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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an 08. 2024

여벌 양말은 갈색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


타임웨이츠포노완



이걸 어쩌지, 비켜달라고 말씀드려야 할 텐데, 어떤 말투로 말해야 하지, 선생님..., 선생님? 저기, 사회선생님! 4반 선생니임. 돌아보시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죄송한데요.... 비켜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 거기 계시면 어떡해요! 저기..... 비켜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하아,

이 고민만 몇 분째. 1미터 정도 앞에서 내게 등을 보이고 계신 분은 지영의 담임 선생님이자 사회 선생님이자 제 담임인 국어선생님의 남편 분이자 쌍둥이 딸의 아버지이셨어요. 사회 선생님이어서 일주일에 공식적으로는 두 번 45분 뵐 수 있고, 지영에게 빌린 체육복을 굳이 하교 시간에 돌려주러 갔다가 종례 하시는 모습을 교실 뒷문으로 볼 수 있는 분. 가끔 교무실에서 자리에 앉아 계시거나 정말이지 운이 좋은 날 복도에서 두 번 볼 수 있는 분.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늘 가늘어지는 눈웃음으로 받아주시며 '어, 그래' 답하시는 분. 허스키해서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허스키한 목소리가 얼마나 멋진 목소리인지 알려 주신 분. 주말에 무어하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어서, 반장의 지위를 이용하여 알게 된 담임선생님의 집 전화번호로 전화하고는 '여보세요'만 듣고 끊게 만드시는 분. 목소리를 듣고 '집에 계시는구나' 알게 되어 뿌듯하면서도 '무얼 하실까', '점심은 드셨을까', '무얼 드셨을까', '다섯 살 쌍둥이들과 무얼 하며 노실까' 궁금함을 더 크게 만드던 분.

그분이 제 앞에 서서 꼼짝을 않고 계셨어요. 비키셔야 양동이 물을 붓고 복도 청소를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도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었... 실은, 마냥 떨리기만 해서 도저히 선생님을 부를 수도 없었어요. 중요한 건, 그 순간 선생님께 아무 존재감 없는 아이이고 싶지 않았다는 거예요. 5반 반장 아닌 '어떤' 아이로 기억될 수 있는 순간이었죠. 선생님께 잘 어울리던 갈색 양말을 한참을 보다가 결심 없이 양동이를 화악 부었어요. 제 앞 방향으로, 선생님이 서 계시던 그 위치로.


"아악! 야! 누구야! 누가! 이 씨(발), 누구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괜스레, 흘리듯, 중요한 건 아니지만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어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봤어? 거기 주인공 여자애가 나 같대.(그러니까 영화 꼭 보고 주인공 같은 나를 잘 파악해 줬으면 좋겠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씩씩함미다


웃을 때 입이 커지고 점점 뒤로 넘어가는, 아껴둔 푸딩이나 먹고 싶었던 철판구이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노래방은 기본 열 시간은 달려줘야 하는, 달릴 때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친구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고 잘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는 않는,  대체로 멍청하지 않고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하지만 대부분 멍 때리고 운도 썩 좋지만은 않은 편인,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누군가 힘겹게 전한 마음을 없던 일로 하고 결국 그 사람을 어색하게 피하는 모습까지 전부.

영화를 보고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어요. 타임 리프를 해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갈 것인가. 몇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대답이었어요. 사회선생님의 뒤에서 양동이를 들고 있던, 인생 통틀어 이불킥을 가장 많이 했던 바로 그 순간. 열심히 달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차분하고 단호하면서도 조금은 낮은 톤의 목소리로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할 거예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지금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랬다면 선생님은 예의 그 좋은 눈웃음으로 '그래'라든가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구나'라며 비켜주셨을 거예요. 양말이 흠뻑 젖어 '이를 어쩐다, 넌 누구더라, 5반 반장이구나, 앞으로는 조심하렴' 정도를 상상한 내게 선생님은 처음으로 허스키 욕도 들려주시고 '어우 저걸'하며 힘껏 노려보시고 바지의 절반 정도 다 젖은 걸 보시고는 '제대로 못해!' 소리까지 버럭 지르셨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실수였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텅 빈 양동이를 꼭 쥐고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는 제 두 눈은 빨개졌지만 울지는 않았어요. 제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요. 울지 않으려고 양동이를 너무 꽉 쥐어서 손 끝도 빨개지긴 했지만.

선생님의 그런 표정이 너무 무섭고 죄송하고 한편으론 서운해서 화장실에 오래 있었어요. 친구들이 대걸레를 빨며 '괜찮아?' 물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어요. 괜찮지 않았으니까요. 한참 후에 나와 보니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소리 나지 않게 뒤꿈치를 들고 호다다닥 뛰어 5반으로 갔어요. 4반을 지나칠 때는 일부러 몸을 낮추기도 하면서.


