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들, 여행이 허락하는 자유로움 등이 한몫 했겠지만, 유난히 좋았던 날씨도 꽤나 많은 영향을 미쳤었다. 39도에서 40도까지 오르는 날도 며칠 있긴 했지만, 운이 좋게도 대부분의 날은 비도 거의 안 내리고 화창했다.
그러나 대개 영상매체를 통해 접하는 독일의 날씨는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짧고 흐린 날도 많아서 뭐랄까, 밝다기보단 칙칙하게 다가올 때가 많은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고 하고, 그 때문에 독일에서 살아가는 한국 유학생들이 날씨 때문에도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종종 접해왔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 바라보자면, 그런 칙칙하고 흐린 이미지가 독일이라는 나라에 더 걸맞아 보인다.
영화 <베를린, 아이 러브 유> 에 나오는 베를린의 이미지 역시 그렇게 다가온다. 비단 날씨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더 그 이미지를 확고히 해주는 데 이바지 하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10개 남짓한 단편이야기들을 보여주는데 대부분 하나같이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에 유쾌하지 않은 배경이다. 베를린에 가보지 않은 어떤 이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다고 한다면, 영화 자체가 주는 분위기에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을 형성시키게 할까 걱정이 들 정도다. 이 영화는 그렇게 칙칙하다.
그런데 모두 다른 종류의 칙칙함이다. 영화에 나오는 단편이야기들 말이다. 각기 다른 형태로,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누군가에겐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이미 겪어본 이야기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약간의 거부감도 느껴질 수 있을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일 수도 있고, 내가 이미 겪어본 삶일 수도 있으며,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삶이지만, 그런 형태의 삶도 있는 것이다. 그런 '타인의 삶'도 있는 것이다.
작년 7월, 베를린에 갔을 때 조금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이 있었다.
'Das 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의 추모비이다.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 근처에 위치해 있는 이 추모비들을 당시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하게 되었었다. 여행을 오기 전 여행정보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추모비의 존재만 인지하고 있었지 정확한 위치는 몰랐었는데, 파리저광장 쪽으로 가는 길에 희한하게 생긴 돌덩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돌덩이는 그냥 돌덩이인데, 그것들이 뜬금없이 그 자리에 놓여져 있는 게 희한했던 것 같다. 그만큼 처음 봤을 때 상당히 위화감을 느껴서 돌덩이들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 추모비라는 걸 인지하기까지 좀 오래 걸렸던 것 같다.
학살된 유럽 유대인들의 추모비, 베를린
처음에는 비석 사이사이를 돌아다녀 보다, 통로가 좁아 계속 코너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힐까 신경쓰며 다녀야 하는 게 불편해, 가장 끝 비석으로 가 위에 걸터앉은 후 조금 오래 이 비석무리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찍었던 사진이 이 사진이다. 그 당시에 나는 여행을 하면서 정말 마음에 들거나, 무언가 와닿는 게 있을 때만 사진을 찍고자 했었는데, 앨범을 무분별하고 복잡한 상태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찍은 사진들이 하나하나 나만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나중에 다시 사진을 쳐다봤을 때도 상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느꼈던 감정은, 먹먹함이었다. 잿빛 비석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뭔가 먹먹했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근데 이제와서 보니 그 먹먹함은 아무래도, 정말 많고 다양한 형태의 삶들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고 이제는 똑같은 잿빛 비석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는 데서 기인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비석들이 모두 서로 다른 높이와 서로 다른 너비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이 그 먹먹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던 것 같다.
이 비석들을 바라봤을 때와, 영화 <베를린, 아이 러브 유> 를 보고 난 뒤의 내 감정은 서로 정반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는 겉으로는 하나같이 칙칙하고 어두워 보이는 삶들이 가까이 들여다보면 형형색색으로 서로 다르지 아니한가 했는데, 베를린에서 봤던 추모비를 생각하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다른 형태의 삶들이 학살을 당하고 결국엔 똑같이 칙칙한 잿빛의 비석들로만 남게 되었다는 게 말이다.
두 감정이 처음엔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사고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새 정반대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둘 다 형형색색의 칙칙함인데,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그 종류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다 종종 2년 뒤 독일에 오를 유학길을 생각하곤 한다.
여전히 독일어 공부가 1순위이긴 하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유학하며 지낼 도시를 정하는 일인데, 베를린은 언제나 고려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베를린이기 때문이다.
유학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가끔은 쓸데없는 걱정들도 들곤 한다. 그러고는 다시 스스로를 다잡는다. 시간도 한참 남았는데 쓸데없이 걱정이나 하냐고. 물론 그 걱정들은 계속 떠오를 거다. 유학을 가기 전에도, 가서도.
타국에서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겠지. 그때가 되어서 걱정이 들고 외롭고 할 때면 이 영화 속 인상깊었던 두 문장을 회상해 보아야겠다.
· 베를린은 새 출발하기 좋은 곳이잖아요.
· 그치만 때로는...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해요. 투명인간 취급도 받고요. 하지만 그럴 때 주변을 둘러보면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