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호주에 놀러 갔다 온 지 불과 몇 달 만에 출장이 잡혀 또다시 시드니를 가게 되었다. 퇴근 후 자유시간 동안, 이번에는 오페라하우스나 하버브리지 말고 새로운 곳을 들러보고 싶었다. 구글 지도 화면을 슥슥 넘기며 어디를 갈까 탐색하던 중 페스티벌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이름은 'Sculpture by the Sea'. 보아하니 어떤 미술관도 아니고 타마라마 비치에서 본다이 비치로 이어지는 해안로가 장소로 표시되어 있었다. 바닷가에서 무슨 전시회를 한다는 건지 의아했다. 밖을 보니 비바람이 치고 있어서 가야 하나 고민을 잠시 했으나 해변의 조각품이 대체 뭘지 궁금해서 가보기로 결정했다. 우버에 탑승했더니 기사가 이 날씨에 해변에 수영하러 가냐며 놀리기도 했다.
비바람을 뚫고 해변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잿빛이고 바다는 우중충했다. 괜히 왔나 살짝 걱정하며 모래사장으로 들어갔더니 웬 스노클링 장비를 쓴 남자의 두 눈이 보인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눈이었다. 물이 안경 안으로 들어와 놀란듯한 모습이 익살스러웠다. 바로 옆으로 눈을 돌리니 이번에는 거대한 거품기가 바위 위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이렇게 특이한 조형물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동시에 내 기분도 업 되었고 본격적으로 해안가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끝없는 바다가, 한편으로는 고급 주택들로 이어진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니 중간중간 위트 있는 조형물들이 등장했다.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모형도 있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설치물도 있었다. 압도적인 규모의 대형 작품들도 있고 수풀과 절벽에 자연스럽게 흩어진 작은 작품들도 있었다. 개개의 작품들은 독특하지만 그 다채로운 모습들이 거친 파도, 절벽과 어우러져 더욱 생동감 있게 공간을 연출해주었다.
전시품 몇 점 놓여있는 것이 아닌, 꽤 오래 걸었는데도 새로운 작품들이 끊이지 않고 눈앞에 등장했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며 사진도 찍고 구석구석 관찰도 하고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상상하다 보면 지루할 틈 없이 산책로가 끝이 난다.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니, 덕분에 우중충한 해변은 온데간데없고 주변이 생기 넘치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