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무당 화림과 봉길은 LA에서 대를 잇는 아들에게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한 한국계 집안의 장손, 지용으로부터 거액의 의뢰를 받는다. 화림은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대한민국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을 끌어들여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묘를 찾은 상덕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라 평가하며 자칫 잘못 건드리면 사람이 상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상덕은 제안을 거절하려 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겨우 파묘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 비에 화장을 미루기로 한다.
겨우 인맥을 동원해 한 병원 안치실에 관을 통째로 맡긴 일행은 영근만 남고 각자 볼일을 하러 자리를 비운다. 장례식장 관리소장은 식사라도 하고 오라며 영근을 내보내고, 그 사이 관리소장은 관 뚜껑을 열어버린다.
그렇게 열리지 말아야 할 관이 열리면서 원혼이 세상에 나오게 되고, 지용의 아버지부터 지용까지 해코지 당한다. 이제 원혼은 지용의 아들에게 향하고, 상덕은 국내에 있는 유일한 유족인 지용의 고모를 설득해 서둘러 관을 통째로 화장한다.
상황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지만, 파묘 당시 일꾼 중 한 명이 동티(금기된 행위로 귀신을 노하게 하여 얻는 재앙)가 난 것을 안 상덕은 일꾼의 부탁으로 그가 죽인 뱀의 치성을 들여주려 다시 묘를 찾게 되고, 그곳에서 더 험한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
지난 2월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이라는 한국의 전통적인 민간신앙을 소재로 한 독특한 오컬트 장르 영화다.
장재현 감독은 앞서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의 오컬트 영화를 연출, 도합 약 8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오컬트 영화가 주류로 평가받지 못하던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오컬트 전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가 ‘한국식 오컬트’로 만든 세 번째 장편 연출작 파묘는 우리나라 오컬트 영화 최초의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장식했다.
흥행뿐 아니라 평가도 좋은데, 뛰어난 영화적 완성도와 한국식 오컬트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남자 신인연기상을 차지한 김고은과 이도현 외에도 연기력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최민식, 유해진 등의 극의 흐름과 분위기에 마치 빙의하듯 꼭 맞아떨어지는 탁월한 연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지용을 구하기 위해 상덕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의 혼란스러운 상황, 정말 신들린 듯한 김고은의 연기를 중심으로 리얼하고 현장감 있게 그려낸 굿 장면과 긴장감 넘치는 원혼, 정령과의 주술 싸움, 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하고 공포감을 자아내는 ‘험한 것’의 압도감, 여인의 머리를 한 뱀의 등장 등 예기치 못하게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영화 특유의 몇몇 장면들까지 우리도 자세히 모르는 전통 무속신앙과 익숙한 공표영화의 문법이 적절히 어우러진 다양한 장면들이 훌륭한 영화적 재미를 만든다.
무속신앙을 매개로 그려진 민족의 비극
이 영화는 오컬트 영화인 동시에 철저한 반일 영화로 읽힌다. 정작 감독은 이 영화가 반일 등 정치적 의도록 해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아픈 역사적 상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영화는 다양한 배경과 이야기의 굴곡을 보여주지만, 핵심은 한국과 일본의 전통 무속신앙의 대결로 압축된다. 그리고 한국의 무속신앙이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과 달리, 일본의 주술은 노골적으로 불순한 의도를 담은 사술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영화 ‘한산’에서 임진왜란을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일컬은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오컬트를 만들기 위한 소재로 무속신앙이 쓰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기 위해 감독이 가장 잘하는 오컬트의 틀이 활용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
영화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거대한 쇠말뚝을 백두대간에 박았다는 일제의 만행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쇠말뚝이 아닌, 주술에 걸린 정령으로 대체되면서 오컬트로 변모한다.
정령은 형체가 없는 영혼이 아니라, 사람에게 물리적인 위력을 가할 수 있는 일종의 괴물과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 사람을 해치고, 봉길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는다.
이 부분에서 빙의, 저주 등의 비물리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에서 비롯된 공포를 기대한 이들 중 실망한 이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설정은 일제의 만행과 우리가 겪은 역사가 단순히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고 상처를 남긴 실질적인 폭력과 위력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모든 상황이 끝난 뒤에도 상처 부위에 피가 배어 나오는 상덕, 굿을 하다 힘들어하며 트라우마를 겪는 화림의 모습은 우리가 겪은 비극이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에게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상처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친일파였던 지용의 조부가 악지에 묻혀 분노만 남은 원혼이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묫자리를 봐준 이는 뛰어난 지관으로 이름난 일본의 스님이었다.
때문에 지용뿐 아니라 상덕과 영근, 화림과 봉길까지 친일파인 그가 왜 악지에 묻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일파였던 자신이 남긴 재산으로 미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자손들에게 원혼은 말한다.
"여긴 젖과 꿀이 흐르는구나.
이 애비는 춥고 배고프단다."
친일파로서 부와 안락을 누렸지만, 실은 그 역시도 일제 입장에서는 그들의 야욕을 위해 이용한 한국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대적할 엄두도 못낼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정령에 맞서 화림과 함께 무속을 익힌 동료들이 힘을 모으고, 자연의 이치를 읽는 풍수사 상덕의 기지가 더해져 결국 승리하는 결말은 국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일제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끝까지 저항하고 끝내 독립을 이뤄낸 우리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설정과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전말이 무엇인지, 그 비극의 시작과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정치적 유불리와 세력화를 위해 일제 치하의 아픈 기억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안의 갈등을 키우고 되새기기보다 이런 역사가 있게 한 분명한 적의 존재를 보다 명확히 인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