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당모의(作黨謨議) 2차 문제(文題) :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브런치북 발행 규칙상 '작당모의'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제(진샤) 이름으로 재발행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 발행 작가: 초이스(https://brunch.co.kr/@williams8201/61)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게는 그게 지난 가을이었다. 1년 반 동안 열심히 준비한 드라마가 잘 안되었다. 흥행도 그렇고 평가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게 변했다. 드라마 하면서 얻은 상처도 컸지만 무엇보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다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느낌이었다. 기분 탓인가! 회사에서도 날 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졌다. 전에는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그동안 나름 괜찮은 커리어였는데..'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렇게 큰 실패는 처음이어서 그런가? 나는 길을 잃고 방황했다. 익숙지 않은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지 나는 좀처럼 답을 찾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공간이 블루 스크린 같았고 나는 풍차 없는 곳에 서있는 '돈키호테'라도 된 기분이었다. 어딜 가도 어느 곳에 있어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숨고 싶었다. 검은 옷에 묻은 얼룩처럼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늘 그렇듯 내 안으로 깊숙한 잠영을 선택했다.
그날도 그랬다. 새벽 여명과 함께 떠진 눈을 종일 깜빡이다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집 주변 안양천을 혼자 배회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 어깨너머로 진눈깨비가 내렸고 사선으로 부는 찬 바람은 힘없는 내
머리칼을 흩날렸다. 걸으면서 나는 계속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알베르 카뮈가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했듯 수많은 생각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척하면서 또 날 흔들어놓았다.
내게 또 기회가 있을까?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뭐. 아직 젊은데.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오던 기획안이 이제는 가뭄에 콩 나듯 오는데?
한 걸음 뗄 때마다 수많은 생각들이 희고 검은 건반처럼 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멈춰있고 싶지는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내 마음이 이내 내 발걸음이 되었다.
그래도 연출 못 한다! 소리 들은 적 없잖아. 아이디어 많다고 소문났고.
그러면 뭐해 이미 스크래치 났는 걸. 과일로 따진다면 이제 파품이 된 거야!
좋게 좋게 생각하려 해도 자꾸 불쑥불쑥 찾아오는 부정적인 생각이 내 걸음을 처지게 만들었다. 마른하늘에 한숨을 내뱉었다. 길 위에 풀들이 한겨울 찬바람에 사락사락 흩날렸다. 저 멀리 골프 연습장 네트 너머로 잿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달이 여위고 차오르듯 내 그림자는 짧았다 길어졌다 반복했다. 그때였다. 딩동~ 핸드폰 문자음이 들렸다.
<감독님! 요즘 어떻게 지내? 통화 가능?>
확인해보니 배우 남궁민 형님이었다. ‘형님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남궁민 형님과 나는 ‘김과장’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연과 연출로 만났다. 우리는 서로 잘 맞았다. 어떻게 하면 웃길까? 서로 경쟁하듯 아이디어를 내었고 그걸 운 좋게도 시청자들이 좋아해 줬다. 일주일에 3~4일 꼴딱 밤새면서 촬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전우애도 생겼다. 드라마 끝난 후에도 형님은 꾸준히 술 사줬고 연락도 자주 주고받았다. 내 두 번째 단막극에는 바쁜 시간 쪼개서 특별출연까지 해주셨다. 연기는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완벽하고 (살면서 이렇게 대본 많이 보는 배우는 처음 봤다), 사석에서는 정말 친형처럼 현실적인 조언 해주고 또 내 썰렁한 유머에도 깔깔 거리며 웃어주는 정 많은 사람이 그였다.
전화를 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카톡으로 안부 인사를 보냈다.
<저야 뭐 늘 그렇죠. 하하.
형님 잘 지내셨어요? 늦었지만 연기대상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하하>
며칠 전 형님은 ‘스토브리그’로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방송을 보면서 축하한다는 글을 메시지 창에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내가 안 보내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축하인사 많이 할 거야~’
‘드라마 한다고 최근에 연락도 많이 못했으면서 뭘~’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그날 나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답 톡은 없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또 안양천을 걸었다. 너무 ‘하하’를 남발했나? 그나저나 몇 개월 만에 왜 연락하신 거지? 혹시 내가 연기대상 축하 메시지 보냈다고 착각한 건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싶었지만 통화버튼은 차마 누르지 못했다. 솔직히 자격지심도 있었다. 형님이 스타가 되어 저 멀리 올라가는 동안 나는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기에... 유명 배우가 스크래치 난 감독 찾을 일 없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고개를 저으며 걷고 있을 때 이번에는 전화가 왔다. 민 형님이었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엄지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형님.” 일부로 밝은 목소리를 지어냈다.
