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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19. 2021

나보다 2살 많은 엄니~

< 작당모의(作黨謨議) 4차 문제(文題) : 심수봉 >

브런치북 발행 규칙상 '작당모의'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제(진샤) 이름으로 재발행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 발행작가: 초이스(https://brunch.co.kr/@williams8201/69)



https://www.youtube.com/watch?v=8UtdKwKTk4k&t=1061s

노래 들으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광주로 내려가는 길, 차창 밖으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라디오에서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누군가 감성에 젖은 청취자가 신청곡 보냈나 보다.    

 

 “이거 부른 사람이 누구였더라? 심...”

 “심수봉!! 그것도 몰라?” 뒷자리에 앉은 아내가 핀잔을 준다.

  아! 맞다~ 순간 생각이 안 났다. 하긴 트로트를 잘 모르니까. 최근 트로트 열풍에 삼삼오오 모여 모두 그 이야기 할 때면 나는 애꿎은 볼만 긁었다. 룸미러를 보니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마음에 드는지 딸 현서는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 누나가 참 좋아했었는데..”

 “미연 언니?”

 “응. 울 엄니가.”          






  울 엄니, 미연 누나랑 나랑은 20년 전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다. ‘국제 정치 학회’라는 다소 현학적인 타이틀의 학회였는데 ‘학문’에 전혀 뜻이 없었지만, 형과 누나들이 맛난 거 사준다고 꼬셔서 거기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똑똑한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상주의, 현실주의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학자 이름이 다 나오고, 칠판에 세계지도 그리며 설명하는 학형까지 있었다. 내 지적 수준으로는 버거웠다. 그래서 때려치울까 싶다가도 세미나 끝나고 이어지는 뒤풀이가 너무 재미있어서 함부로 관둘 수도 없었다.           

 똑똑해서 좋겠수다!!          


  다들 ‘투머치 토커’여서 목에 핏대 드러날 정도로 논쟁을 펼쳤는데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계속 하품만 해댔다. 그때였다. 뿌연 시야 너머로 반대편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하마처럼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하고 있었다. 미연 누나, 나보다 2학번 높은 선배였다. 누나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살짝 민망해했다.

 ‘괜찮아요. 나도 똑같은 걸요.’

 그런 의미로 나는 손으로 입 가리지 않고 마치 MGM 로고에 있는 사자처럼 다소 과장되게 하품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나는 깔깔깔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게 아마 우리의 첫 만남이었을 거다.  



  


  2학년이 되자 나는 ‘비교 정치학’이라는 다소 따분한 수업을 들었는데 강의실에 가보니 미연누나가 있었다. 반가웠다. 누나는 촤!! (대학 때 내 별명은 ‘촤’였다. 그 이유는 다음에) 이러면서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렇게 한 학기 내내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나도 수업 태도 별로인데 (수업이 재미없으면 낙서하거나 딴생각했다) 누나는 나보다 더 심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산소가 부족한 건지 붕어처럼 연신 뻐끔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처박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머리가 바닥에 때구루루 구르기 전에 나는 누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면 누나는 음냐음냐~ 이러면서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아냈고, 교수님은 그런 나와 누나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원래는 내가 먼저 와서 미리 자리를 맡아놓는데 (보통 제일 뒷자리였다) 그날따라 누나가 먼저 와있는 거다. 고개 숙인 채 책을 열심히 보고 있기에 예습이라고 하나 싶었는데...

 “누나! 뭐해?”

 “어! 우리 촤!~ 촤 왔어?”

 이러면서 고개를 드는 누나 얼굴은 시뻘겋게 익어있었다. 뭐지? 관운장도 아니고. 그때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났다.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어휴~ 누나 얼마나 마신 거야?”

 “흐흐... 빼갈 2병밖에 안 먹었다. 하하하”

 ‘수업 괜찮겠어?’ 말하려는데 벨이 울렸고 조교와 교수님이 들어왔다.     



  


   살면서 그렇게 불편한 수업은 난생 처음이었다. 누나는 많이 취했는지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는데 그럴 때마다 꼬릿꼬릿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위 학생들은 ‘이게 무슨 냄새야?’라고 계속 손을 휘저었고, 누나는 ‘신장개업 풍선’처럼 자꾸 바닥에 키스하려고 했다. 나는 흔들리는 누나의 어깨를 잡아 계속 자리에 앉혔다. 수업에 집중하는 건 사치였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수업 시간에 애정 행각 좀 그만 하지?”

보다 못한 교수님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마 상체를 흔드는 우리 모습이 미국 하이틴 드라마에 나오는 불량커플처럼 보였나 보다.

 “아... 죄송해요.” 고개 조아리면서 눈을 찔끔 감을 때 옆에서 누나는 입을 열었다.

 “교수님! 얘 제 남친 아닌데요. 제 아들이에요. 아들~ 하하”          


   잠시 후, 누나와 나는 둘 다 수업에서 쫓겨났다. 고딩 때도 복도에 나와본 적 없는데...

