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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Jun 18. 2020

화면 밖 관객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되다

1인칭 시점에서 인터랙티브로 변화하는 미디어


시중에 제작된 작품은 인물 위주로 돌아간다. 카메라가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전달하거나 장면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달라 여러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런 작품들은 가상과 현실, 즉 등장인물과 관객의 경계가 또렷하게 나눠져 있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영화에 집중할 수 있어 경계가 있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영화와 차별점을 두지 않고 인기 있는 설정을 가져와 제작한 작품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든다. 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어도 시점을 바꾸거나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날이 발전하는 영화 시장에서 신선한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관객들의 눈에 들어온 영화들이 있다. 바로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한 영화다.



1인칭 영화란 인물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행동이나 액션, 풍경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주인공의 눈이 되어 관객이 직접 영화에 참여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주는 영화다. 다큐멘터리에서 사용하던 1인칭 카메라를 영화에 적용시켜 작품에 있는 급박한 상황과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가 배우의 신체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을 포함한 전체적인 풍경이나 주인공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하려면 거울을 보거나 웅덩이로 향하는 것 밖엔 없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다른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1인칭 영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던 연출이었다. 오랜 기간 감상하면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직접 총을 쏘고 싸울 수 있다는 점과 일반적이고 단순할 수 있는 액션을 특별하게 만든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고 생각한다.



1인칭으로 제작된 작품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Mock+Documentary) 라고 부르는데 연출된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여 실제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것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공포 영화를 따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라고 부른다.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으로 촬영한 사람은 없고 영상만 발견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카메라나 휴대폰을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촬영으로 불안정한 화면을 보여줘 실제 장소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1999년 개봉한 <블레어 위치>를 시작으로 많은 호러 영화가 이런 촬영 방식을 사용했다. 1인칭으로 제작되는 영화는 내용에 따라 연출이 조금 달라진다. <곤지암>이나 <그레이브 인 카운터>처럼 폐가에 찾아갔다가 정체 모를 물체에게 도망치는 작품은 카메라를 담당한 인물이 따로 등장해 카메라를 든 사람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상황을 이어간다. <판더믹>이나 <둠>, <악녀> 처럼 공포보다 액션을 위주로 촬영한 작품은 1인칭으로만 촬영하지 않고 여러 시점으로 돌려가면서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를 설명한다. <하드코어 헨리>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한 명의 시점에서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보다 게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주인공이 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어 다니고 악당과 싸우는 작품이 있다면, 주인공이 SNS로 사건을 해결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작품도 있다. 기존의 작품들은 SNS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 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장치로 등장했다. 상대와의 감정을 표현할 때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잠깐 화면이 등장하고 끝나는 작품과 달리 SNS, 인터넷을 포함해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스크린 라이프는 작품의 배경이 스크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CCTV, 통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기사를 이용하며 대사가 필요할 땐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 대사가 없어도 머뭇거리는 커서나 영상 통화 속 인물의 표정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알 수 있다. 신선한 설정으로 사람들이 주목한 스크린 라이프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2014년에 개봉한  <언프렌디드 : 친구 삭제>는 6명의 아이들이 접속한 화상 채팅방에 1년 전 자살한 로라 반스의 계정이 참여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SNS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스크린 하나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공포 영화였다. 4년 뒤 개봉한 <언프렌디드 : 다크 웹>도 스크린 라이프라는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서치>가 개봉해서 스크린 라이프의 대표 영화가 되어있는 상태라 인기를 얻지 못했다. 언프렌디드가 개봉하고 얼마 뒤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에도 스크린 라이프를 도입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시즌 6 16화는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SNS를 접속한 클레어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스크린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설정이 흔하지 않았던 터라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크린 라이프가 대중에게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지만 2017년 <서치>가 개봉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스크린을 벗어나지 않고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사람들은 배경이 꼭 개방된 공간이 아니고 폐쇄적인 인터넷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영화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인터넷으로 상황을 이어가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는 거다. 


주인공의 선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스크린 라이프와 달리 시청자의 선택이 결말이 되는 콘텐츠도 있다. 인터랙티브란 입력과 출력이 공존하는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이를 적용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내용의 흐름과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을 말한다. 시작할 때 함께 할 주인공을 선택하고 단계별로 등장하는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결말을 포함하고 있어, 선택에 따라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해피 엔딩이 될 수도 있다.



인터랙티브는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넷플릭스에서 인터랙티브 작품을 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장르가 됐다. 2015년 제작한 5부작 게임 <마인크래프트 스토리 모드>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다큐멘터리로 장르에 상관없이 적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작품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블랙미러 밴더 스내치>, 베어그릴스와 함께 자연으로 떠나는 <당신과 자연의 대결>, 교주의 사악한 음모를 막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 키미 대 교주>가 있으며 <장화 신은 고양이 동화책 어드밴처>처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넷플릭스의 인터랙티브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유튜브에서 사용자의 선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임이 등장한다. 이른바 <최종 화면 게임>으로 불리는 이 콘텐츠는 쫓아오는 삐에로를 피해 도망치는 게임이다. 짧은 영상에 끝날 때마다 선택지가 등장하는데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삐에로에게 잡힐 수도 있고 도망칠 수도 있다. 직접 촬영한 영상과 유튜브의 최종 화면을 이용해 시청자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신선한 설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현재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로 발전하고 있다. 이 채널 외에도 유튜브 내 최종 화면을 이용한 게임이 많으며, 선택을 해서 결말을 찾아가는 게임 <스탠리 패러블>을 최종 화면으로 리뷰한 영상도 있다. 틴더에서도 1인칭으로 진행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스와이프 나이트를 제작했다. 세계 종말을 앞두고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으로 선택지가 나올 때마다 한쪽을 선택해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는 프로필에 표시되고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한 사람과 매칭 된다. 미국에서 수백만 명이 이용하여 다음 시즌도 제작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19가 발생한 상황에서 세계 종말을 콘텐츠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미뤘다고 한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우리는 화면을 지켜보는 관객에서 주인공이 됐다. VR의 발전으로 1인칭 화면을 감상하는 걸 넘어 직접 악당을 물리치고 게임에서 달릴 수 있게 된 상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엔 비쌀뿐더러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자극적이고 신선한 것을 원하게 된다. 작품 속 인물의 위치나 배경이 달라져도 다른 사람을 향한 마음이나 무언가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면, 미디어가 발전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진실함은 그대로일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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