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런던에서 취업하기까지의 여정
2015년 8월, 런던을 도착해서는 처음 3개월 간 어학원을 다녔다. 어학원이 외국 생활에 필수가 아니긴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 쉴 틈 없이 일한 나는 직장인이 아닌 학생의 시간으로 돌아가 영어 공부를 하며 런던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학원을 등록했다.
어학원을 다니면서 당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던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페이스북 영국 워홀 페이지에 가입을 했는데, 그곳을 통해 런던에서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를 만났다. ‘아니, 취업 안된다며?’ 지난 편에서 이야기했던 영국 워홀 멘토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 친구도 워홀로 영국에 와서 디자이너로 취업한 사례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없다며, 자기의 취업 준비 경험과 현재 회사 생활 이야기를 나누어주며 자신의 경험이라도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간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오히려 나의 한계를 느꼈다. 내 영어 실력이 생각보다 너무 염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시간을 런던에서 보내면서 영어 때문에 소심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학 없이 워홀로 와서 디자이너로 취업한 사례를 보고, 물론 영어도 중요하나 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일단 실력으로 소통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학원에서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선생님들의 도움과 함께 디자이너 취업용 이력서도 준비를 했다.
‘나도 정말로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3개월의 어학원의 생활이 끝이 났고, 나는 그냥 집에서 취업 준비만 하고 지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서 영어도 더 연습하고 배울 기회를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서 일 거리를 찾아 나섰다. 어느새 시간은 11월이 되었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즌이나 많은 상점에서 풀타임으로 일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큰 쇼핑센터 안의 한 스파 브랜드의 가게에서 시즌제 풀타임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동시에 하루에 8시간 일하며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리테일 일은 쉽지 않았다. 오전 근무조가 되면 아침 7시까지 출근하거나, 오후 근무조가 되면 밤늦게 귀가했기 때문에 근무 스케줄에 따라 생활 패턴이 뒤죽 박죽이 되었다.
약 5년 간 컴퓨터 앞에서만 앉아서 일을 하던 직장인이었던 내가, 매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서 있거나 혹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일을 갑자기 하다 보니 몸이 너무 고되었다. 또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대부분 10대 후반 아니면 20대 초반이었는데, 이 젊은 친구들 사이에 껴서 내가 뭘 하는 건가, 싶어 현타가 오기도 했다. 당시 동료들 중에서는 한국 드라마 K-POP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친하게 대해 주었지만 나는 너무 영어도 많이 서툰 데다 그때 한참 ‘영어 공부해야 하니까 한국 TV는 보지 않을 거야!’ 하던 때라 이 친구들이 말하는 아이돌이라던지, 드라마라던지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몸은 고되고 정신은 가출을 했는데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 일하다 보니 런던의 워낙 비싼 물가 때문에 정작 계산을 해보면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정말 터무니없이 작기만 했다.
그렇게 이런 생활을 견디며 일을 한 주 동안 하다 보니, ‘디자이너로 정말 취업이 될까’ 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하던 내 멘탈 상태가 ‘아니다. 정말 취업을 해야겠다’로 바뀌었다.
당연히, 취업은 순탄치 않았다. 리크루팅 에이전시(인재가 필요한 회사를 클라이언트로 해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에이전시), 디자인 에이전시, 인하우스 프로덕트가 있는 회사 등 다양한 곳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가끔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더라도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고, 영어 능력이 너무 부족해서 내 경험의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헤매다 인터뷰를 끝내기도 했다.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은 종종 ‘이력서를 몇 곳에 제출하셨나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나는 항상 ‘기억도 안 날 만큼이요’라고 답한다. 정말로 수많은 곳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후, 그렇게 몇 주가 흘러 나는 결국 3개의 회사와 전화 인터뷰 이후의 단계를 밟아가게 되었다.
각 회사와의 진행 과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국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 면접 과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물론 회사마다 다르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인터뷰는 다음의 단계를 거친다. 폰 스크리닝은 대부분 인터뷰 과정의 첫 번째 스테이지를 담당하지만 나머지 단계는 회사마다 순서가 다를 수 있다.
폰 스크리닝 인터뷰(Phone Screening Interview, 전화 인터뷰): 회사의 인사채용 담당자 혹은 리쿠르팅 에이전시의 리크루터와의 전화를 하면서 지원한 회사와 롤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는 기회. 물론 지원자도 자신의 경험을 PR 하는 기회로 쓰인다.
