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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l 29. 2021

백만 송이 피우려다 망했습니다

< 작당모의(作黨謨議) 4차 문제(文題) : 심수봉 >

매거진 발행작가: 진샤(https://brunch.co.kr/@1kmhkmh1/158)



  보이시나요. 흐드러진 꽃들이.

  백만 송이가 무엇인가요, 천만 송이도 훨씬 넘었을 것이에요.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결국 해냈어요. 백만 송이가 훨씬 넘는 꽃을 피우는 일을요.

  당신이 보내주신 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있어 해낼 수 있었어요.      


  사랑을 주고 오라 하셨지요. 제 안에서 끊임없이 솟는 사랑의 출처, 그곳이 당신임을 잘 알고 있었어요. 멈추지 않는 사랑을 쉬지 않고 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래서 저를 잃어갔어요. 저는 사랑의 우물일 뿐 사랑일 수 없었어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면 당신의 뜻대로 꽃은 피어났어요. 왜일까요. 꽃이 필수록 어쩐지 아름다운 내 별나라는 멀어지는 기분이었어요.

  나는 보았어요, 진실한 사랑이 흘리는 괴로운 눈물을. 이곳에서 진실한 사랑은 늘, 괴로운 눈물과 하나였어요. 당신은 어찌 사랑에 눈물을, 그것도 괴로운 눈물이 함께 하도록 했나요. 괴로운 눈물을 앞뒤에 두고 사랑이 피어나도록 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어요.

  아낌없이 사랑을 주면서, 그 사랑으로 울어야 하는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 땅의 다른 이름은 ‘이별’이라는 것을. 사랑과 눈물 사이에 이별이 있다는 것을. 꽃이 피어나는 만큼 눈물도 흐드러지게 핀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어요. 왜 당신이 이곳에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오라고 했는지를. 이곳은 헤어져 간 사람이 많은 너무나 슬픈 세상이기에, 그저 사랑을 주는 누군가, 어떤 존재가 필요했던 겁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사랑보다 더 큰 눈물이 이곳을 뒤덮기 시작했어요. 두려웠습니다. 백만 송이는 피지도 못한 채 사랑의 꽃들이 눈물에 잠기려 했어요.      

  

  당신은 어찌, 이런 곳에 저를 가라 하신 건가요. 아름다운 내 별나라를 두고 왜 이런 곳에서 사랑을 꽃을 피우라 하신 건가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라 했건만, 고백하건대 당신이 미워지려 해서 그리할 수 없었어요.      

  사랑에 미움이 묻어나자 꽃은 피어나지 않았어요. 미움이 묻어있는 이상 그것은 사랑일 수 없었어요. 내게서 솟아나는 게 사랑인지 미움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내 별 나라를 그리워하기만 했어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어요. 빛으로 나타난 사랑, 그가 나를 안았고 나를 일으켰어요. 그는 자신이 품고 온 생명을 다 주었어요.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당신인 동시에 당신이 보낸 이라는 것을. 쓰러져 있는 저를 보고 당신은, 당신인 동시에 그인 존재를 보내준 것이었어요. 저는 다시 저의 할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

백만 송이 꽃을 피우는, 나의 사명.



여기까지 쓰고, 아이들 하원을 나갔다. 날씨가 텁텁하다. 내 글 같다. 억지로, 겨우, 꾸역꾸역 써내기는 했다. 이제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린 인연인데
 그대와 나 함께라면 더욱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된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쓰고 싶었던 주제 '아가페적인 사랑'을 꽃피울 부분이다. 젠장. 망삘이 슬슬 올라온다. 아가페는커녕 '믿음'이라곤 30여 년 전 친구 따라 달란트 받을 때나 입 밖에 내뱉던 나였다. 보란 듯이, 꽤나 그럴싸하게 삼위일체(三位一體)를 노랫말에 녹여내고 싶었으나,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이건 조선반도의 삼천오백만 그리스도인과 천주교도인(미래에 태어날 신앙인 포함)을 능멸하는 글이 될 게 뻔했다. 믿음도 없는 주제 어디 감히!

  하아, '심수봉' 발행할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하원길인데 쓰러질 듯이 덥다. 마음도 답답한데, 날 더워서 쓰러졌다고 하고 발행하지 말까. (쓰러졌다 하면 믿을 사람이.... 확신자 0명일 게 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심수봉'에 대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주제 글쓰기를 약 1년간 해왔다. 주제 글쓰기는 재미있었고 자신 있었다. 무슨 주제든 글감이 넘쳐 났다. 이거로도 쓰고 싶고 저거로도 쓰고 싶은 경우가 허다했다. 휴, 다 재미있게 써낼 자신이 있는데, 꼭 하나만 써야 해?

  그래서, 공동 매거진을 시작할 때도 자신만만했다. 어떤 주제라도 써내지 못할 글은 없었다. 브런치계의 나폴레옹 뽑기 대회가 있었다면 탑쓰리 안에 들었을 것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으니까.'