  


영화 봤어? 물어보면 대부분 '재밌더라, 잘 봤어'라고 답했어요. '마코토 완전 나랑 똑같아', 라든가 '마코토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라는 말 대신 '치아키 같은 남자 어디 없나' 혹은 '치아키처럼 멋진 남자친구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몇몇은 웃어넘겼고 몇몇은 '누구 소개해 줄까'라고 말했고 나머지들은 '영화는 영화로 보자'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하긴, 너도 마코토처럼 잘 뛰긴 하지.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 치아키처럼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설레었던 적도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여자주인공 걔 너무 별로던데, 애가 단순하고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사건사고만 만들고, 그나마 갈수록 좀 정신 차리기는 하던데, 그래도 애가 정신적으로 어리니 이야기가 그렇게 유치하지. 이 말을 들은 후부터 호감 가는 사람에게 이 영화를 말하지 않았어요. 생각이 깊지 못하고 바로 앞의 일만 해결하려 들다가 오히려 일이 더 꼬이게 만들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결국에는 회피하고. 그런 마코토 또한 저와 너무나도 같았으니까요. 지금 이만큼 나이 먹고 나서는 '그래서 마코토는 열심히 달리잖아, 자신의 잘못들을 바로잡으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쨌든 그때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영향도 상처도 잘 받던 때라 작게 끄덕이고 말았지만요. 힘이 나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할 때마다 보던 이 영화도 그 이후로 끊었었어요. 그리고 2024년, 정말이지 큰 힘이 필요해 다시 불러냈어요. 마코토와 치아키, 코스케의 캐치볼과 여름 하늘과 나무, 쪽지 시험, 2G 폰과 자전거 그리고 Time waits for no one.



미래에서 기다릴게




90년대 중반, 김민종과 임창정 이전에 사회선생님을 좋아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시간을 조금만 더 당겨 3월 학기초로 갈래요. 교무실 선생님 책상 서랍에 갈색 여벌 양말을 하나 넣어드리고 책상에 메모를 남겨둘 거예요.

'여벌 양말로 신으실 일 있으실 거예요, 갈색이 잘 어울리세요.'

이렇게 해둔다면, 양말이 다 젖은 선생님이 변태 영어샘새끼의 여벌 양말을 빌려 신지는 않으실 거예요. 선생님의 욕과 표정에 죄송하기만 했던 제가 결정적으로 실망했던 건, 선생님이 갈아신으셨던, 새끼발가락에 조금 구멍이 난 회색과 검은색이 반복되는 줄무늬 양말이었으니까요. (앞자리에 앉으면 선생님들의 양말을 관찰할 시간이 많아요.) 친구들의 귓불을 만지고 어깨를 주무르고 '넌 엉덩이가 다른 애들보다 크다'는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던 영어의 양말을 신으신 선생님을, 졸업까지 피해 다니느라 애쓰던 중학교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고는,

무탈하게 자랐을 거예요. 따돌림도 받아보고 나름의 진학 실패와 취업 실패도 겪고 20대 중반엔 홀로 '멈춤' 버튼도 눌러보고 여기 가보고 저기 가보고 사람들 만나고 나누고 함께 하며. 남들과 달라 보여도 크게 보면 비슷한 인생을 살면서 많이 웃고 더 많이 울면서 지금의 애셋엄마로 여기에 왔을 거예요. 니체의 영원 회귀나 영화 '어바웃 타임'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생의 궤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돌이켜 보면 모든 순간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해왔고,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인생이 스펙터클 해진다거나 완벽하게 바뀌지는 않을 거란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다른 선택으로 바뀐 삶 역시 그만큼 무거움과 서글픔을 견뎌야 했을 테니까요. 오히려 순간순간 놓쳤던 작은 웃음과 기쁨들을 챙기느라 더 바쁠 것 같아요. 누군가 힘겹게 드러낸 마음을 피하지 않았을 테고 고맙고 미안한 얼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했을 거예요. 그렇게 작은 순간들을 잘 모아 붙여 지금보다 더 큰 인생으로 펼쳤을 거예요.


그렇게,

2024년의 시작에 뒤를 돌아보았어요. 이 영화가 떠올리게 한 과거의 몇몇 순간들, 이 영화를 처음 본 때부터 힘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았던 지난 15년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어설프고 어리숙했던 순간들도 저였고 그랬기에 사랑스러웠던 '나''들'이 모여 지금이 되었음을 새삼스레 실감했어요. '지금, 여기'의 순간을 갖다 붙여 일상을 살아내는 '나들', 그 존재의 총합이 만들어내는 삶에 큰 실망이나 후회가 없을 거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어요. 고작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이렇게 갑자기 품이 커져도 되는 건가 싶어 져서 또 마코토처럼 아하하하하하핳 웃어보기도 했구요이래뵈도제정신.




영화의 마지막, 꿈이 뭐냐고 묻는 코스케에게 마코토가 대답해요. 히, 미, 쯔! 여름 내내 신나게 달린 마코토의 눈빛이 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크기를 키우는 구름에 머물러요. 여름의 시간만큼 자라난 마코토가 키워가는 비밀(ひみつ), 올해는 저도 그 속에 작은 비밀 하나 숨겨뒀어요. 모두가 다 알지만 모두가 말로 꺼내지 않는, 그래서 진정한 비밀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는. 비밀로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달려볼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emk4Yoredik



     

   


모두 각자의 비밀을 간직하고 달릴 수 있는 새해 되시길,

꿈을 이루는 길 위에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모든 이미지들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며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해당 제작사에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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