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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 그 시절 그 물건: 다마고치와 삐삐 >

by 진샤


양가감정이었다. 유치한 것들, 하면서 늘 그들 곁을 기웃거렸다. 저렇게 유치하다고? 하면서 그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한 번만 만져봐도 돼? 이걸 누르면 된다고? 아, 이렇게? 속으로는 ‘이딴 거에 열광하다니’ 하면서도 동그란 걸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결국 다음 쉬는 시간까지 갖고 놀으라는 허락을 받았다.

수학 선생님 이름은 박대훈이었고, 그 이름은 내가 중학교 때 좋아한 몇 안 되는 선생님 이름 중 하나였다. 수학은 어려웠지만 선생님은 좋았다. 저렇게 좋은 사람이 왜 수학 같은 걸 가르칠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혼자선 답을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수학 시간 나는 답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마고치 속 아기는 배가 고픈 표시였다. 배가 고프면 밥을 줘야지, 밥을 늦게 주면 죽으니까. 책상 서랍 속에 손을 넣고 밥을 주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선생님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손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내놔. 나는 배가 불러 웃고 있는 표정의 다마고치를 선생님 손에 올렸다. 그때의 선생님 눈빛을 본 이후로 나는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내 앞 앞에서 선영이가 째려보았다.

쉬는 시간에 선영이와 교무실로 갔다. 선생님께 ‘죄송합니다, 제 것이 아니고 선영이 거예요. 다시는 수업 시간에 딴짓 안 할게요, 제발 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끝에는 좀 울었다. 선생님께 죄송해서, 선영이한테 미안해서, 쪽팔려서. 선생님은 나와 선영이 모두 꿀밤을 한 대씩 때리고 분홍색 다마고치를 선영에게 돌려주었다. 학교에 이런 거 가지고 오지 마. 교실로 가는 복도에서 선영은 앞장서서 억울한 목소리를 뒤로 흘렸다. 앞으로 아무도 안 빌려 줄 거야. 나는 침묵의 대답을 앞으로 보냈다.

나야말로 억울했다. 저딴 유치한 거 필요 없는데. 그냥 한 시간만 보려 했는데, 재수 없게 걸렸다. 나야말로 앞으로 빌려달라고 안 할 거다. 선영이는 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다마고치를 학교에 가져왔다. 선영이가 안 빌려줘서 친구들이 너도나도 다마고치를 샀다. 형광도 있었고 네모 모양도 있었다. 하나같이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다들, 유치해 보였다. 진짜 애완동물도 아니고 저렇게 단순 무식한 기계에 놀아나다니, 난 끝까지 안 살 거라고 다짐했다.

장난감치곤 조금 비쌌다. 공부에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되려 공부에 방해될 뿐이었다. 저런 건 없어도 돼, 하면서 나는 신상 다마고치가 학교에 오면 종일 다마고치 생각뿐이었다. 필요 없는 것, 유치한 것, 하지만 귀여운 것, 내가 산다면 나는 하얀색.

집에는 가끔 말했다. 엄마, 친구들이 다마고치라는 걸 학교에 갖고 와. 동그랗고 손안에 들어오는 건데 그 안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거야. 똥도 싸고 잠도 자고 배고프면 울고 이걸 안 맞춰주면 죽어. 웃기지. 엄마는 ‘그래?’라고 했다. ‘너도 사줄까?’라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걸 왜 학교에 들고 오는 건지’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너도 사줄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오래 고민했는데 괜히 고민했다. 나의 대답은 물론 ‘아냐, 난 그런 유치한 거 필요 없어, 곧 시들해질 거야’였다.

나의 예상은 맞았다. 다마고치 유행은 방학이 끝나자 사그라들어 있었다. 다음 유행의 주인공은 삐삐였다. 삐삐는 다마고치와 차원이 달랐다. 삐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갖고 다녔다. 그동안의 연락은 ‘걸거나 받는 행위’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삐삐는 ‘호출’했다. 공중전화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8282, 0124, 0179, 7942, 의미를 흠뻑 담은 숫자들이 범람했다. 5454가 뭔지 알아? 오빠 사랑해래, 참, 넌 삐삐 없지. 응, 이라고 대답하고 되물으려다 말았다. 삐삐가 없어도 숫자 의미 맞추기는 해도 되는 거잖아?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에 서 있는 꼴들이 우스웠다. 아니 다들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 거야? 지금까지 삐삐 없이 잘들 살아왔잖아? 그거 해봤자 돈만 나가고 할 말 있음 전화하면 되고 편지 쓰면 되고.

나를 둘러싼 동서남북과 상하좌우에서 삐삐들이 삐삐거렸다. 저런 거 있어봤자 공부에 집중 못하고 좋을 거 없어. 그리고 삐삐들이 삐삐 거리는 곳을 늘 흘깃거렸다.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속에서 삐삐거릴 때마다 나는 마음의 다른 곳을 진동시켰다. 저딴 거 필요 없어, 저런 거 할 시간에 문제 하나 더 풀자, 이것도 다 지나갈 거다, 두고 봐라. 삐삐의 시대는 다마고치보다는 오래갔지만, 결국 나는 맞았다. 삐삐 역시 시대 속에 매장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욕망을 자꾸 속이는, 진실한 욕망 위에 무언가 자꾸 덧대는,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지 않으려 애쓰는. 핑계는 많았다. 공부에 방해되니까, 쓸데없이 돈 드니까, 유치하니까.

남들 다 갖는 걸 갖지 않아야 특별하고 독보적인 사람이 되는 거라는, 언뜻 그럴싸하고 치기 어린 생각이 내 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남들 다 갖는 걸 가지지 못한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순수한 인정은 나를 나름의 고귀한 위치에서 끌어내릴 것만 같았다.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쓰지 않는,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남들이 한다고 나도 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그런 사람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에어팟? 물론 있으면 좋겠지. 그런데 귀에 꽂아서 들리면 다인 거 아냐? 내 이어폰 문제없이 잘 되는 데 그게 있어야 해? 선? 그 정도 불편함을 없애려 십만 원짜리를 산다고? 난 지금도 에어팟 없이 잘 사는데? 매일 아침 산책길에 멋지게 에어팟 끼고 산책하는 이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편해 보인다. 나처럼 매일 꼬인 줄을 풀 필요가 없겠지. 폰에 꼈다 빼고 감고 풀고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

욕망하지 않는다.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해다. 욕망해선 안 되는 상황을 감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 속에서 나의 인격을 잘 보듬을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의 양가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변명과 핑계를 그럴듯하게 두를 줄 아는 사람, 다마고치와 삐삐를 한때의 유행으로 단언할 줄 아는 사람, 에어팟은 오래갈 거지만 그건 그대로 둘 줄 아는 사람. 이런 나의 양가감정이, 실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임을 아는 사람. 모두가 표현하는 방법과 정도만 다를 뿐 그 안에서 매일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걸 아는 사람.


이렇게 꽤나 재수 없는 내게 누가 에어팟을 사 준다 하면, 속으로는 ‘아싸라뿡빠뽕’을 외쳐도 ‘이렇게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음악 들으며 더 열심히 읽고 쓸게요’라며 살짝 웃어 보일 줄 아는, 그런 사람.




* 제목은 강화길 작가님의 소설 '다른 사람'에서 차용하였습니다.

**사진 출처: 나무 위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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