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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대리 Feb 03. 2023

원룸 월세 탈출기 : 신축 오피스텔 이사

나의 두 번째 자취방, 전세로 업그레이드(?) 성공

첫 자취방이 최악이었던 상황이 오히려 좋았다, 고 이제야 생각한다. 처음 구한 방이 괜찮은 컨디션이었다면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며 타협하고 살고 있었을 테니까.


나의 두 번째 자취 보금자리는 마곡나루의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1년 8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7만 원짜리 비탈진 언덕에서 살다가 페인트도 안 마른 갓 준공한 신축 오피스텔에 전세로 들어갔으니, 성과라고 이름 붙일만하지 않은가.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있는 데다 더 이상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물바다가 되는 화장실에서 양치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집’에 산다는 기쁨이 찾아왔다.


방음도, 단열도 안 되는 열악한 생활환경은 젊다는 패기로 견딜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던 건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였다. 이런 집에 37만 원을 매달 내야 한다니, 돈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요즘처럼 고금리라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세로 사는 게 매달 고정 지출이 줄어드니 돈 관리에는 더 유리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는 목돈이 없으니 보증금 300만 원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전세를 목표로 돈을 열심히 모았다. 때마침 회사에 최대 4천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제도가 있었고, 내가 대출 신청하던 시기에는 무려 금리 0% 혜택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좋은 복지였다(사람들이 대기업, 대기업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마곡나루에 9천만 원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뜬금없이 왜 마곡나루냐고? 사실 회사는 2호선 을지로라인이라 처음에 마곡나루라는 지역은 내 고려 대상조차 아닌 곳이었다. 마곡나루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엉뚱하게도 회사 워크숍에서였다. 타 팀 사람들과 함께 단체 워크숍을 참여하게 됐는데 ‘서로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을 포스트잇으로 붙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내 초미의 관심사는 이사였기 때문에 ‘사회초년생 이사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지역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에 누군가가 마곡나루를 추천해 줬다. 분명 그 워크숍 프로그램을 짠 사람은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결하는 지식인 같은 시간을 기대한 건 아니었겠지만… 알아보니 회사가 있는 을지로와는 거리가 있지만  공항과 가까워서 출장 가기도 편했고, 서울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라 집값도 그리 높지 않은 시기기도 했다.


워크숍이 끝나고 돌아오는 주말에 바로 집을 알아보러 마곡나루로 향했다. 마곡나루를 추천한 사람은 이곳이 서울의 마지막 개발지역이라며, 신축 오피스텔이 많다고 했는데 과연 한창 공사 중인 오피스텔이 많았다. 부동산들을 돌며 가격을 알아봤는데, 건물을 올리고 있는 오피스텔 중 전세 1억짜리로 나온 매물이 있었다. 아직 공사 중이라 완공되고 나서 집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새 집인데 전세 1억이라고?!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하지만 내 수중에 있는 예산은 9천만 원. 최대한 절실하고 불쌍한 표정을 곁들여서 여러 번 볼 것 없이 당장 지금 롸잇 나우 계약할 테니 천만 원만 싸게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집주인도 투자 목적으로 오피스텔을 산 40대 부부여서 수월하게 9천만 원에 계약이 이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을 실제로 보지도 않고 그렇게 쿨거래하다니 겁도 없다 싶지만, 운 좋게 큰 하자도 없었고 전세 사기 같은 이슈도 없었다.


한 가지 문제는 2주간 집이 사라진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집의 다음 세입자가 바로 구해지는 바람에 입주 날짜 이전에 방을 빼게 된 것이다. 오피스텔은 아직 공사 중이라 당장 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말 그대로 2주간 떠돌이 신세가 돼버렸다. 내 몸뚱이 하나야 친구집이나 모텔에서 자면 됐지만 문제는 내 짐이었다. 다행히 1년 반 넘게 자취를 하며 큰 가구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짐이 별로 없었긴 했다. 그래서 2주 간 양해를 구하고 이전 집 앞에 신라면 박스들 몇 개를 쌓아두고 금~월에는 해외 주말 출장을 떠나고, 화-목에는 지인과 친척집에 캐리어를 들고 다니면서 2주간 집 없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2주 뒤 오피스텔 준공이 떨어지자마자 남의 집 앞에 쌓아둔 민폐 짐부터 부랴부랴 넣었다. 건물 자체가 공사 중이었으나, 떠돌이 생활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 싶었다. 한동안 인간 공기 청정기가 되어 페인트와 공사장 먼지와 나무 톱밥 냄새 맡으며 생활을 했다. 이사를 한 날 집 내부를 처음 봤는데(...) 이웃집 건물과 마주한 애매한 ‘벽 뷰’였다. 그래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쨍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모든 게 새것이었고, 무엇보다 월세가 나가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마곡나루에 전세를 구한 건 2016년. 부동산 공부 좀 해본 사람은 알 거다. 마곡나루는 유망했다. 내가 이사하고 2년 정도 지났을까, 맨날 크로스핏 하러 가는 공사장 길에 어느 순간 엄청 큰 호수가 들어와 있었다. 그게 바로 마곡 식물원이다. 일반열차만 정차하던 마곡나루 역에는 급행이 들어섰고, 9호선이 4량에서 6량이 되더니 공항철도까지 서기 시작했다. 2016년 말, 그 당시 마곡은 서울의 마지막 개발 지역이라며, 집을 보러 다닐 때 부동산에서는 여유가 되면 오피스텔이라도 매매해서 들어가라는 조언을 종종 들었다.

‘응, 난 안 믿어. 바보도 아니고 무슨 원룸 오피스텔을 사냐?’ 그때 나에겐(부동산에 대한 지식 0) 집을 살 거면 매수, 매도도 활발하고 가격방어가 잘 되는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여 있었다.


6-7년이 지난 지금, 당시 4억 대 주변 아파트들은 가뿐히 10억이 넘었고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다던 원룸 오피스텔마저도 수천만 원이 올랐다. 마곡에 전세로 살고 있을 게 아니라 돈을 어떻게든 더 보태 집을 샀어야 하는 시기였다는 게 이제야 보인다. 아직도 그 동네를 지나칠 때마다 속이 쓰리다. 요즘도 네이버 부동산 어플로 오피스텔 매매가를 검색해보곤 한다. 내가 사는 입지가 발전하고 있었는데 나는 2020년까지 무려 4년 동안 전세로만 살고 있었던 게 지금도 너무 후회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 결국 실수와 후회되는 경험들이 공공지원 민간임대나 청약과 같은 제도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동기부여이자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현명하게 실수 없이 했으면 좋겠지만 ^^ 후회만 하면 의미 없으니까, 더 나은 발판이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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