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순한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나는 나의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들을 상당히 많이 기억한다.
어떻게 그때를 기억해요? 라고 물을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억이 다 나는 것을 어떡해.
살았던 집의 호수, 구조, 세입자, 그때 있었던 일, 입었던 교복의 디테일, 우리집의 내부를 떠올리라고 하면 다 할 수 있다.
또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을 말해보라고 해도 특정 시점, 기억에 남는 날은 그날의 공기까지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까 들은 영어단어를 지금 다 말해보라고 하면 그런 것은 안된다. 내가 특별히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그대로 기억할 수 있다)
나는 83년생이다.
그 시절에는 '빠른'생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1,2월 생들은 한살 일찍 유치원과 학교를 가곤 했다.
난 성당 유치원을 다녔다.
거기서는 5월에 '달란트'라는 것을 주며 부모님의 선물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게임에서 달란트를 많이 딸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순발력 있는 게임은 영 안되던 터라
나는 기본적으로 주는 달란트만 받았다.
생각을 해보니 이 달란트는 어차피 하나만 살 수 있는데, 엄마 아빠 두 사람 것을 사줄 수 없다면
나를 위해 고생을 하는 엄마 것만 제대로 사자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아주 일반적인 생각 아닌가??)
문제는 그 다음인데
나는 엄마를 생각하며...........<고무장갑>을 골랐다.
왜냐면 엄마는 평소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무장갑은 사려면 비싸게도 생겼기 때문에 나는 이게 가장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골라갔다.
브랜드도 기억난다. 마미손.
어버이날 카드와 함께 주자 엄마는 벙찐 얼굴로 물었다.
이게 엄마 고생한다고 주는 선물이야...?
너 정말 매일 설거지 하는 엄마한테 이걸 선물이라고 주고 싶었어??
그리고 엄마는 우리딸은 고무장갑을 선물이라고 가져왔다면서
큰 전화기로 이모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애는 진짜 특이하다고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8살이 되던 때,
내 동생이 같은 유치원에서 6세가 되었고, 동생은 같은 달란트로 엄마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사왔다.
엄마는 울먹울먹 하더니... 아빠는 꽃을 사주지 않는다면서
엄마 마음을 알아줬다고 너무 감동해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선물의 정의를.
선물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선물이란?
(1)갖고는 싶지만 자기 돈은 아까워서 못사는 것
(2)그 사람이 사기엔 비싸서 내가 사줬을 때 효과가 있는 것
이렇게 한가지 실패를 하면 그것을 분석해서 머리에 탑재를 하고 그만큼만 써먹을 수 있었다.
모든 정보는 로직트리 형태로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로직트리를 따로 배우고 깜짝 놀랐다.
그럼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단 말야???
엄마 아빠는 학교 행사에서 저 멀리 어떤 아이가 오물조물 잼잼 조물조물 잼잼을 못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이그..저 집 부모는 속이 타겠네.'
그리고 그 아이는 뒤를 돌아봤다. 나 였다.
그리고 그 둘은 그날 '그러니까 학교 한살 늦게 보내자고 했잖아!!' 로 서로 언성을 높였다.
나는 신체적으로 굼뜬 편이었다.
그 사립학교는 겨울에 일찍부터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피겨와 롱스케이트(스피드 스케이팅)을 했는데 나는 여자아이라고 부모님께서 피겨를 신청했다.
피겨는 (1)앞으로 가기, (2)앞으로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서 가기 (3)뒤로 가기, (4)뒤로 원을 그리면서 가기, (5)한발씩 들고 가기, (6)한 바퀴 돌기-로 구성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젠장!! 앞으로 가기와 원을 그리면서 가기 이후부터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혼자 빙글빙글 돌거나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나 A래!!" 하면서 크게 외치고는 기뻐하는 얼굴로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나도 선생님한테 물어봤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면서 F라고 해주었는데, 난 알파벳을 몰랐었다.
그 아이처럼 나도 크게 "엄마, 나 F래!!" 라고 외치며 엄마에게 갔지만,
엄마는 조용히 하라고 했다.
엄마는 계주에서 내가 늘 꼴지를 하는 것도 모자라 뒤에 팀의 전원이 나를 앞서고 나서도 한참 뒤에 들어오는 나를 한심해 했다. 열심히 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나는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뛰면서 바통을 교환하거나 하는 것들이 정말 어려웠다.
대다수 놓치거나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바통을 받았으므로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매스게임을 하면 계속 못 따라가는 것도,
팔 다리 머리 팔목 발목을 를 동시에 움직이는 댄스라는 것이 머리에서부터 잘 시뮬레이션이 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것도,
피아노를 치면서 "응!"라는 단순한 말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것도 -
이게 아스퍼거 상당수가 가진 <신체협응력>의 문제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