 테이프라도 있으면 누나 입 미리 막아놓을 걸~ 뒤늦게 후회되었다.  

 “이게 뭐야! 누나.”

 “하하하 미안. 촤. 그런 의미로 누나랑 술 마실래?”

 그렇게 말하는 누나가 마냥 미워보이진 않았다. “콜!!” 하면서 나가려는 그때

 “촤~ 앞으로 너 내 아들 해라. 알겠지?”

 누나는 내 어깨를 붙잡고 그렇게 말했다. 으이구~ 이 인간~ 주사도 가지가지네. 술 깨면 오늘 일 다 까먹겠지? 싶었지만, 그다음부터 누나는 날 ‘아들~’이라고 불렀다.


   덕분에 나는 나보다 2살 많은 엄마를 갖게 되었다.      



    




  광주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차가 막혀서 5시간 넘게 걸렸다. 요한형, 은정 누나, 성국이는 이미 식당에 와 있었다. 우리는 떡갈비 집에서 맛난 점심을 같이 먹고, 차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빗줄기가 너무 거세서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는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야속하게 바라봤다.


 “그냥 거기로 갈까?” 요한 형이 말했다.

 “네 그러시죠. 누나~ 아버님께 전화드렸어?”

 “아니. 미리 전화하면 나오실까 봐. 도착해서 말씀드리자.”

 “그래. 꽃이라도 사갈까?”

 “됐어. 이미 많을 걸.” 아내의 말에 성국이가 답했다.

 “알았어. 그럼 거기서 봐.”

 그렇게 다들 비를 피해서 각자의 차로 흩어졌다. 나와 아내, 딸이 탄 차가 먼저 출발했고 곧바로 차 2대가 따라왔다.          






  약속대로 누나는 내 ‘엄니’가 된 다음 맛있는 걸 많이 사줬다. 그리고 ‘할멈’이라는 혜경 누나를 소개해줬고 그렇게 나는 패밀리에 합류했다. (나중에 아내와 성국이가 들어와 8명으로 늘었다) 근데 정말 신기한 게 미연 누나는 그렇게 수업 시간에 졸고 평소에도 푼수끼  철철 넘치면서도, 학점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받았다. 거의 모든 과목이 A+였다. 누나는 농담조로 자기가 ‘천재’라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그게 진짜였구나! 싶었다. 하긴 가끔 누나랑 이야기하다 보면 반짝 거리는 뭔가가 분명 있었다.     


  결국 자타공인 ‘천재’ 누나는 S사 물산에 입사했다. 남미에 가서 회의를 하고 유럽에서 무역을 한다고 했다.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예전만큼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중요한 해외 수주 프로젝트가 있어서 잠도 아껴서 잔다고 했다. 조금 멀리 있어도 자주 보지 못해도 나는 늘 마음으로 누나를 응원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아들~ 밥 먹자!”

  안 그래도 연락 한번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거의 2달 만에 듣는 목소리라 반가웠다. 학생인 내가 분당까지 가도 되는데 누나가 신촌으로 온다고 했다.

 “왜?”

 “나 휴직했어.”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떠들었다. 누나는 그동안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잠시 휴직한다고 했다. 쉬는 동안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닐 거라고 했다. 지쳐서 그런가! 전보다는 확실히 차분해진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의 왈가닥 모습으로 점점 돌아왔다. 누나는 소개팅해달라고 졸랐고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형들 얼굴을 한 명씩 보여줬다. 허나 ‘도리도리 잼잼’의 연속이었다. 누나가 이렇게 ‘얼빠’인 줄 미처 몰랐는데..


  2차로 어디 갈까? 하다가 누나가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노래방에 가서 내가 랩이랑 발라드 고르는 동안 누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트로트를 선곡했다.


 “요즘 노래 몰라?”

 “엉. 난 예전 노래가 좋더라!”

 그러면서 누나는 <남행열차>와 <흑산도 처자>, 그리고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근데~ 이런... 살면서 나만큼 노래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음치에다가 심각한 박치였다. 게다가 얼마나 뻔뻔한 지 2절까지 다 불렀다. S물산에서 어떻게 버티었을까? 거기도 분명 회식할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누나는 “아들~ 앵콜!! 앵콜!!”하면서 커다란 앞니를 드러내고 신나게 불렀다. 

          

 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철없이 사랑인 줄 알았었네.

 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질퍽했다. 딸까지 데려갈까 하다가 경사가 높아서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아내랑 나랑 번갈아 올라가기로 했다. 반쯤 올랐을까? 전에 못 보던 보라색 꽃이 보였다. 다가가서 시선을 마주치니 뒤에서 요한 형이 말했다.



 “아마 친척들이 심었나 봐.”

 “아~ 그렇구나!”

