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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 Mar 07. 2021

술과 음악, 두 단어로 표현되는 곳

쿠바


 흔히 쿠바를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한다. 이 말을 아바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보통 한 나라 수도의 국제공항이라 하면 웬만하면 깨끗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은 화장실 물도 안 나오고, 에스컬레이터도 멈춰있었다. 공항에서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왔다. 아바나는 낡은 스페인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국적이고 멋진 유럽풍의 건물들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외벽이 다 손상되고 낡은 모습이었다. 

카피톨리오와 아바나 대극장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들은 알록달록한 색깔과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막상 타보면 내부는 핸들밖에 남아있는 게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올드카이다. 아름다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말레꼰이지만 이걸 방파제라고 만들어 놓은 건지 뭔지 높은 파도가 방파제를 다 넘어와 도로와 가게들은 물바다가 된다. 

말레꼰과 시내의 건물들


 이렇게 시간이 멈춘 모습은 여행의 불편함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마트도 없다. 진열대에 소수의 물건만 몇 개 놓아두고 점원이 직접 꺼내 준다. 뭘 하든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한 버스 티켓을 구매하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온라인 예매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사용 자체가 어렵다. 환전소 역시 1시간은 기본으로 줄을 서야 한다. 심지어 출국을 위해 시엔푸에고스 공항에 갔을 때에는 명색이 국제공항 환전소에 US 달러 잔고가 100불 밖에 없어 타국에선 휴지조각 밖에 안될 쿠바 화폐를 그대로 가져갈 뻔했다. 외국인은 쿠바인과 다른 화폐를 사용해야 하는 것도 이상한데 외국인 화폐인 쿡(CUC)이 현지인 화폐인 모네다보다 무려 스무 배가 넘게 비싸다. 그런데 어떤 가게에서는 외국인이 모네다를 지불해도 받아주기도 하고 뭐, 이래저래 그냥 제 멋대로인 느낌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 짜증도 살짝 날 때즘, 오비스포 거리로 들어섰다. 오비스포 거리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모여있고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니 작은 골목 여기저기서 밴드의 라이브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음악소리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춘다. 살사 클럽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 어디서나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이 놀라웠다. 심지어 노인들 조차 수준급이다. 분명히 절뚝절뚝 걷던 할머니가 음악이 나오자 골반을 돌리시는데 내 눈을 의심했을 정도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더 활기차다. 여기저기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둑한 길거리는 그 자체로 살사 클럽이다. 

오비스포 거리


 헤밍웨이가 "내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 있고, 내 다이퀴리는 엘 플로리디타에 있다."라고 했을 정도로 자주 방문했었다는 바에 찾아가 보았다. 이 두 곳의 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와 엘 플로리디타는 서 있을 자리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이렇게 유명한 바가 아니더라도 길거리를 걷다가 그냥 느낌이 가는 어느 곳이라도 들어가면 다 좋았다. 모히토와 다이퀴리 뿐만 아니라 쿠바 전통 럼인 하바나 클럽도 좋고 피나 콜라다도 좋다. 한잔에 몇 천 원 밖에 안 해 부담 없는 칵테일을 홀짝이며 쿠바만의 소울이 느껴지는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작은 바 안에서 펼쳐지는 밴드의 공연은 그 밀착감 때문에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좁은 바 안에서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매너를 지키며 살사를 추는 손님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다. 

엘 플로리디타와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쿠바는 여행하기 정말 불편한 나라였다. 풍경이 엄청 아름답다거나 음식이 엄청 맛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쿠바는 그냥 술과 음악이 다 인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하면서도 아바나 거리와 바에서 들은 음악과 느낌을 그 어느 곳에서도 받은 적이 없다. 이름 모를 바에서 들은 노랫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고 귓가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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