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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미 Feb 27. 2024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심하다

양꼬치에 소주 한잔 하던 날이 나의 운명을 바꾸었다.

양꼬치가 나를 워홀 가게 만든 날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오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서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12년 하반기로 향해야 한다. 미아 삼거리(현재는 미아사거리)의 어느 양꼬치집. 일을 끝내고 사촌 언니와 함께 술 한잔을 걸치던 날이었다. 직장인 2년 차, 한국 나이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당시 사정상, 대학을 다닐 때 휴학 혹은 어학연수 한번 못 해 보고 바로 취업을 해야만 했던 내 처지에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세상에 화가 잔뜩 나 있었다는 게 정확할까.


출처: 구글 리뷰


내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촌언니는 할 말 못 할 말들을 써가며 신세 한탄을 하던 나를 보며 외국에서 자기가 돈 벌고 살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 같은 건 어떻냐고 했다.


물론 언니가 말하기 전에 워홀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나는 일본 워홀에 잠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어떻게든 빨리 대학을 졸업해서 가능한 경제적 독립을 하고자 했던, 아니다, 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워홀이라는 것 자체가 당시 나에게는 꼭 사치품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도 했으니 열심히 일해서 내가 직접 비행기 값, 그리고 초기 정착금 정도를 저축할 수만 있다면 외국에 가서 일하면서 돈도 벌고, 영미권 국가에서 영어도 배울 수 있는 그런 워홀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언니는 말했다.


나는 영어도 못하는 내가 무슨 외국을 가서 살아,라고 투덜거렸지만 이성적인 언니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했다. 첫 번째로는 내가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서 벌써 영어로 된 프로그램을 쓰고 있으니 다른 직업군 보다는 디자이너로써의 재취업이 비교적 쉬울 것 같다, 라는게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내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영미권에 더 맞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촌언니의 말에 솔깃해에 진 나는 언니의 친구가 일 년 간 봉사로 아일랜드를 다녀온 이야기를 덧붙히며 최근에는 유럽권에도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


양꼬치와 함께 소주 한잔을 기울이던 자리에서 우연하게도 나는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준비해서, 외국에서 새로운 도전과 삶을 경험할 수 있은 워킹 홀리데이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생긴 순간이었다.



영국 좀 가게 해주세요 제발


양꼬치집의 대화를 계기로 유럽 영어권 쪽의 워킹 홀리데이를 알아보다 당시 2012년 7월부터 시작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되었고, 그게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영국이다’, ‘영국 가는 거다’ 하는 생각이 머리에 꽂힌 순간부터 영국에 대해 관심을 쏟아 붓기 시작했는데, 당시 나는 영미권에 엄청 무지해서 영국과 미국이 영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미국 드라마와 영국 드라마의 구분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유명한 영드인 셜록, 스킨스,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정주행 하며 영국 영어와 영국 자체에 관심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뿐이겠는가. 나는 배우 톰 하디에 빠지고 Blur의 노래를 매일 같이 들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섭렵했고 미란다와 The IT Crowd를 보며 영국 유머에 깔깔 웃어젖혔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각색한 ITV의 TV 영화 '설득(Persuasion)' (2007).


하지만 이런 내 노력과 가슴 깊이 차오르는 영국 ‘뽕’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워홀로 오기까지는 이상하게도 쉽지 않았다. 무슨 이유 었는지, 어떤 운명이었는지는 몰라도 당첨으로 걸리는 영국 워홀에서 4번이나 떨어진 것이다. 2013년 상반기, 하반기, 그리고 2014년 상반기, 하반기. 다섯 번째 영국 워홀을 신청할 때에는 영국 말고, 이제는 정말 외국 어디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5번째, 2015년 상반기 영국워홀에 붙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2년 동안 워홀에 떨어지면서 돈도 모으고, 같은 직장을 4년 동안 다니면서 나온 퇴직금도 두둑이 챙겨 그 대부분을 워홀 생활 초기 정착금으로 쓸 수 있었다. 그동안 영국을 미디어로 접하면서 영국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고,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반복되면서 영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들어 영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근데 솔직히 4번 떨어진 건 심하지 않나? 사실 아직도 4번이나 영국 워홀을 떨어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근데, 취업은 아마 어려울 거예요.


워홀 붙기 전에 외교부가 주최하는 워홀 멘토링 워크숍에 참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워크숍은 각 나라 워홀을 다녀온 “멘토”가 그 나라의 워홀을 가고 싶은 “멘티”들에게 자기 경험을 공유하면서 멘토링을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자, 하는 취지에 만들어졌다. 2014년 즈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영국 워홀은 생긴 지 1-2년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경험담이나 정보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수준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영국 워홀을 다녀온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이 워크숍에 많은 기대를 하고 참여를 했다.


워크숍에 참가한 영국 워홀 멘토는 대학 휴학을 하고 영국 워홀 비자로 런던에 거주했다고 했다. 그는 리테일에서 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물가가 너무 비싸서 일을 하면서 돈을 거의 모을 수는 없지만 항공 교통의 요지인 런던이라 다른 유럽 국가에 쉽게 여행을 많이 갈 수 있어서 좋았다는 점을 주로 이야기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발표했다.


워크숍 후반 즈음에는 멘토와 멘티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질문과 답변을 하는 세션이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영국에서 다시 디자이너로 취업 가능성에 대한 궁금점이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오피스 잡을 영국 워홀을 통해 구했다는 사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직접 런던에 있었던 멘티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영국 워홀 멘토는 언어의 장벽을 이유로 서비스직인 리테일이나 호스피탈리티 잡은 런던에서 구하기 쉽겠으나 오피스 잡 취업은 힘들지 않겠느냐 식으로 답변을 했다.


디자이너로써의 경력을 영국에서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이날을 기준으로 수정이 되었다. 그 워크숍을 참석했던 멘토와 나의 사정이 굉장히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그 부분에는 완전히 눈이 멀어버린 채 나는 당시 워홀러들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그 영국 워홀을 다녀온 경험자의 말을 그냥 그대로 믿었버렸던 것이다.


영국에서 디자이너로써의 재취업을 희망했던 나의 영국 워홀 계획은 ‘30살이 되기 전에 외국에서 살아보기’와 ‘영어 배우기’로 수정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2015년 8월, 영국 워홀 비자를 들고 런던으로 출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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