  바뀐 게 많지 않았지만 매번 올 때마다 느낌은 색달랐다. 누군가의 손길, 그리고 온기가 제대로 느껴졌다. 은은한 꽃향기, 코끝에 감도는 부엽토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열심히 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하자 은정 누나는 핸드폰을 꺼내 미연 누나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아버님. 오랜만이에요. 저희 화순에 왔어요.”

 “아따 왔능가~ 미리 말을 허지 그랬냐잉”

 “아니에요. 비도 오고 그래서.”

 “말을 혔다면 밥이라도 같이 혔을 거인디.”

 “괜찮아요. 이미 맛나게 먹었어요. 아버님. 며칠 전에 왔다 가셨어요?”

 “응? 응. 그라지.”

 “언니가 예쁘게 잘 있어서요.”


 그 사이 요한 형과 나는 미연 누나에게 다가갔다. 성국이는 누나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올려놓았다.

 “엄니~ 나 또 왔수다. 그동안 잘 있었어?”


 누나는 언제나 맑게 갠 얼굴로 우릴 반겨주었다.

2007년 4월 5일. 27살, 그때 그 모습으로...     




고 안미연의 묘






 노래방에 가고 정확하게 일주일 뒤였다. 자고 있는데 요한 형에게 연락이 왔다.

 “촤! 미연이 쓰러졌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만우절도 지났는데. 서둘러 아내(그때는 여자 친구)와 같이 삼성 의료원으로 달려갔다. 미리 나온 요한 형이 우리에게 병실을 가리켰다. 안에 들어가자 산소 호흡기를 쓴 누나가 보였다. 몇 시간 째 의식이 없다고 했다. 뒷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있었고 가느다랗게 뜬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일주일 전에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던 사람이, 밥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 왜 저기에 누워있지? 침대에 있는 사람은 누나가 아니라 누나 닮은 인형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급성 뇌출혈이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다들 오랜 과로 때문에 몸에 무리가 왔고 그래서 이런 변이 생겼다고 추측했다.

 “누나... 누나....”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두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나는 미친 듯이 흐느꼈다. 아내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자기가 이러면 누나가 힘낼 수가 없잖아.”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누나... 부탁이에요.”     


 하지만 내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틀 후 누나는 검은 문을 열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27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였다. 

 그날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욕조에 몸 담그고 눈을 감았다. 물결을 타고 수조를 돌고 도는 열대어처럼 나는 버겁게 울음을 토해냈다. 중력은 그대론데 분명 나 홀로 하늘을 지고 있었다.    






   누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4년이 넘었다. 매년은 아니지만 그래도 4월이 되면 우리 패밀리들은 이곳을 찾는다. 올 때마다 우리는 누나 곁에 도란도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는 딸 현서가 코로나 때문에 학교 못 갔다는 것과 은정 누나가 회사에서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나는 우리 이야기를 말없이 재미있게 들어줬다.


 “누나~ 지낼만해요? 거기는 코로나 없지?”

 “거기서도 술 먹고 또 용트림하는 거 아니지?”

 이렇게 놀리면서 우리는 누나에 대한 추억 하나하나씩 꺼내본다.     


 살다 보면 각인처럼 선명한 순간들이 있다.      

수업 듣다가 쫓겨나는 우리의 모습

서로 하품하다가 시선 마주치며 깔깔깔 웃던 누나의 모습

A+ 맞았다고 어깨 으슥하던 모습

노래방에서 트로트 열창하던 모습까지.        

  

  좁은 하관으로 하회탈처럼 웃던 누나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고 또 그립다.

 “왜 이렇게 빨리 떠났어요?”

 하지만 누나는 대답이 없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발에 젖은 안경이 귤빛으로 산란될 뿐이다.     


   이제 나는 누나의 나이를 훌쩍 지나 9살 딸을 둔 아빠가 되었다. 예전에는 올 때마다 눈물 흘렸는데 이제는 별로 그렇지도 않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감정이 무디어진다는 거? 아니면 참을성이 많아진다는 거?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은 채 주변을 정리하고 묘 한번 쓰다듬을 뿐이다.    

 

   우산 위로 비가 후두두둑 떨어진다.

 “엄니~ 내년에 봐용.”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나는 아내와 교대를 한다. 아내 손을 잡은 딸이 질퍽질퍽한 땅을 딛고 열심히 올라간다. 넘어지면 안 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본다. 멀리서 아내와 딸에게 이리 오라고 손 흔드는 성국이의 모습이 보인다.


  정자의 처마 끝에 서서 우산 끝으로 물웅덩이를 쿡쿡 찌른다. 연분홍색 하늘을 푸른 어둠이 빠른 속도로 메워가고 있었고 저 멀리 한줄기 길고 검은 새떼의 행렬이 보인다.

 ‘까치일까? 까마귀일까?

누나가 사는 세상은 우리와 비슷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예전 누나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박치는 아니지만 음치인 게 이때는 좋다.           


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

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사람

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

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줄까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     






사진출처: 픽사베이 및 초이스 본인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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