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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ug 15. 2021

에필로그

<작당모의(作黨謨議) 1기를 마무리하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본편보다 ‘메이킹 필름’이 더 재미있을 때가 많습니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케미를 확인할 수도 있고 또 궁금했던 씬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래서 ‘작당모의’ 1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작가님 4분을 모시고, 주제에 대한 글감을 어떻게 얻었는지, 또 16편의 작품을 마무리한 심정과 후일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인터뷰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작가님들은 과연 작문 주제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으셨나요

   쉽지 않은 주제였을 것 같은데요     


소운 작가님)      

  주제 글쓰기는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단서가 있어야 수사가 빨리 진행되는 것과 같이 관련 글감이 떠오르면 글은 비교적 쉽게 써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난감했죠. 그러나 어차피 글쓰기는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최면을 걸며 주제에 맞는 글감 찾기에 골몰했던 것 같아요.

  첫 주제인 ‘교정’은 주제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함께 만드는 매거진의 ‘첫 글’이라는 점에서 부담감은 배가 되었어요. 다른 작가들과 비교되어 내 글의 단점이 확연히 도드라질 것을 생각하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어요. 벌건 대낮에도 한숨을 폭폭 내쉬었던 것 같네요.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의 경우는 제목만큼이나 상큼한 글을 써보리라 생각했었는데 단편소설이라는 글 형식을 바꾸면서 경쾌한 글이 되지 못했어요. 글의 내용과 단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아이디어에 기댄 글이었어요.

  ‘심수봉’ 주제는 다른 작가들의 나이를 생각할 때 내가 가장 유리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주제라 생각되었지만, 지금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문제였어요. 흘러간 옛 노래와 이야기를 꼰대 같지 않게, 귀에 때려 박히는 랩처럼 쉽게!

     

진샤 작가님)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를 쓰는 주간에, 장염으로 고생했어요. 그런데 실은, 장염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무얼 써야 할지 난감했어요. 다른 분들은 소설도 쓰고 하는데, 에세이 하나 겨우 쓰는 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쓸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또 에세이를 겨우 써냈어요. 글을 쓰고 처음으로 부끄러웠던 순간이었어요.

  ‘장마’도 실은, 에세이였어요. 임팩트가 적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고역이었죠. 매거진에서만큼은 소위 ‘한 방’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이딴 글이나 쓰고 있다니. 마침 주위의 몇몇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소설’을 써보라고 했어요. 3일을 고민하자, 갑자기 소설이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어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내 인생 첫 소설이 장마처럼 온 때였어요. 매거진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에요.      


진우 작가님)      

  ‘교정’,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장마’ 모두 재미있는 주제였지만, 그중에서 ‘장마’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일과 겹쳐 갑자기 바빠진 탓에 발행 일자를 착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그전까지만 해도 서너 가지 버전을 써두고 여유롭게 고르는 여유를 즐겼는데, 장마 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주제는 아무래도 첫 발제였던 ‘교정’이었습니다. 엄마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초이스 작가님)     

   첫 번째 주제인 ‘교정’은 제게 너무 어려운 주제였어요. 예전에 PD 시험 준비할 때처럼 혼자 종이 위에 이것저것 끼적이고 X를 치면서 소거법으로 하나하나씩 제거해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신혼부부’ 때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고, 그 웃픈 이야기를 들려주면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석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지! 어쩌다 앉아서 싸게 되었는지! 사생활을 너무 공개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상기한 개인적 목표가 있었기에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주제인 ‘장마’는 가장 어두운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두 주제가 ‘나’ 안에 있는 심경의 변화를 테마로 담았다면, ‘장마’는 ‘나’와 ‘외부’의 싸움을 한 번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순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년 6개월을 떠올렸고 울분에 차서인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어요. 다만 아쉬운 건, 솔직하다 못해 너무 노골적이다 보니 너무 1차원적인 감정만 앞세운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이 쓰신 ‘장마’를 보면서 ‘너무 쉽게 썼구나~’ 뒤늦게 후회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주제인 ‘심수봉’도 어려웠어요. 왜냐면 본편에서 썼듯 그녀와 나는 접점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주위 사람을 찾았고 결국 14년 전 세상을 떠난, 제 ‘엄니’였던 미연 누나를 떠올렸지요. 글에는 적지 않았지만 가끔 미연 누나 부모님 뵐 때마다 희미하게 웃는 어머님 얼굴에서 누나를 발견하게 돼요. 그때마다 기분이 묘해져요. 누나가 하늘에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내가 아직도 누나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2) 그러면 혹시 브런치에 올라온 댓글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초이스 작가님)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좋은 점은 내 글을 상대방이 어떻게 읽었는가! 댓글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비판보다는 칭찬이 주를 이루고, 날카로운 지적보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더 많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댓글을 보면서 본인의 글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은 3번째 작문 주제에서 ‘이십 대 초반 꽃 같은 청춘을 거의 대가 없이 국가에 바치는 남자들의 노고와 아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작가님의 이런 글이 그들이나 작가님 스스로에게 뭉클한 위안이 되어줄 것 같아요.’라고 쓰신 사비나 작가님 댓글이었어요. 제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를 단 세 줄로 명징하게 요약해주셨거든요.