매니저, 실무진 인터뷰(Panel or Stakeholder interview): 여러 단계롤 나누어서 자신의 매니저가 될 사람(대부분 이 사람들이 Hiring manager, 고용 담당자), 그리고 다른 실무진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원자의 스킬 셋 뿐만 아니라 회사 및 팀 문화와의 적합성도 하는 기회로 쓰여진다. 지원자에게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실무자들이 있는가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다.
디자인 스킬 테스트: 지원자의 디자인 스킬을 더 알아보기 위해 Portfolio presentation, Take home challenge, On-site design exercise, White board interview, Product/design critique 등 을 진행한다. 물론 이 모든 걸 한 회사에서 다 하는 건 아니고, 회사마다 이 중에 꼭 한 두 개 정도는 면접 과정에 넣는다.
대표 인터뷰(Leadership or CEO interview): 거의 대부분 인터뷰 마지막 스테이지에 지원자는 회사의 대표나, 그 단체의 보스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다시 내 취업 이야기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전화 인터뷰 이후의 단계로 넘어간 회사는 뉴스 플랫폼 회사였다. 이 회사는 폰 스크리닝 인터뷰 이후에 바로 디자인 과제(Take home design challenge)를 내주었다. 데드라인까지 과제를 해서 보냈는데 탈락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나 말고도 다른 지원자들이 많았어서 광탈당했다고 결과를 듣기까지 거의 2주의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로는 여성용품을 파는 스타트업 회사였다. 무려 케겔 운동을 트랙킹 하는 제품을 만든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회사 마케팅 자료와 제품과 연동된 앱을 디자인하고 유지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폰 스크리닝 인터뷰 이후 바로 회사로 와서 면접을 보자고 했는데, 인터뷰 당일 매니저와 실무진 인터뷰, 그리고 대표 인터뷰까지 모두 마쳤다. 대표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1시간 정도 On-site design exercise를 진행했는데 나 혼자 회의실에 앉아서 주어진 과제를 해내야 하는 단계였다.
세 번째로는 취미용품을 파는 이커머스 회사였다. 웹 서비스를 기반으로 해 온라인으로 뜨개질, 코바늘 관련 제품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ㅅ용자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다른 사용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는 회사였다. 역시 폰 스크리닝 인터뷰 이후, 회사로 가서 면접을 봤는데 당일에 매니저와 실무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함께 포트폴리오도 리뷰(Portfolio presentation)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에 진행된 Co-founder와 CEO 인터뷰(대표 인터뷰)에서는 문화 적합성에 관한 질문을 위주로 면접이 진행되었다.
오전 근무조로 일을 할 때에는 오후 2시 즈음이면 일이 끝나기 때문에 그날을 위주로 회사로 가는 면접 스케줄을 맞추었는데, 면접이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엄청나게 긴장을 한 상태로 일을 했다. 그러고 일이 끝나면 바로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면접을 보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그 시간에라도 어떻게든 인터뷰 연습을 해보겠다고 혼자서 중얼중얼,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러고 면접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긴장이 풀리자 너무 피곤해진 나머지 그냥 졸기만 바빴다. 런던 살이가 몇 개월 되지 않았던 때라 지하철 탈 때도 항상 긴장을 해서 ‘여기서 졸 수 없어!’ 하던 시기였는데, 그래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결국 머리를 꾸벅꾸벅 졸아댔다.
그렇게 몇 번의 면접이 끝나고, 또 다른 곳에 서류 넣고 연락을 기다리던 그런 반복되는 일상이 지나가던 어느 날, 나는 오후 늦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성용품을 파는 스타트업 회사의 디자인 매니저가 직접 연락을 해서 나에게 잡 오퍼를 주겠다며, 축하한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주방에서 저녁을 하고 있던, 당시 같이 살고 있던 집주인 아줌마에게 취업 소식을 전했는데 아줌마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내 소식을 축하해 주었다.
연락이 없을 때는 죽어도 없다가, 갑자기 연락이 한꺼번에 몰려오더라. 첫 오퍼를 받은 날 다음, 오전 근무조의 일을 끝내고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보이스 메시지가 한통 와 있었다. 쇼핑몰의 소음을 뒤로한 채 건물 구석에 서서 보이스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겠어, 잡 오퍼지. 이커머스 회사에서 잡 오퍼를 주겠다고 하는 연락이었다.
이렇게 취업 준비 한 달 반 만에, 크리스마스 2주 전에 꼭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회사의 규모와 하게 될 일, 그리고 연봉 등을 따져서 이커머스 회사의 오퍼를 수락했고, 나는 2016년 1월, 런던에서의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포지만 이 회사에서 무려 6년을 근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