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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Dec 04. 2024

예상과 기대를 배신하는 스토리의 폭주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학교에서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생 오지수. 성적도 나쁘지 않고, 특별한 사고도 없지만 친구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조용한 학생이다. 하지만 그런 오지수에게는 한 가지 충격적인 비밀이 있다. 학교 밖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남성들의 조건만남을 알선하고 경호하는 사실상 포주로서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돌아가신 어머니, 도박빚에 빠져 가정은 나몰라라 하는 아버지로 인해 혼자 생활을 책임져야 했던 지수는 오로지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학원비와 생활비, 그리고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이런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한편 배규리는 오지수와 반대인 전형적인 학교의 인싸이더로, 부유한 사업가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여학생. 그러나 배규리 역시 부모의 강압과 지나친 기대에 자살을 시도하고 도벽 증상을 보일만큼 심리적 상처를 안고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담임 선생님이 운영하는 사회문화 동아리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규리가 지수의 영업용 핸드폰을 훔치고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기묘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특히 지수가 모아둔 돈을 규리로 인해 아버지가 훔쳐 달아나게 되면서 사업 기반을 잃어버린 지수는 좌절하게 되고, 새로운 일탈을 꿈꾸던 규리는 지원금과 함께 겨우 지수를 꼬드겨 사업 파트너로 합류하게 된다. 


규리는 성매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고, 이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불러오며 모두에게 큰 위험을 가져온다.



2020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인간수업’의 줄거리다. 인간수업은 ‘개와 늑대의 시간’ 등을 연출한 김진민 감독 연출에 신예 작가 진한새가 각본을 맡은 작품으로, 김동희, 박주현, 정다빈 등 신선하고 젊은 배우들이 학생 역의 주요 배역을 맡고 있다. 


‘스카이 캐슬’, ‘이태원 클라스’ 등에서 얼굴을 알린 김동희나, 모 아이스크림 브랜드 광고에 출연해 어려서부터 아이스크림 소녀로 이름을 날렸던 정다빈,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배역으로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이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은 박주현 등 기존에 어느 정도 눈에 익거나 새로운 배우들이 전과 다른 파격적인 역할과 스토리에 녹아들면서 극의 신선함을 더한다.


이 작품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런 신선함이다. 연출을 맡은 김진민 감독은 드라마를 제작하던 과정에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었나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드라마의 소재 또한 여태껏 우리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설정이 돋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캐스팅의 낯설면서도 신선한 조합 역시 이런 드라마만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메가 히트작이 등장하기 전, 인간수업은 한국판 좀비물이라는 독특하고도 훌륭한 장르물 ‘킹덤’과 함께 넷플릭스,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매 회 등장하는 예상 밖의 변수와 사고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과 시청욕구를 자극하는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인간수업은 그러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특징을 가장 신선하고도 강력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악함에 놀라고, 영악함을 비웃는 변수에 또 한 번 놀라다


우리는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많은 경우 내심 주인공이 잡히지 않길 바라며 보다 매력적으로 사건을 끌고 가길 기대한다. 똑똑하고 영악한 주인공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수업의 지수는 그런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다. 일단 치밀하게 범죄를 꾸밀 정도로 영악하다. 게다가 평소에는 바보같을 정도로 조용하고 순둥이지만, 사실은 범죄자라는 반전매력, 그리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꾼다는 개인사는 은근히 심리적 동조와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규리는 톡톡 튀는 매력과 함께 지수와는 다른 걷잡을 수 없는 충동과 폭주, 그리고 반대로 그때그때 상황에서는 영악하면서도 침착하고 냉철하게 대응하는 기묘한 캐릭터로서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다음 상황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캐릭터다.   


영악한 두 소년 소녀가 만들어가는 기묘하고 특이한 상황, 스토리는 캐릭터에 대한 감탄을 넘어 작품 자체에 대한 감탄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영악함을 가볍게 비웃는 수많은 변수들이다. 


이들은 상황을 통제하고 계획을 완수하고 싶어하지만, 그리고 그러기 위해 그들의 영악함을 십분 발휘에 만반의 조치를 취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쩌다 조직폭력배를 건드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기 위해 임기응변을 하지만 지수가 계획했던 평범한 삶을 무너뜨릴만큼 일은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이 작품은 지수와 규리,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밖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사정과 독특한 캐릭터성은 두 사람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극을 몰고간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안타까워하고, 긴장감을 느끼며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스토리의 흥미진진한 폭주가 주는 마력에 감탄한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연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우연의 반복은 무책임하고 진부한 전개를 낳기 마련이었다. 그 부분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수업은 많은 우연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우연들이 이어지는 과정은 치밀하고, 속도는 빠르다. 마구 펼쳐져 있던 이야기의 실마리들이 치밀한 우연으로 엮이며 정신없이 상황을 변주한다. 우연의 진부함이 끼어들만한 느슨함을 허락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전개로 폭주하며 시청자들을 옭아매는 특별한 드라마. 인간수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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