  나의 주제는 '교정'이었다. 치아교정으로 한 번은 쓰고 싶었다. 초작가님의 주제는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였다. 흠, 쉽지 않지만 쓸 수 있어, 난 뭐든지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소작가님은 '장마'를 내놓으셨다. 앗, 저 장마 시를 썼었는대요.. 뭐, 상관없습니다, 뭐든 써내지요, 까짓 거, 어려울 것 없습니다. 진작가님께서 '심수봉'이라고 하셨다. 심 왓? 수봉쓰? 난관이 예상되지만, 닥치면 뭐든 쓰겠지요. 이래 봬도 브런치계의 나폴레옹입니다.

  그게 약 50일 전이었다. 50일, 내 앞에 주어진 무궁무진한 시간. 신나게 이 글도 쓰고 저 글도 쓰고 시도 쓰고 가당치 않게 소설도 써 보았다. 어느새 발행일이 가까워지는데, 아니 심수봉은 왜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는 거야? 닥치면 쓸 텐데, 닥쳤는데 왜 쓰질 못하는 거야?

  문우들께 SOS를 쳤다.

  초작가님: 저도 아직 생각이 없어요.(그렇지요? 저만 이런 거 아니지요?)

  소작가님: 진샤는 노래도 잘 모르니 그럴 것인데.. 노래 가사를 풀어보면 어떨까? 얽힌 이야기나 노래 들으며 성장한 세대는 아니니 ㅎㅎ

  역시 배우신 분이다. '백만 송이 장미'의 화자를 고민하며, 윗부분까지 써놓고 난 후였다. '실은 그러고 있어요'라고 하자, '작두 탄다' 하시는 말씀에 진짜 작두 타시게 될까 봐 냉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심수봉에 살짝 반기를 들자, '심수봉 아니면 조용필 하지 뭐'하는 70년대생 작가님께 더 발끈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부유한 80년대에 태어난 게 죄로구나, 싶었다. 심수봉 아니면 조용필이라... '도 아니면 빽도'인데, 어차피 쓸 거리 없긴 마찬가지니 '못 먹어도 고'였다.

  108번쯤은 후회했다. 포르테 디 콰트로에 대한 나의 덕심을 표현할 기회가, '조용필'에는 있었다. 애정 하는 '포르테 디 콰트로'가 조용필의 '도시의 오페라'를 다시 부른 것을 1일3청(들을 청聽)하고 있는 중이었다.


포디콰는 사랑입니다


  포디콰 노래는 폰에 50곡 이상 있었지만, 심수봉은 딱 하나였다. '백만 송이 장미'. 랜덤으로 재생될 때면 늘 스킵했다.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구슬픈 목소리를 듣노라면 마음이 가라앉아서 싫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있었지만, 옥주현의 목소리였다. 슬픈 느낌의 원곡보다 차라리 끈적한 카사노바풍의 리메이크가 더 좋았다.

  이쯤 되면 심수봉을 글제로 낸 이를 흉볼 차례다. 찾아가서 꿀밤을 때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사실 스트레스의 크기를 감안하면 꿀밤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머리카락도 빠지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멱살을 잡아야 하나, 찜 쪄먹을까 쌈 싸 먹을까. 재밌는 글쓰기 하자고 시작한 매거진에, 애셋 키우기도 정신없고 힘들구먼,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스트레스의 절정의 날엔 '심수봉으로 글을 술술 쓰는 꿈'까지 꾸었다. 에라이!


  '심수봉' 글쓰기의 의식의 흐름을 좇아보면 이러하다.

  어렸을 때 친정엄마가 심수봉을 보면 늘 '못생겼는데 노래는 잘해'라고 했다. 흠, 외모와 노래 실력의 상관관계라.. 그렇게 써볼까. 김영하와 이슬아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인격 모독 아니 신격 모독으로 고소당할 것 같다. 이건 패스.

  2차 소설 도전! '심수봉'이란 이름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사. 심수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자꾸 심수봉 노래를 하다가 어느새 심수봉처럼 부르게 된다, 가수가 된다?! 이거 어디서 보던 흐름인데? 큰바위얼굴 어니스트! 아, 그럼 이거 말고 '심수봉'이란 이름의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개명기! 개명한 이름은 심사임. 아... 어디서 냄새가 난다. 망작의 썩은 냄새. 신사임?! 오, 그럼 신수봉으로? 아니, 문제는 심수봉인데, 왠 신수봉? 우리나라 성이 이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쓸까? 하아, 애들 저녁거리나 고민하자, 패스.