       

진샤 작가님)     

  제 지인의 80%가 아는 사실, ‘심수봉’에서 글쓰기 인생 역대급 위기가 왔었다는 것이에요. 진짜 며칠을 울고 싶었어요. 제가 쓸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쓸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고 써버렸어요. 엉망진창 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해 주셨어요. 역시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 글에서 한 작가님이 해준 말이 그간의 수고를 싹 잊게 해 주었어요. ‘이게 글이죠, 작가님. 진솔함은 진샤 님을 못 따라갑니다.’ 지금껏 써온 글 중에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솔함으로 가득한 글이 진짜라고 힘을 가득 실어 주었어요. 그래서, 매거진 하길 잘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우 작가님)      

  기억에 남는 댓글은 ‘문우가 되어 주어서 고맙다’라는 것입니다. 매거진에 참여한 나름의 역할을 다했구나 싶어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독자들의 공감과 격려, 응원도 잊지 못할 감사의 대상입니다. 지칠 때마다 그 댓글들을 다시 열어 봅니다.

     

소운 작가님)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었고 쉬운 일이 없었어요. 그러나 함께 가야 하고, 모로 가도 가야 하는 글쓰기였기에 하나씩 조금씩 이끌리는 대로 따라갔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쓰다 보니 장마에 대한 나의 글을 읽고 ‘비 멍을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건 비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나올 것 같은 글’이라고 공감해주신 ‘공감의 기술’ 작가님의 댓글도 받아보게 되었어요. 글과, 비와, 나와, 읽는 사람과 혼연일체라는 단어와 연결시켜보니 글을 쓴다는 일이 이렇게나 감동스러운 일인지 느끼게 되었어요.          


3) 평소에 글 쓸 때 어떤 마음으로 쓰시나요

   그리고 1기를 끝낸 소감에 대해 할 말씀 하신다면?     


진우 작가님)      

  스스로 쓸 수 있어 행복했고, 주어진 글제를 소화해 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적당한 긴장이 전에 없던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내가 알아서, 내 마음대로 해야지 하는 방식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배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던져주는 숙제를 하게 되니 그동안 잊고 있던 ‘겸손’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재미’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재미’란 웃음, 기쁨, 슬픔, 분노로 표현되는 ‘공감’입니다. 앞으로도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을 쓰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소운 작가님)      

  ‘그래,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살기 위해 쓴다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가 쓴 글로 인해 사람과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지면 되는 것이었어요.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요?

  “나, 여기 잘 살아 있어요.”라고 시그널을 보내면 “저도 여기 잘 살고 있어요.”라고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잘 살아 보아요, 행복합시다.”라고 함께 말할 수 있는 것.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작당모의’ 매거진을 하며 진샤, 진우, 초이스 작가님에게 느낀 애틋함이라 할 수 있겠네요. 깊이 애정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초이스 작가님)     

  이번 4편은 에세이로 써봤어요. 평소에 소설을 주로 써왔기에 과연 이런 주제를 내가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자!’라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가 그랬죠. 자기 자신에 대해 글 쓰는 건 맑은 강물에 막대기를 넣고 휘저어서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정말 그랬던 것 같아요. ‘군대 이야기’를 쓸 때면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고, ‘미연 누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심수봉’ 노래 들으며 가슴으로 울었거든요. 때론 감정의 소요 속에서 때론 한 없이 떨어지는 추락 앞에 투명한 채로, 그렇게 키보드에 천천히 손가락을 옮겼어요. 그 결과 ‘결국 나는 내 선택의 누적분이다!’라는 지리하면서도 단순한 명제 앞에서, 몸의 감각기관은 짜릿하게 활성화되는 역설적인 기분을 느끼게 되었네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써보는 건, 자기 몸을 관찰하는 것만큼 두렵고 생경한 일이지만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꼭 해봐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비록 4편밖에 안 쓰고 잠시 떠나게 되었지만 이번 ‘작당모의’를 통해서 너무도 좋은 작가님들 만나서 행복했고 또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진샤 작가님)     

  지금까지, 글을 쉽게만 생각했어요. 글은 술술 쓰였고, 술술 읽혔으며 쉽고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매거진과 함께 하는 이들은, 나의 경박한 글쓰기에 꽤나 무거운 추를 달아 주었어요. 진중한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 알려 주었어요. 글이 가져야 하는 것들, 글 쓰는 마음이 가져야 하는 것들을 알게 해 주었어요. 

  이제는 글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진 듯도 해요. 나의 글을 수차례 '교정'하게 되었고, 새로운 '메시지'를 내면에서 끊임없이 찾으려 하며, 글이 '장마'처럼 쏟아져도 경솔해지지 않을 것이며 ‘심수봉’ 주제를 대할 때의 곤혹을 잊지 않으려 항상 노력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 과정의 가운데에 소운과 진우와 초이스라는 이름들이 있어요. 문우라는 단어보다 좀 더 크고 소중한 이름들이 있어요.      





<초이스님께서 구성, 편집하신 글입니다.> 




<작당모의> 1기를 함께 즐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기부터는 초이스님께서 현업 관계로 휴식을 가지시고, '민현' 작가님께서 함께 하실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illycoffee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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