 할까 보다, 농사 망친 섭섭함을 달래다 보니 처음 앵두를 맛보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배우 뺨치게 인물 좋던 종남이 셋째 이모도 생각났다.

 

종남이 이모      

그 날은 볕이 좋았다. 선득한 1970년대 중반, 어느 봄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된 잠에서 깨어 나른하게 의식이 돌아왔다. 이전에 내가 무엇이었고,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자아도, 언어도 없이 견뎌야 했던 유년의 기억상실에서 ‘띵-’하고 갑자기 총천연색 화면이 켜진 듯했다.  

처음 보인 것은 가난이 묻어나는 궁색한 천장 벽지의 둥그런 패턴이었다. 샹들리에를 닮은 무늬는 곧게 뻗다가 벽지 사이 이음새에서 조금씩 어긋나곤 했다. 반복되는 패턴은 불가항력인 악몽의 뫼비우스 띠 같았다. 

나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선반 위 말간 소주병에 담긴 ‘율미기’ 꽃뱀 술, 가루를 내 상처에 바르던 주술적인 갑오징어 뼈, 헐거워 비뚤어진 벽장문의 음습함, 벽장 안에 가득 찬 어둠이 품고 있을 씨레이션 깡통, 깡통에 담긴 흑설탕 반 꿀 반인 정체불명의 달달한 고체까지 차례차례 눈에 들어오거나 ‘인식’하게 되었다. 기억하지 못할 뿐 의식이 돌아오기 전에도 나를 둘러싼 어떤 친밀한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사랑은 정답게/ 주고받는 아름다운 이야기/ 활짝 핀 꽃처럼/ 피어나는 사랑스런 그 모습/ 사랑은 정답게/ 주고받는 아름다운 이야기/ 새하얀 솜처럼/ 피어나는 사랑스런 그 미소/ 마음에서 마음으로 꽃 피우고/ 두 마음은 정답게 정답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열매 맺고/ 두 마음은 정답게 정답게
                                                                         - 김씨네, 사랑의 이야기(1976)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랫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아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 윤승희, 제비처럼(1977) 

주황 칠이 벗겨진 마루 귀퉁이 전축에서 LP가 울퉁불퉁 소리를 냈다. 내 의식이 활성화되고 처음 귀에 들어온 노래,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 수십 년 세월이 흘러도 잊힐 기미조차 없는 노래. 나는 예쁜 종남이 이모가 나를 재워놓고 마실 나가며 틀어 놓은 노래라고 지레짐작했다. 당시 스물이 채 안 된 말괄량이 이모는 어쩌다 우리 집에서 함께 가난을 나누며 살게 되었을까.    

 

노래가 흐르는 봉당에서 계단 세 개를 내려서면 마당이었다. 싸리비질 자국이 선명한 공간의 절반은 서늘한 그늘이 차지하고 있다. 별채로 지은 광(곳간) 앞에는 누런 개가 널브러졌고, 호박벌의 붕붕 대는 날개가 마루 기둥에 자꾸만 부딪혀 피식 웃음이 났다. 

광에는 아버지의 파란 일제 혼다 90cc 오토바이가 들어있었다. 오후 해가 문풍지 바른 문짝을 통과하며 방바닥에 불분명한 네모를 그리는 동안 방은 여전히 시원했고, 나는 계속 혼자였다.  

두레박을 매단 우물 하나, 우물 바닥에 가재 한 마리, 사자 머리 문고리를 달고 벌겋게 녹슨 철 대문, 그 너머 누렇게 빛나는 잔등(고개, 또는 산봉우리의 방언)에 수줍은 그림자 두 개가 어른거린 기억이 난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생각했다.     


‘이모는 나를 두고 먼 서울로 시집가게 될까?’    



혼자였지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게 분명한 풍경이 퍽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 이 순간의 바로 전, 내 의식이 온전히 돌아오기 전,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했다. 도대체 이모는 나를 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앵두 같은 삶       

집 뒤꼍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 옆에는 살구나무가 있었다. 살구나무 옆 비탈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종남이 이모는 오후 해가 길게 늘어져 나른할 때쯤이면 나를 앞장 세워 앵두나무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누가 찾기 전까지 그곳에 머물며 오래오래 앵두를 따 먹었다. 빨간 앵두를 입에 넣고 혀로 씨를 밀어 발라 먹는 달콤 새콤함이란 너무나 황홀하여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미각 돌기에 영원한 부조로 박혀있다. 

앵두 씨를 멀리 뱉느라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쳐들 때마다 나는 하늘에 잠자리가 날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물오물 앵두를 먹다 말고 딴생각에 잠긴 종남이 이모가 영화배우가 되어 폼 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중에 내 집이 생기면 뒤꼍에 앵두를 심겠다는 생각도 했다.  


세월은 참, 착실하게 흘렀다. 어느새 쉰이 된 나는 시골에 11평짜리 집을 지었고, 소망대로 뒤꼍에 앵두나무를 심었다. 하얀 앵두꽃이 줄기 가득 피던 날은 종남이 이모가 생각나 앵두가 익걸랑 먹으러 올 수 있느냐고, 전화를 걸까 생각했다. 

내가 자는 동안 전축을 틀어놓고 마실을 나갔던 종남이 이모는 몇 년 뒤 생면부지의 남자와 선을 보고는 그냥 시집을 가버렸다. 서울 대처로 나간 이모는 알고 보니 무능한 노름쟁이던 남편 사이에서 아이 넷을 낳아 키웠다. 이모가 서울 상봉동 지하 단칸 셋방에서 복작거리며 살 때 이모를 만나러 갔던 기억이 난다. 마당 넓은 시골집을 놔두고 이모는 왜 이 빛도 들지 않고 복잡한 서울의 지하에서 힘겹게 살까, 어린 마음은 의아하기만 했다.

돌이켜보니 이모의 삶은 내 앵두나무를 닮았다. 희고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꽃처럼 환하게 웃던 빛나는 청춘이었는데.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이모는 몇 년 전 속이 텅 빈 채 헛헛한 껍데기만 두르고 혼자 낙향했다. 그 예쁘던 얼굴도 세월의 풍파를 맞아 조금 시들해졌다. 나는 이모에게 어떻게 살았는지는 묻지 않았고, 다만 잘 돌아왔다고, 이제 좀 편히 쉬라고 말해주었다. 이모는 고향 이웃 마을에서 챙 넓은 맥고모자를 쓰고, 어깨에 앵무새를 얹고, 풀피리를 불며 살고 있다. 

올해 앵두 농사는 망쳤지만, 내년 봄이면 다시 꽃이 피고 열매 맺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때 앵두가 익으면 먹으러 올 수 있느냐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내 앵두나무에 거는 기대처럼 이모의 삶에 다시 봄, 꽃, 열매가 돌아왔으면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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