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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변호사

< 그 시절 그 사람: 박찬호 >

by 진샤



너도 알겠지만, 내 책상 위를 가득 채운 선수들은 자주 바뀌었지, 박찬호 전까진. 축구선수 윤정환이나 농구선수 조성원을 보고 넌 아저씨들을 좋아하냐고 비아냥거렸어. 하긴, 네 책상을 가득 채운 마이클 오웬이나 이나모토 준이치에 비하면 좀 아저씨 같긴 했어. 그런데 말이야, 운동은 얼굴로 하는 게 아니란다. 윤정환의 드리블이나 조성원의 3점슛을 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이 세상에 태어나 저런 플레이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어. 그러나, 너도 잘 알다시피 그들은 오래 가지 못했지, 나의 영원한 첫사랑 박찬호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거든.

너는 야구가 싫다고 했어. 야구 선수들은 다 뚱뚱해. 나는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 야구 선수들은 다 뚱뚱했거든. 박찬호도 마찬가지였어. 허벅지가 정말 뚱뚱했거든. 그런데 그래서 좋았어. 캐스터가 저 허벅지에서 160키로가 넘는 스피드가 나온다고 했거든. 사실, 허벅지보다 눈빛이 더 좋았어. 깊이 응시한다고 해야 할까, 힘이 있는 그 눈빛. 모자에 가려 어떤 의미마저 갖게 된 그 눈빛. 좀 변태같지만, 저 눈빛으로 나를 봐준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처음부터 박찬호를 좋아했던 건 아냐. 그가 메이저리그로 가고 선발 고정 등판을 하고 IMF 때 박세리와 쌍두마차로 국민에게 힘과 용기와 희망을 줄 때 난 정말 텅텅 비어있었어. 야구에 대해서도, 그에 대해서도. 어느 날 오후, 그러니까 숙제도 다하고 엄마 심부름도 다하고 심심해서 몸이 뒤틀리던 그 오후에 아빠가 티브이를 보면서 ‘저노마 저거 공 잘 던지는 거 봐라’ 하는 거야. 그래서 봤지. 그랬더니 세상에, 우리나라 사람이 코큰 사람들한테 공을 던지는데 코큰이들이 글쎄, 그걸 못치는 거야. 너무 빨라서, 너무 휘어가서, 너무 낮게 가서.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인생을 그로 가득 채우게 됐지.

그다음부터 네가 중요해진 거야. 나의 변호사가 되어주었으니까. 야, 일어나. 선생님들이 눈치 없이 나를 깨우면 너는 재빨리 대답해주었어. 어제 밤새 박찬호 경기 봤대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다들 비슷한 난감함을 얼굴에 달고 ‘그런다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냐’ 하고 그냥 넘어간 거야.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들은 자는 나를 보고 ‘어제 밤 박찬호 경기 있었냐?’라고 물었고 너의 대답은 간결해졌지. 네. 간혹 고약한 선생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고약함도 내 책상을 툭 치고 가는 정도에 그쳤어. 어쩌겠어, 국민영웅 박찬호인데.

티브이는 엄마아빠 방에 있었어. 엄마아빠는 자고 있었고, 죄송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 박찬호잖아. 그는 밤을 새운 나에게 많은 걸 선물했어. 승리, 무실점 투구, 완봉승, 선발타자 상대 전원 탈삼진, 일본인 투수를 제치고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 오마이갓, 한 경기 2 홈런까지. 잠이 중요하겠어? 엄마는 ‘잠 좀 자라’ 하며 짜증 묻은 목소리로 돌아누우셨지만, 죄송함은 바로 걷혔어. 그 옆에서 아빠가 ‘저노마 저노마 공 멋지게 들어가는 거 봐라’ 하면서 내 편 아니 박찬호 선수 편을 들어 주셨거든.

올스타전 출전 즈음에는 경기 전날부터 수업 시간에 잤어. 수면은 대부분 영어와 생물 시간에 이루어졌지. 그 선생님들은 혀만 끌끌 차고 별말 없으셨거든. 덕분에 영어와 생물은 내 평균 점수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지만. 하여튼 선생님들은 역시나 기계적으로 ‘어제 박찬호 경기 있었냐?’하고 물었고, 너는 ‘아니요, 오늘 밤 경기라서 미리 자두는 거래요’라고 충실한 나의 변호사가 되어 주었지. 그래서, 네가 국사 시간마다 선생님한테 ‘왜놈 축구선수를 왜 좋아하느냐’며 혼나도 도와주지 못해 가슴이 아팠어. 도대체 왜 일본 선수를 좋아한 거야, 뭐? 잘 생겨도 참았어야지. 얼굴로 축구하니. 쯧쯧.