  소설에 미련이 남는다. 어느 붕괴 사고 현장에서 갑자기 심수봉의 노래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들으려 필사의 힘을 다해 사고 현장을 탈출한다. 마지막 탈출자가 심수봉 노래의 주인공이었으나,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언론에서 '미스 언노운'이라며 그녀를 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그녀는 지방 9급 공무원, 이름은 옥소리였다. 어느 순간 시장이 되더니, '사람을 살리는 목소리, 나라를 살리는 옥소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우고 대통령 후보에 이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각사각..쓱쓱. 초작가님 팬들이 표절로 고소장 쓰는 소리임이 분명하다. 나여!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다 때려치우고 발행일 날 몸이나 아프고 입원이나 하자'라며 드라마나 보았다. 거기서 운명을 느낄 줄이야. '나의 아저씨'를 보는데, 뜬금없이 흘러나온 저음의 '백만 송이 장미'! 검색을 하니 포레스텔라 고우림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심수봉의 열쇠가 내 손에 주어지는가! 나의 유일한 저장 곡도 이 곡, 고민 중에 듣게 된 곡도 이 곡! 하늘에 계신 분이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이 노래로 글을 쓰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꼬박 3일을,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럴수록 미워하는 마음이 커져 갔다. 글 앞에서 솔직할 수 없었다. 글이 써지지 않았고, 쓴 글은 꼴도 보기 싫었다. 글에서 악취가 났다. 신성해야 할 글 앞에서 실성할 지경이었다. 시간은 잘도 가고, 쓰이지 않는 글을 팽개쳐두고 브런치나 들락거렸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방을 기웃거렸다.

  어쩜 이리 술술 읽히게 쓰시지. 어쩜 이리 재미있게 쓰시지. 나는 그 비결을 알고 있었다. 그건 쓰는 이의 삶의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쓴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함에 무력해진 채, 나는 다시 터덜터덜 나의 글로 돌아왔다.

   

"작가님 글은 힘이 있어요.",
"작가님 글은 술술 읽혀요.",
"작가님 글은 거침이 없어요."


  댓글로 가장 많이 듣는, 칭찬에 가까운 말씀들이다. 감사하다. 내가 이런 말들을 많이 듣는 이유 또한 잘 알고 있다. 나의 글 대부분은, 경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쓴 결과물들이다. 그래서 쓰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나의 과거의 일, 경험을 쓰고 깨달은 바를 적었다. 읽는 이들이 예쁜 시선과 마음으로 봐주었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 서로 간의 호흡법이었다. 글은 그렇게, 쓰는 이의 마음을 읽는 이가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

  그 까닭에 지금까지 글쓰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글쓰기의 유난한 어려움이 낯설었다. '심수봉' 도대체 나의 인생에 지금까지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그녀가, 이제 와서 나를 왜 이리도 괴롭히는가.



  유레카. 한순간 답을 찾았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엇도 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심수봉이란 가수에 대해, 그녀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그 어떤 경험도 감정도 없었기에 나는 '심수봉' 앞에서 건조하게 서 있다가 갈사(暍死)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자만도 한 몫했다. 기껏해야 40년도 채 살지 못한 인생에 무어 그리 쓸 것이 많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댔는지. 내 넘치는 글감들 보러 놀러 오세요, 여태껏 소리 지른 목을 꺾어버리고 싶어 졌다. 그러면서 70대의 글들을 '고리타분하다'고 훑고 넘어갔다. 20대의 글들을 '덜 익었다'며 라이킷이나 던져 주고 넘어갔다. 겨우 40년도 못 채운 주제. 심수봉 앞에서 더위 먹은 손가락을 펴지도 못하는 주제.


  다시 브런치를 둘러봤다. '경마장'으로 쓴 글이 보였다. 나는 감히 못 쓸 글이었다. 경마장에 대한 어떤 경험도 추억도 감정도 없는 인생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기가 아르바이트를 해 봤는데, 정말 재미있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이 한 줄로 끝이다. '영어', 영어는 한 두 꼭지 써낼 수 있으나 작가님처럼 책으로 낼 만한 생은 못 되었다. '육아', 육아는 좀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 '책', '홈스쿨링', '비건' 이런 수식어들이 앞에 붙으면 나는 졸렬한 엄마이자 작가가 되어 버린다.

  이쯤에서 무거운 깨달음을 받아 들게 되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세계가 얼마나 작단 말인가. '세계'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애셋 엄마일 뿐이었다. 좁고 가느다란 인생을 걸어오느라 약간의 수고를 한 일개 아줌마일 뿐이었다. 그래서 '심수봉' 앞에서 휘청거리고 아득해하고 있었다. 낯선 글제 앞에서 남 탓이나 하고 핑곗거리나 찾는 데 열을 올리며 여름의 태양을 원망하며 지냈다.






  고백하건대, 이 글은 '심수봉' 글쓰기에 실패했음을 처절하게 인정하는 글이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랍시고 밝히자면, '심수봉 글쓰기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글'을 떠올린 건 성공했다는 것이다.

  올림픽 출전 선수에 대한 댓글이 떠오른다. 졌잘싸. 혼자 '졌잘싸'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시커멓게 밀려오는 패배감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진짜로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패배감마저도 받아 들고 아껴줘야 하는 것 또한 '나'라는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 이는 내 글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이런 책임마저 없으면, 지난 날 내 글에 배어 있는 뻔뻔한 자만에 질식할 것만 같다.  

  앞으로 한동안은 피하게 될 것 같은 노래의 구절을 끄적이며, 이 못나도록 솔직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샤는 글로 백만송이 피우는 데 실패했지만, 노랫말 주인공은 백만송이 피워내고 그립고 아름다운 그 곳으로 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백만 송이 장미

(원곡 라트비아 가요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 , 심수봉 작사, 1997)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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