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난 그때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은 훌라후프를 돌리는 방향 뿐- 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의 그런 우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직장이 공기업이었던 터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
사립초등학교에 운 좋게 추첨으로 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조금 부족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친구들은 나를 둘렀싸고는 <김 방부제>를 가져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왜 먹지 말라고 하는지 알아? 너무 맛있어서 그래.
그러자 자리에 앉아있던 선생님께서 빠르게 달려와서는 나를 끌고가
수돗가에서 입에 손을 넣고 방부제를 토하게 하시면서
애들이 그런다고 정말 먹으면 어떡하니? 왜 그런 말을 믿니??
라고 하시면서 울먹이셨다.
그렇게 애들은 나에게 먹으면 온 몸에서 향기가 난다며 '고무향수'도 먹였다.
아, 물론 내가 먹은 거지...
선생님은 빠르게 달려왔으나 식탐이 있었던 나는,
한알씩 먹어보는게 아니라 입에 털어넣었기 때문에 다시 수돗가로 끌려가곤 했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연락해서 이 상황을 이야기했다.
내가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다고 너무 순수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방부제나 고무향수를 먹인 아이들을 혼내셨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이렇게 방언한다.
먹으라고 했다고 정말 먹는게 어딨어요!
그렇게 반에서 띨빵 이미지가 굳어가던 중.
89년이라는 시기는 초1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간고사 4과목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놀랍게도! 단 1개만을 틀렸다. (심지어 기말고사는 한개도 틀리지 않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충격은 나에게 방부제와 고무향수를 먹인 아이들이
선물을 들고 줄을 서서는 선물을 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다.
여기서의 방점은 '이제' 라는 부분이다.
우리엄마가 이제 너랑 친하게 지내래~
곧 교내콩쿨이 열리기 시작했다.
음대로 유명한 재단의 교수님까지 와서 총 4명이 채점을 하는 그런 꽤 큰 규모의 교내콩쿨로 전교생은 무조건 하나를 나가야 했었고, 나는 한달째 잘 안되고 있지만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기에 피아노를 선택했다.
나의 시험성적을 알고 엄마에게 잘 해주시던 분들은 엄마에게 교육 팁을 주었다.
<학원에 보내지 말고 개인교습을 해봐> 그리고 엄마는 2달 남은 시점에서 개인교습으로 교체했고, 선생님은
나에게 절대음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폐 아이들은 청각에 예민하여 약 11%의 아이들이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0.5%의 비율이다. 내 아이도 절대음감이 있다.)
나의 1개월 째 피아노 실력은 어땠냐면,
바이올린 특활에서 늘 거드름을 피우며 친구들에게 '비켜봐!'를 시전하며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던 친구에게
'비켜봐!' 라고 하고 나서는 한손으로 '나비야'를 치던 실력이었다.
그런데 나는 2달만에 교내콩쿨에서 모짜르트 소나타 5번 1악장을 쳐서 예선에서 합격을 하고
10명 남짓을 뽑는 본선 진출자 중 남들보다 훨씬 긴 5페이지짜리 곡을 치고는 장려상을 받았다.
나의 본선진출 곡은 모짜르트 소나타 10번 1악장이었다.
잘 안되는 트릴 부분은 하루에 100번씩 하다......
연필로 100번을 표시하다 화가 머리꼭대기 까지 나서 벅벅 책을 뚫고,
눈물 콧물 흘리며 선생님한테 혼나고 세운 자로 맞았던 기억이 난다.
콩쿨에서 교수님은 오늘 가장 긴 곡을 친 친구는 곡만 짧았어도 상을 탔을 거라며, 천부적인 아이라 꼭 피아노를 시켜야 한다고 부모님께 연락하셨다.
심사 끝나고도 그 말을 하셨어서 나는 유명해졌다.
다들 짜맞춘듯 전부 광고곡으로 유명한 모짜르트 소나타 16번 1악장을 쳤기 때문이다. 그 곡은 내 곡의 절반 정도 되는 분량이었고 난이도도 훨씬 낮았다.
사립학교는 무서운게, 띨빵이던 나는 갑자기 놀라운 아이가 되어있었고 우리 엄마는 (띨빵인줄 알았던 애를) 도대체 어떻게 키우냐, 교재는 뭐 쓰냐, 책은 뭐 읽냐 등등의 전화를 사립초등학교 엄마들로 부터 받기 시작했다. 무리에 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왜 그랬니?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지? 이 말의 의미는 뭐지?
역시 나는 이런 말을 듣고도 받아쓰기 밀려쓰는 것은 한결 같았으며,
급하게 하다 실수는 하는 일들도 잦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때는 그만하라고 뜯어말려도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 역시 계속 되었다.
그때 나에게 그 동안 왜 그랬냐고 물었던 말을 이해하던 시점은, 내 아이에 대해서 내가 똑같은 마음을 가졌을 때였다.
어떤 날은 자폐 2급같고 어떤 날은 3급 같던 내 아이가
병원마다 아스퍼거다, 정상 지능이다, 멀쩡하게 초등학교 다닐 거다. 지능이 높은 거 같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검사 전까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말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도 잘 못해서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나게 하던 아이가,
6세부터 갑자기 우주 개념과 물리적 법칙에 대해서 묻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파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아이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근데 너, 그 동안 왜 그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