“감독님. 잘 지냈어?”
그렇게 우리는 몇 분 동안 근황 토크를 했다. 나는 축하 늦게 해 줘서 미안하다고 전했고 형님은 요즘 준비하는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농담하고 호응하고 하하~ 웃으며 늘 그렇듯 이야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감독님~ 이번에 많이 힘들었지?”
“네?”
갑자기 형님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어디서 내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아니면 시청률 보고 걱정 많이 했나?
“뭐~ 쪼금 힘들었어요. 하하~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남 앞에서 우는 소리하기 싫었다. 내 마음을 들키기도 싫었다. 하지만 형님은 내 마음을 읽었나 보다.
“난 누구보다 우리 최 감독님 믿어요. 내가 사람 보는 눈 있잖아. 우리 최 감독님은 5년 안에 최고가 될 거야~”
형님은 그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더라.
“그럴.. 까요?”
“그래. 내 눈 정확하다니까. 그러니까 이번은 툭툭 털어 넘기고 다음 거 준비 잘해요.”
“네. 형님.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는 5분가량의 통화를 마무리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 생각한 적 없고 누군가의 도움 또한 필요 없다 생각했다. 늘 그렇듯 나는 나 혼자 해결하려 애썼다. 내 아픈 모습을 들키는 건 싫었고 성격상 남에게 우울한 이야기 하는 것도 안 좋아했다. 누가 날보고 촉촉한 눈빛 보내는 건 상상만으로도 속상했다. 조개껍데기처럼 단단하게 마음을 닫고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난 원래 혼자가 편해.’
참는 것도 그리고 이겨내는 것도 혼자 잘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게 편했다. 나만 내 마음을 잘 추스르면 되니까. 그 정도로 난 의지력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울컥~ 눈물이 고이면서 코끝이 찡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안에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내가 사람 보는 눈 있잖아. 우리 최 감독님은 5년 안에 최고가 될 거야.’
그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솔직히 진심이 아니었을 거다. 힘내라고 으레 예의상 한 말이었을 거다. 그래도 그 한 마디는 내 마음 한 복판에 커다란 동심원을 그려냈다. 심장에 열꽃이 올라 점점 빨리 걷다가 결국 안양천을 내달렸다. 달려도 달려도 힘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손을 먼저 내민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조금 잘 나갈 때는 앞만 보고 달렸고, 떨어졌을 때는 스스로의 감정에 빠져 주위를 돌볼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 먼저 한 적 없었고 설령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안쓰러운 마음만 간직한 채 흘러 넘겼다. 1.77미터 높이의 울타리 꼭대기에는 철사를 파도 모양으로 엮은 철조망이 언제나 쳐져있었다.
거만하다면 거만했고 차디차다면 누구보다 차가운 인생이었다. 주기보다 받는데 익숙했고 비판보다는 칭찬에 관대했다. ‘내버려 둬도 난 알아서 잘해!’ 일종의 자신감이자 모종의 자만심에 길들여진 삶이었다. 하지만 쿵!! 한 번 제대로 넘어지니까 전에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나 혼자서는 절대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천변을 뛰면서 나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내가 나중에 설령 잘되더라도 내 사람은 절대 잊지 않기로. 민 형님이 내게 전화 준 것처럼 만약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나도 주저 말고 손을 잡아주기로.
나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지인들에게 먼저 연락하기 시작했다.
<잘 지내니?>
<보고 싶어요. 요즘 뭐해요?>
<생일 축하해>
<많이 힘들었지? 괜찮으면 시간 좀 내줄래?>
오랜만이라 반갑다는 문자도 있었고 술 한 잔 사달라는 메시지도 있다. 내 문자를 받고 하루 종일 행복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기분 좋게 답 해주지만 물론 답이 없을 때도 있다. 아마 갑자기 저 녀석 뭐야? 생뚱맞다! 생각하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느낀 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다들 외롭고 또 마음 기댈 곳 없이 살고 있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다들 제 위치에서 누군가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건 낯설고 또 어색하다. 때론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용기를 딛고 번거로움을 이겨내는 순간,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마디는 상대방의 하루는 물론이고 중요한 인생의 결정까지 바꿀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보고 싶지만 오랫동안 연락 못한 지인에게 메시지 하나 보내면 어떨까?
<잘 지내? 오랜만이야!>
작은 용기 하나 이겨내면 그 메시지는 당신의 체온을 고스란히 전해줄 거다.
그러면... 보지 않아도 미소 짓는 상대방의 얼굴을, 당신은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안양천을 걸었다' 이 문장을 다음 글 김소운 작가님이 이어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