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문화: 슈퍼맨>
브런치북 발행 규칙상 '작당모의'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제(진샤) 이름으로 재발행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 발행작가: faust(https://brunch.co.kr/@love2060/146)
알아요? 슈퍼맨 놀이, 한 번쯤 들었거나 보았거나 해봤지요? 그 영화 보고 난 후, 그걸 따라 하지요. 보자기 망토 덮어쓰고 온 동네, 골목이며 들판을 뛰어다녀요. 그러다가 대미는 슈퍼맨의 자기 존재 증명, 제일 높은 장독 위에서 뛰어내립니다. 이런 대책이 없는 장난꾸러기, 동네에 꼭 한두 명은 있답니다. 좀 더 모자란 놈이 있긴 한데, 담벼락이나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단세포적인 아이요. 그래서 다리 부러진 이야기요. 들어봤지요? 없다고요? 있어요. 당신이 관심 없어서 그렇지 그런 천지 분간 못하는 아이 어딘가에 꼭 있어요. 바로 접니다.
근데 문제는 세월이 흘러 시근이 들었다 싶었는데, 나의 슈퍼맨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에 홀랑 미쳐 지냈던 때가 있었어요. 삶에 작은 쉼조차 개입할 틈도 주지 않았을 때, 인생 30대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지요. 분주함을 선으로, 한가함을 악으로 여기며 쫓기는 줄도 모르고 쫓는 삶을 살았습니다. 급기야 속사람 밑바닥에서 균열이 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밤 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 알았어요.
그 일이 있기 몇 주 전, 새벽부터 전장(戰場) 같은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어요. 잠에서 덜 깬 흐릿한 정신으로 치렁치렁한 어둠 속으로 차를 몰았어요. 순간!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어요. 차는 부서져도 내 몸은 부서지지 않았어요. 내 안에 슈퍼맨 DNA가 있다는 사실을 그날 확인했지요. 이 호기를 누가 막을꼬.
며칠이 지났어요. 몸에서 이상 신호가 왔습니다. 미세한 복통이 있었고, 눈 밑이 떨리고, 말을 할 때 얼굴 근육이 약간씩 한쪽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어요. 병원에서는 정밀검사를 하자, 무조건 쉬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어떤 엄포도 질주하는 나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끄떡없었어요. 왜, 그렇지 않습니까.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자는 자가 치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이 정도쯤이야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저항 증상 정도로 생각하고 간단한 진통제 몇 알을 배터리 장착하듯 털어 넣고 또 달렸지요.
이윽고 그날 밤이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듯 호흡이 가팔라지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 교통사고 당시 배 안(장간막)에서 미세한 출혈이 생긴 것이었어요. 출혈로 복수가 차올랐고 이송 중에 기억이 희미해지더군요. 어렴풋이 내 몸에는 각종 의료 기구가 채워지고 팔에는 바늘이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의식을 잃었습니다. 인공호흡기에 내 심장의 박동이 맡겨지고 곧이어 수술이 시작되었지요.
칠흑의 어둠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현실인지 꿈속인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 육체 속에서 또 하나의 존재가 빠져나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안개가 잔뜩 드리워지고 두꺼운 물기로 가득 찬 숲을 종일 헤매다가 선 자리에 어둠의 형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어요. 그 어둠이 내 몸을 칭칭 감싼 후 귓가에 대고 마치 영혼을 흡수하듯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누군가가 나를 깨웠습니다. 두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장 큰 공포는 코와 입이 열려있어도 숨이 들어오지 않는 것. 또 하나는, 세상에는 검은색보다 더 검은 어둠이 있다는 것을요.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깨어서 처음 본 세상입니다. 눈으로 덮인 아침, 창문으로 쏟아지던 볕 한 뼘으로도 어둠에 점령당했던 지난밤을 밝히고도 남았어요. 침상에 누워서 본 세상은 이전의 것이 아니었어요. 누군가에게 등 짝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 이런 걸까요. 정신이 번쩍 듭디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전에는 찬 것이 아니었지요. 바람에 길이 보이고, 햇살에 결이 보이고요.
수술 후, 처음으로 거울을 본 순간입니다. 슈퍼맨이 아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사람이 있더군요. 그 ‘인간’에게 물었어요. 왜 이렇게 성급하게 살았냐고. 왜 그렇게 바쁘고 빠른 삶을 숭상하며 아등바등 죽을힘을 다해 달렸냐고. 왜 타인의 속도에 신경을 곤두세워 가야 할 방향도 모른 채, 얼빠져 덩달아 뛰었냐고. 그 인간이 말하더군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고, 슈퍼맨이 되고 싶었다고.
내 인생 목표는 ‘일어서는 것’ 아닌, ‘넘어지지 않기’였거든요. 돌아보니 그랬어요. 실패의 일관성 알아요? 실패가 운명이요, 섭리요, 기정사실인 사람처럼 참 꾸준히도, 성실하게 곤두박질쳤어요. 뭐든 단박에 통과한 한 적이 없어요. 구구단도, 줄넘기도, 자전거 타기도, 대학 입학도, 운전면허도요. 후진 주차, 지하철 출구 찾기, 계단 두 칸씩 내려가기도요, 훌라후프는 50년째 안 됩니다. 남들 쉽게 하는 것이 내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긴 게 실패 강박증!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강박을 지니게 된 거죠. 남에게 더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온갖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며 타인의 장단에 춤추며 살았고요. 타인의 마음에 부합하고자 포장해야 하는 사람으로, 성공을 연기하는 사람으로 살았어요. 그러는 동안 나의 내면은 실패의 흔적만을 붙들고 끙끙, 그놈의 슈퍼맨 병을 앓고 있었나 봐요.
그러다가 맞이한 것이 구급차라는 ‘들 것’에 실리는 경험이었지요. 제대로 매운맛 본 거지요. 병원 침상에 누워 글 하나를 읽었어요. 생애 마지막 순간이 또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누워서야 알게 되었지요. ‘진계유’의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 중 한 대목입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떴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그래요. 내 인생의 침상에 누워본 뒤에야 허리 끊어지도록 질주하며 살았다는 걸 안 거지요. 사실, 누구나가 한 번쯤은 위기의 침상에 누울 때가 있잖아요. 또 누워봐야 해요. 쓰러져서 보는 세상이, 고개 빳빳이 쳐들고 사투를 벌이며 사는 세상보다 훨씬 수월한 세상으로 보이더군요. 알고 보니 실패는 내가 진저리 쳐야 할 혐오스러운 괴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실패라는 녀석! 일부러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벗 될 필요는 없겠지만, 어쩌다가 또 마주치게 되면 이젠 멱살 잡고 싸우지는 않으렵니다. 험난한 여정 지나면서 넘어지고 자빠진 ‘실패적 인간’이라고 본인도 얼마나 고달팠겠으며 또 할 말이 많았을까요. 가끔은 속내도 털어내면서 조금씩 친해져 볼 참입니다. 넘어진 김에 정분이라도 생길지 압니까.
나는 매일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내려오는 굵은 수술 자국을 보며 삽니다. 이 또한 걸어온 흔적이고요. 내 몸에 새겨진 작은 역사지요. 두들두들 못났어도 살살 어루만지며 위로하렵니다. 이 상흔을 볼 때면 가끔 정신이 번쩍 듭니다. ‘아, 내가 살아있네.’ 이런 경이감요. 살아있는 모든 것이 희망 아닌가요.
이제 슈퍼맨 놀이, 그만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