하여튼, 너는 박찬호를 좋아하는 나를 일관되게 맘에 안 들어했지. 그 산적이 왜 좋냐, 산적같이 생겼는데 뭐가 좋냐, 나중에 산적이랑 결혼해라, 허벅지 굵은 산적.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져서는 ‘내가 공주 박찬호 생가 갈 때 너도 같이 갈래?’라든가 ‘박찬호 학교 한양대 같이 가자’라고 했고 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싫어했지. 야아, 최악이야, 이러면서. 너의 그 표정이 좋아서 난 더 산적을 들먹였고.

그가 다저스에서 최고의 피칭을 하고 시즌을 마무리한 해, 그 여운을 매일 곱씹으며 겨울로 접어들었어. 야구 없는 인생 무슨 재미로 사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복도를 좀비처럼 헤집으며 매점을 드나들던 때, 내 생일도 그렇게 무채색으로 왔어. 그리고, 내 책상 위에서 파란 숨을 내쉬던, 톱밥난로 냄새 속에서 홀로 어메리카 스멜을 뿜어내던 그 모자, 그것이 내 생일을 파랗게 물들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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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모자를 껴안고 10분을 울었을 거야. 그와 단 하나 공통된 무언가를 갖고 싶었고 그건 그가 매일 만지고 쓰는 모자였는데, 우리의 초라한 탄광마을에서는 그걸 구할 수가 없었거든. 이 모자 사려면 미국을 가야겠지?라는 내 물음에 매번 ‘포기해’라고 건조하게 말하던 너는 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말도 없이 조퇴를 했었지.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원주를 갔다고 했어. MLB 매장이 어디예요,를 네 번 정도 묻고 그곳에서 두 달간 모은 용돈과 LA 모자를 교환했어. 구겨질까 봐 어디 넣지도 못하고 그대로 들고 오느라 고생했다는 너를 안고 펑펑 울었어. 그게 뭐라고, 그 모자가 뭐라고 네가 그 먼 길을. 모자를 무릎 위에 올려 두고 혼자 조용히 흔들리는 기차 창밖을 바라봤을 너를 생각하고 나는 그만 콧물까지 질질 흘리며 울어버렸어.

그 후 1년동안은 모자가 닳을까 봐 아까워서 쓰지도 못했어. 그리고 다음 해에 박찬호 선수는 텍사스로 이적을 했지. 나는 그 모자를 쓰고 외출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는데, 그는 사막으로 가버렸어. 그러거나 말거나 대학 입학 때 챙겨 갔고, 선배들이 술 먹으러 오라고 해서 처음으로 쓰고 나갔다가 잃어버리고 말았고. 내가 그러는 동안 재수를 한 너는 원하는 학교에 입학했어. 3월의 어느 날 너는 내게 ‘T’가 새겨진 파란 모자를 선물해 주었지. MLB 신촌 매장은 원주랑 비교도 안 되게 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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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남편은, 글쎄... 마이클 오웬보단 이나모토를 닮은 것 같아. 내 남편은 산적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고. 그렇게 우리, 20년을 넘게 함께 건너왔다. 워킹맘인 너를 존경하는 나와 아이 셋을 키우는 나를 존경하는 너, 그렇게 서로를 존경하며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면서.


내 고교 시절을 가득 채운 두 가지를 고르라면, 그건 박찬호와 너야. 고교 시절 떠오르는 딱 한 가지를 고르라면 그건, 오롯이 박찬호 선수를 좋아할 수 있게 변호해준 너. 그래, 내 첫사랑 변호사 바로 너야.내 소중한 시절이 순수하게 반짝일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변호해 준 너, 진심으로 고마워.


늦은 감사가 퇴색되지 않길 바라며, 이제는 내가 우리의 오랜 우정을 변호할 수 있길 바라며 편지 줄일게.





* 사진 출처: 연합뉴스, MLB 공식 홈페이지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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